프로젝트 할 때는 체력도 업력
난 운동을 잘 못한다. 50미터 달리기를 17초에 들어오고 줄넘기는 100개도 연속으로 못 넘고 철봉 매달리기는 다리가 떨어지는 순간 끝!
어린 시절 자전거 타는 거는 울면서 겨우 겨우 배웠고, 팔굽혀펴기 0개에 오래달리기 꼴등, 구기종목을 하면 어떤 종목을 막론하고 얼굴로 공을 받는 사고가 많았다.
이게 무슨 명랑 만화 주인공같은 클리셰(혹은 기믹)냐고 하겠지만, 현실이다. 내가 잘 하는 운동따윈 쭈욱 없어왔다.
그런 내가 이제 자기전에 최소 40분에서 1시간씩은 어떤 방식으로든 땀을 내고 운동을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교한다면 여전히 운동능력이 부족하겠지만 기획자가 되고 나서 운동이 더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했다.
주니어 2년차에 쇼핑몰을 신규로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길어지는 프로젝트는 몸도 맘도 지치게 했다. 어이없는 테스트 결과에 개발자와 늦게까지 토론을 이어가고 머리를 싸매고 오류를 잡는 과정에서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기획자 선배 중 한 명이 우연히 복잡한 지하철에서 사람에 휩싸이고 프로젝트 막바지에 골절로 병원 신세를 지게됐다. 개인의 사고는 어쩌면 단순한 불운일 수 있지만 기획자의 사고는 프로젝트 모두의 불운이었다.
그 선배가 기획한 파트에 대해서 이해도가 다르기에 결국 막판에 많이 수정해야했고 그 분이 돌아왔을 때는 바뀐 상황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프로젝트 막바지는 하루하루가 굉장히 급변하고 결정할 사항도 많다. 기획자는 많은 부분을 판단하고 많이 대화해야한다.
그 때 느꼈다. 결국 체력도 업력이었다. 흔히 '존버'라고 하는데 오픈 때까지 불사조처럼 타오르고 오픈후에 사그러들어야했다. 템포를 맞추려면 호흡에 맞춰 나 스스로도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년뒤, 상품과 배송 모듈 전체의 틀어진 프로세스를 단독으로 진행해야했다. 범위가 컸고 챙겨야하는 범위가 많았다. 전체 기간은 3개월.
그래서 난 실내 자전거를 하나 샀다. 체력이 없으면 못버틸 것 같았다. 야근을 하더라도 하루 30분이라도 꼭 타려고 했다. 나와 내 새끼같은 프로덕트 모두 살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정도 한다고 내가 엄청 튼튼해지진 않는다. 다만 적어도 마음가짐은 달라진다. 그 프로젝트를 오픈하던 날, 큰 트래픽이 발생하기전에 알 수 없던 중요한 발견했고 기획수정부터 개발, 배포까지 긴급하게 진행됐다. 마치 응급실의 집도의처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 날 새벽 배포부터 오류 개선 배포까지 거의 22시간을 사무실을 지켜야했다. 기획팀원들이 떠난 텅빈 사무실에서 배포가 완료되고 정상적으로 처리되는 것까지 확인하고 새벽시간에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그 때 생각한 것은 딱 하나였다. 실내자전거라도 하루 30분씩 탄 게 진짜 잘한 거라고!
프로젝트 끝까지 버티는 체력은 결국 업력이다. 기획자가 끝까지 원하는 프로덕트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시간과 고민의 깊이가 핵심 싸움이라면 스트레스 분산만큼 체력은 중요하다.
난 여전히 달리기를 못하고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나마 재밌어보이는 줌바댄스나 요가를 한다. 다리가 단단해지고 아침이 개운해진다. 그러면 더 엄청난 프로젝트도 버틸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