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그냥 Jun 27. 2021

'참 어렵네요'라는 말

퀴즈 풀던 나에서 퀴즈 내는 사람으로



 함께 독서모임을 진행했던 지금 잘 나가는 스타트업에서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기획자분이 이 직무를 '퀴즈를 푸는 것'과 같아서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다른 협업과 어려움이 없다면 하루종일 퀴즈만 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어려운 전제조건이 가득한 곳에서 어쩌면 해결책일 수 있는 답변을 만들어내는 그 느낌, 나도 이 일을 하면서 내내 가져온 가장 행복한 기억이랄까. 

 마음 한구석 '이 정도 복잡한 일이라면 나쯤 되니까 해결하는 거야'라는 작은 자신감이 더 어려운 프로젝트도 마음 한켠의 설렘을 숨길 수 없는 표정으로 시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프로젝트 순간순간의 판단과 의사결정도 빠르고 상황의 이해도 굉장히 빨라지면서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가 재밌었다.


 그런데 요즘 이상하게 참 많이 사용하는 말은 '참 어렵네요'다. 2년여의 거대한 프로젝트 끝에 만들어낸 나의 답지는 충분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제출한 답안지가 내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답이었음에도 그 질문도 답지도 만족스럽지 않은 시기를 겪었다. 굳이 카테고리를 정하라면 성공적으로 완료했으나 성과면에서는 실패했다고 봐야 할 프로젝트. 나는 계속해서 '전제조건'내에서 더 훌륭한 답안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괴로움과 그 답안에 대한 설명을 반복해야하는 것에 질렸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이제는 '주어진 퀴즈' 자체가 잘 못된 문제일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퀴즈를 푸는 입장이 아니라, 퀴즈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더욱 만족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게 아닐까. 해야할 일을 정해야하는 전략과 실무의 관계는 그 친구가 말한 '퀴즈'를 내는 사람과 실무를 푸는 사람인 것 같다. 유명한 수학자들은 더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고 누구도 풀지 못할 퀴즈를 만들어내고 그것의 해를 구하는 방식을 공부한다. 그리고 그 퀴즈는 '전체조건'을 정리하는 것에 해당한다. 

 어쩌면 비즈니스도 서비스 기획도 모두 마찬가지다. 더 중요한 것은 그래서 '올바른 퀴즈'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선택해야하는 '올바른 전제조건'을 만드는 것이라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그래서 장바구니 하나를 설계해야할 때도, 이제는 고민한다.  

 장바구니는 '돈을 많이 벌게 하는 것'은 너무나 뻔한 전제조건이다. 단순하게만 생각한다면 장바구니에 추천영역을 상품별로 넣거나, 남들 하는 뻔한 방법을 답안지라고 뿌듯해하며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답안지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면 상황은 절박해진다. 여기서 우리의 장바구니는 여러개의 상품을 모아서 구매하게 만들지 아니면 1개의 상품을 수차례에 걸쳣거 구매하게 만들지는 우리 서비스에 따른 맥락적인 전제조건에 대한 정의가 중요해진다. 이 제대로된 숨어있는 전제조건을 찾으려고 온 서비스와 데이터를 뒤진다. 

  마치 나에게 낼 퀴즈를 내기 위해서 고민하는 수학자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퍽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참 어렵네요'란 말을 아주 달고 사는 것 같다. 


 '주어진 퀴즈풀기의 달인'에서 초보자같은 '퀴즈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주어진 퀴즈 풀기의 달인이라는 자만심으로 충분히 뻔뻔할 수 있는데, 다시 어려운 일을 만나기 마음 한구석에 쭈굴거리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너무 오래 일하면서 잊었던 하나의 명제를 찾은 것 같다. '즐거울 수 있는 것도 조금 익숙해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체감한다. 퀴는 내는 것도 달인이 될 만큼 유능해지려면 결국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지금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내가 기획 문제를 슥슥 풀어온 10여년이 없어지거나 한 건 아니라는 것. 그냥 지금 한 단계 또 다른 면을 성장시키고 있는 거라는 것.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이용해서 이제 퀴즈를 만들어 내고 있고, 그 퀴즈도 또 내가 풀어낼 거라는 것도. 

 

 '참 어렵네요'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엄청나게 재밌어지지 않을까.  

  일한지 10년이 지나도 또 성장할 수 있다니, 얼마나 오래할 수 있는 일인지 신난다고 해야하나.


  여튼 나에게 하는 말, 

  "이번주도 고생했고, 그만큼 또 잘해낼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왜 그렇게 급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