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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May 22. 2021

서비스기획자가 PO가 되려면 뭐가 필요하다고 믿는가?

직무명으로 일하는 게 아니다.


저자는 크로스펑셔널 조직에서 일해보지 않아서 서비스기획자와 프로덕트매니저를 동일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아쉽다


 나의 첫 책 <서비스기획스쿨>에서 가장 기억에 리뷰는 단연코 이 것이었다. 나는 책에 국내의 서비스기획자가 프로덕트매니저와 비슷하다고 썼다. 조금 아이덴티티와 형식이 다르다고 해도 서비스 기획자로서 일하는 방식과 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리하면서 자부심에 대한 글이었다.

 좋은 리뷰가 많았지만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는 리뷰는 바로 저 문장이었다. 저 문장은 뭔가 도전의식 넘치는 내 가슴을 후벼팠던 것 같다.  프로덕트 오너, 또는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이름이 주는 시대적 인기에 대한 어쩌면 국내 실무바닥에서 성장한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 같은 거였을 수도 있다.

 이대로 편하게 비슷한 조직에서 서비스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더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혹시나 나를 우물에 가두는 것이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커리어의 장벽에 부딪히게 될까봐 지독히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그리고 약간의 사명감도 느꼈다. 서비스기획자로서 일해온 내가 직접 크로스펑셔널 조직에서 느끼고 배운다면 직접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정말 얼마나 다르고 또 내가 무엇을 해야 또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지를.


그래서 프로덕트오너가 되었다.


  그렇게 일부러 더 크로스펑셔널한 팀을 추구하는 비교적 작은 조직으로 이직을 했고, 6개월이 지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산출물과 업무의 양은 꽤 많았다. 처음에는 차이에 대한 적응의 과정과 차이에 대한 학습, 차이를 만들려고 애쓰는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쿠팡, 네이버, 카카오, 야놀자  등 멜팅팟처럼 다양한 조직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상적인 프로덕트 오너의 역할을 나에게 요구했다.

 서비스기획자로서 나는 도메인 지식과 프로덕트 설계에 대해 이제 너무나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환경은 건방짐을 내려놓고 다시 기본기를 곱씹게 해주었다.  굉장히 다행이었던 것은 슈퍼급 개발자들과 스타트업적인 가치관의 동료들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했던 서비스 기획자로서 내가 그어놓은  기준을 부수고 더 날아다니라고 하니까 오랜 시간 프로세스에 길들여진 이유로 어렵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목표되는 일을 못해내거나 하진 않았는데,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불안했고 닥치는 대로 실리콘밸리의 글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읽고 또 적용하려고 애썼다. (첨부터 훌륭한 PO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PO가 된 나에게 크로스펑셔널팀이 원하는 것은

비전이라는 '목표'를 바탕으로한 '문제의 정의'와 '구현의 이유', 로드맵을 쪼개서 접근하는 프로덕트의 방향성과 순서,

그리고 그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보람찰 수 있도록 프로덕트의 쓰임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팀원들에게 인터뷰를 하고, 회사 전략팀에 물어가며 프로덕트의 비전을 설계하고, 이에 대한 로드맵을 짜고, 하고 싶은 개발을 쪼개서 기획하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정하려 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독려하려고 노력했고, 신나게 지표를 검토하며 매너리즘에 빠질 정도로 똑같이 느껴지던 프로덕트의 피쳐별로 목적과 효과를 고민할 수 있었다.

 난 분명 서비스 기획자일 때도 누구보다도 주도적이었지만 단 하나 절대 채우지 못했던 회사의 방향성에 대한 불만과 냉소가 PO로 지내는 과정에서 해소되는 편안함을 느꼈다.


 책 <실리콘밸리를 그리다>와 <협업의 시대>, 마티케이건의 <인스파이어드>와 <empowered>, 그리고 <블리츠 스케일링>, medium 의 다양한 실리콘밸리 PO의 글을 다시 읽었다.  속도, 애자일, 마음가짐에서 떠드는 그 차이에 대해서 이제서야 제대로 공감이 갔다.

 PO로 일하는 건 백로그를 만들거나 요구사항정의서 대신 유저스토리나 PRD를 쓰는 것이 아니었다. PO는 비전이 분명하고 여러 직무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미셔너리 조직에서 부여받은 역할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배운 것이 이것이다.


 직무명이 일을 정의하지 않는다
조직내의 역할과 구성원의 이해가 서비스기획자와 PO를 구분한다.


 프로덕트 매니저가 서비스 기획자와 다르다는 글을 많이도 봐왔다. 그리고 그 글들은 묘하게 서비스 기획자의 협소함을 비웃고 프로덕트 매니저 또는 프로덕트 오너의 리더십을 찬양한다. 어떤 이는 제멋대로 프로덕트 오너를 '전략 기획자'라고 생각해 버리기도 한다. 서비스의 비즈니스적 관점을 바라보고 전략적 관점을 지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프로덕트에 대한 성공 스토리와 지표이야기에 열광한다.

 내가 지난 반년간 꽉 채워 머리와 생각을 다듬은 프로덕트 오너의 스킬은 지금껏 노력해온 서비스기획자의 도메인지식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다르지 않았다. 난 자연스럽게 프로덕트 오너로서 시니어급의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다.

 다만 내가 나의 역할을 제대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내가 속한 크로스펑셔널 팀원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지속적인 대화속에서 권위적 기획이나 관리가 아닌 진짜 수평적인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 작은 발차기를 수차례하면서 조금씩 다시 키워나가는 성장의 과정이 애자일이었다. 빠른 것도 엄청난 것도 아니고 대신에 자부심이 있던 그 부분이 채워졌다.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기획자가 프로덕트오너가 되기 위해서 지표나 비즈니스에 대해서 알아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비전과 로드맵을 그릴 수 있어야하고 SB나 와이어프레임따윈 그리지 않아야한다고 말한다. 메이커들에게서 벗어나서 전략 방향을 잘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AB테스트를 하고 성과를 잘 만들어야한다고 말한다.

 다 맞는 말인데, 정말 중요한 것은 '미셔너리한 크로스펑셔널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어떤 회사는 PM이라 불러도 서비스 기획자의 폭포수 방법론으로 일을 하고, 어떤 회사는 PO라고 부르면서 변덕부리는 대표의 말에 따라서 난리 법석을 치며, 어떤 회사는 서비스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PO보다 더 CEO처럼 일한다.

 국내의 수많은 회사들이 여전히 과도기에 서 있다. 내 직무명이 무엇이든지에 대해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대신에 내가 이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이런저런 다양한 환경에서 아예 다른 방식으로 프로덕트를 기획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오해야하는 점이 있다면,
조직이 원하는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비스 기획자로서 정해진 조직의 R&R에 대해서 특히 의사결정에 대해서 정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것은 기존 한국 관료제 조직의 한계다. 그 조직에 젖어 있다면 PO로의 전향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걸 우리는 '컬쳐 핏(culture fit)'이라고 부른다.


 진짜 교과서적인 이상적인 PO가 되고 싶다면 정말 의욕있는 동료들이 있는 곳에서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셔너리한 크로스펑셔널 팀'이 있는 곳을 찾아야한다.

 하지만 조직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회사가 이상적이길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들어가서 조직의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이길 바란다. 그러려면 가장 필요한 건 본인 스스로 직무의 역할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알고 있어야한다는 점이다.


 내가 내린 마지막 결론은, 서비스기획자에서 PO로 전향하기 위해서 필요한 단 한가지는 이것이다. 서비스기획자로서 프로덕트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과 가치관을 잘 파악하고 PO로서 정의한 프로덕트 만드는 과정에서의 방식과 가치관을 잘 파악해서 적용하는 일이다. 화려함보단 내공을 다듬어야한다. 이 일은 스킬이 아니고 이 일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중요한 것 같다.


 당분간 이 차이와 나의 업무적 변화를 나의 언어와 구조로 설명하기 위해 애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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