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냥의 학창 시절 4가지 기억
하루하루가 쌓여 서비스기획자됐다
※주의 : 도그냥의 연배가 느껴짐.
기억1. 컴퓨터 산 지 하루만에 고장내다
중1 말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사줬다. 정말 저사양 팬티엄4 셀러론에 윈도우98 컴퓨터. 박찬호가 광고하던 보급용 삼보컴퓨터였다. 부모님이 큰 맘먹고 사준 그 컴퓨터는 어쩌면 내 운명을 바꿨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데 만지고 놀다가 하루만에 난 윈도우를 날려먹고 먹통이 된 컴퓨터에 놀라서 하루만에 윈도우CD로 재설치를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온갖 시행착오끝에 윈도우 폴더안에 윈도우가 또 생기는 기괴한 형태로 재설치를 성공했다. 인터넷 전용망이 없던 때라 어디 물어볼 곳도 없었다.
묘한 성공의 기쁨은 컴퓨터의 문턱을 확 낮춰졌다. 전용선을 설치한 뒤로 나는 그 뒤로 프로그램을 마음껏 다운받고 마음껏 설치했다. 불법과 쉐어웨어를 넘나들며 아무 프로그램이나 만지고 놀았다. 정식으로 배운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제로보드를 설치하고 CSS나 HTML을 남들의 가이드 따라 수정하고 다운받은 flash파일를 수정해보고 드림위버로 아이프레임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포토샵으로 합성을 하고 놀았다. 난 그냥 놀았다.
기억2. 취미는 인강 뚫기
중3때 취미는 인강 뚫기였다. 당시 온라인 녹음 강의같은 것들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보안은 당연히 엉망진창이었다. 난 문득 URL의 규칙을 발견했다. 파라미터가 뭔지도 몰랐지만 &영어= 다음에 나오는 숫자를 바꾸면 컨텐츠가 바뀐다는걸 발견했다. 미리보기 1강을 열어서 16강까지 다 번호를 바꿔서 접속해보며 놀았다. 그렇게 수학, 영어 인강을 몰래들었다. 공부가 급해서가 아니라 이게 재밌었다. 밀레니얼 세대의 수박서리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기억3. 중2때 인터넷방송국 방송작가가 되다.
온라인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도그'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는 할 때였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방송작가나 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한 케이블 티비회사에서 청소년 인터넷방송국이 개국하고 청소년 방송요원들을 모집했다. 주로 고등학생 대상이었던 것 같은데 지원했고 유일한 중학생으로 1년반동안 활동했다.
박경림씨가 진행하는 토크쇼였고 나는 당시 학동역에 지하철타고 가서 KMtv건물에 사원증걸고 당당히 들어가서 보고 싶은 연예인을 실컷 만났다. 나는 아이디어를 내고 대본과 큐시트를 작성하고 방송진행을 돕는 막내였다.
내가 좋아하는 '신화'를 쇼뮤직탱크 대기실에서 만날 수 있었고 안좋아하던 '지오디'와 엘베타고 사무실로 들어가며 문앞에 줄 서있던 동년배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 클릭비가 우리 토크쇼에 출연할 때는 같은 반친구가 택시타고 쫓아와서 문밖에서 나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는데 우리의 입장차이에서 난 사원증의 위대함을 느꼈다.
기억4. 고등학교내 교내 검색대회에서 1등을 했다
교내에서 검색으로 문제의 답을 찾아내는 교내 검색대회가 있었다. 아직 컴퓨터 활용능력들이 높지 않았던 2003년 이야기다. 20개 가량의 난해한 문제들이 있었고 네이버 구글 등 포털을 이용해서 정확하게 원하는 정보를 빨리 찾아내는 대회였다, 답지는 한글로 답과 출처를 적는 것이었다.
난 시작한지 10여분만에 선생님이 출제한 문제지 원본과 정답지를 찾아버렸다. 그건 답으로 인정 못한다고해서 자리에 돌아와서 다시 귀찮게 하나하나 검색했고 얼마동안했는지 모르겠지만 1등이 됐다.
온라인에서 검색을 할 때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지 머리를 잘 굴리는 편이었던 것 같다. 하나도 몰랐지만 아마도 검색에서 인덱싱될만한 키워드로 패러프레이징을 잘 했던 것 같다.
작은 성공의 기억은 자신감이 된다.
자기 계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효능감'이다. 작은 것에서 얻은 자신감이 결국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만들어준다.
나같이 욕심많은 인간이 그나마 지금까지 이 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올 수 있는 것은 잦은 무모한 도전과 거기서 얻은 성취감이 차곡차곡 쌓여왔기 때문이 아닐까.
근데 제일 중요한건 배움이 놀이여야한다는 점이다.
고통스러운 공부는 시험공부면 충분하다.
이렇게 컴퓨터 갖고 놀다보니 지금까지 컴퓨터만 냅다 만지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여튼 나는 사원증을 걸고 자심감을 갖고 논리를 분석해서 나의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개발자가 말하는 개발지식을 스스로 습득해가며 배워왔다.
가만 생각해보면 하루하루가 참 나다웠지 않았나 싶다.
포노사피엔스 책을 다시 읽다보니 나는 정말 포노사피엔스 자격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