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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May 31. 2021

왜 그렇게 급하세요

세상에서 젤 급했던 도그냥의 '라떼 이야기'


"넌 왜 1계단씩 가지 않고 7계단씩 가려 하냐"

 인턴 시절에 예전에 언니의 지인이 나에 대해서 듣고 평을 내려준 문장이었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나는 원래 유치원때부터 들었던 평처럼 '도전적'이어서 나보다 연차가 몇 년이나 나는 대리님에 한마디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호들갑과 오두방정 속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부들부들거리고 있었다.

 글만 보면 굉장히 냉정해 보인다든데, 나를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난 일할 때도 최고의 협업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서로 맞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런 감정을 일부러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대신에 합의가 끝났다면 수긍도 빠르다. 오래 일하기 위해서 이렇게 되긴 했는데 그저 참고 참다가 터지는 경우는 없다. 뭐 욕심에 있어서도 그랬다. 숨김없이 욕심이 눈과 입과 손에서 드러났었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을 얻었었지?  당시에는 회사 선배들에 대해서 왜 저렇게 공부를 안하나 생각하고, 조직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나는 똑똑하다 훌륭하다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고작 배너하나 붙이면서도 개발자에게 구박이란 구박은 다 들을 만큼 일에 익숙지도 않으면서!! 내 건방은 진짜 큰 프로젝트들을 겪으면서 사그라들었다. 누구에게나 자중하고 업무력을 집중적으로 올릴 시기가 필요했다.

 요즘 몇몇 주니어를 볼 때면 날의 내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텐데 뭐 저렇게 오두방정 난리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 때 그 평가가 생각난다. 당장 답을 내 놓으라는 식의 세상에 대한 오두방정은 마음만 조급하게 하는데.. 현장의 상황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깨달음을 주더라는 경험에 의한 결과론적 지식을 얻은 주제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것 내가 전세계 1등인가 싶어진다.

 

 요즘 '암묵지'라는 단어도 굉장히 유행인 것 같다. 특히나 기획 일의 기준을 잡기가 어려우니 암묵지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암묵지라는 것 자체가 체화를 바탕으로 하는 개념이다. 자전거를 잘 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는 여전히 그 누구도 설명해줄 수 없는 감각이라고 한다. 암묵지는 그렇게 체화할 만큼의 경험의 양을 전제로 한 단어다. 요즘 주니어들이 암묵지를 찾아내겠다며 오늘 있었던 작은 일들에서 암묵지를 찾아내려고 애를 쓰는 것은 볼 때면, 아직 경험의 Input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빅데이터가 한두 사람의 사용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행위를 바탕으로 하듯이, 암묵지라는 것도 오늘 하루 내 행동과 상황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수십가지의 상황과 동료들이 겪는 상황들을 함께 보고 듣고 이해해가면서 배우는 것이다.

 외부 커뮤니티를 많이 했을 때 아쉬운 점은 각각의 회사의 분위기와 협업의 방식이나 공기의 흐름을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암묵지는 누군가에게는 독이 되고, 누군가의 후회는 타인에게는 제일 필요한 에센스였을 수도 있다. 제일 좋은 것은 나의 현장의 동료들과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따지면 결국 오늘의 암묵지는 내일의 암묵지로서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하루라도 빠르게 엄청 훌륭한 기획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이다.

 이 세상에 훌륭하고 뛰어난 기획자는 없다.  물론 일 센스가 있어서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기획 자체가 얼마나 의미있었냐는 관점에서는 엄청나게 훌륭하고 뛰어난 기획자는 결과론적으로 만들어지기 쉽다. 항상 최고로 뛰어나고 훌륭할 수 없단 말이다, 어제는 맞았는데 오늘은 다른 정답이 없는 세상에 당신은 던져져 있다.


 외부 커뮤니티가 의미있으려면, 자신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 내 조직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가. 내 조직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맞는가. 그런 질문을 타인에게서 얻어갈 수 있어야 한다.


 특정한 정답이 있는 듯 달려가는 그런 행위들이 나는 불편하다. 업무는 재밌을 수가 없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일은 정말 중요하고 심각하고, 고민되고, 어려운 것이어야 한다. 수만가지 고려사항과 제약조건내에서 결과를 만들어내고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려면 상황은 극한까지 몰아세워져야 했었던 것 같다. 그러고나면 아주 조금 성장한 느낌이 느껴졌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것은 그 성장이 느껴진 뒤의 모습이었다. 성장을 하는지 안하는지 매일 키재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은 장기간 달리기 어렵다. 그렇게 애쓸 시간에 일 자체에 집중해야 겨우 잘해낼 수 있다.

 근데 이런 생각도 결국은 경험이 채워지고 나서 한 '암묵지'일테니,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모두에게 소용없는 소리인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우린 요즘 왜 이렇게 급할까?  시장이 빨라서 급할까? 갑자기 온라인 서비스가 엄청 중요해져버려서 이런걸까?? 주니어들에게 찬찬히 성장할 환경도 상황도 주어주지 못하면서 갑자기 온라인으로 딥다이브 해버린 이 세상이 어이없게 느껴지는 하루다.

 여유를 가져라 그런 소리는 또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여유없이 전전긍긍 거리는 나같은 사람이 할 이야기는 가 못된다. 이 직업 자체가 사실 서비스도 협업도 나의 성장도 매일이 전전긍긍이다. 여튼.. 10년전 도그냥처럼 마음이 다급한 주니어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긴 호흡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많이 해봤더니 단타성 전전긍긍보다는 긴 호흡을 가지고 멀리 볼 때 확실히 체감되게 성장했던 것 같다. 암묵지는 억지로 끄집어 낼 때보다 조용히 백그라운드에서 조각모음 끝내고 나면 입으로 튀어나올 준비가 됐던 것 같다. 긴 호흡을 가져가기 위해서 평소보다 이 조각모음할 시간을 더 길게 주는 연습도 필요하다.

  짧은 인스타그램이 아니라 긴 호흡의 브런치 글을 써봤으면 좋겠고..

  브런치 몇 쪽이 아니라 책 한권이 나올만큼의 이야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만 이 일을 할 것이 아니니까. 참고로 10년차 넘어도 공부할 것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솔직히 말하면 공부할 것이 많은 환경에 계속 노출시켜야 한다..

 그렇게 다급하게 안달복달 하다가는 5년차쯤에 슬럼프가 심하게 온다던 신입초에 만났던 선배 언니들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제 이렇게 완연한 꼰대 선배가 되어 가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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