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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Oct 11. 2021

고객의 시각을 맞추는 것에도 기준은 필요하다.

VOC와 프로덕트의 기준간의 간극 메우기


 이번 한글날로 길어진 주말 연휴동안 수많은 남편들이 추억을 찾아 PC방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디아블로2의 리마스터버전 출시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게임이 당시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은 좋은데 당시의 서버가 터지던 안좋은 추억까지도 재현되었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로 지금 서버 접속 상태가 좋지 않다. 클라우드 시대에 서버 터지는 것 정도는 간단히 서버증설을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배틀넷은 미어터지고 있다. 우리 남편도 하염없이 재클릭을 해보더니, 나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블리자드컨에서 디아블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게임사인 블리자드는 매년 자신들의 계획을 '블리자드컨'이라는 큰 행사에서 소개해오고 있는데, 디아블로4를 기다리던 수많은 팬들이 한 꼭지로 디아블로가 있는 것을 보고 엄청 기대를 하고 들어왔는데, 디아블로 모바일 버전 이야기를 해서 행사장에서 야유와 비난이 쏟아졌었다는 이야기였다. 


 http://m.kmib.co.kr/view.asp?arcid=0012812263


 팬들이 기대한 것은 디아블로4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디아블로 자체의 매력이 반감되는 모바일 게임 이야기만 하고 있었으니 분노가 들끓었던 것. 그런데 사실 디아블로4도 재작중이었고 그 뒤로 몇 주뒤에 티져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다시 잠잠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디아블로2의 리마스터링 버전에 이렇게나 서버가 터지도록 많이 몰리는 것을 보면 아직 그 인기는 짱짱이라고. 

 그러면서 남편이 하나 덪붙인 말은. 모든 일에는 '서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팬들이 기다린 것은 디아블로4니까 준비중이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니, 먼저 모바일 버전과 디아블로2의 리마스터링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으면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겠어?"


 후에 이 발표를 직접했던 개발자 역시 본인들이 준비한 모바일 버전이 그렇게까지 욕을 먹을지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 같다. 이미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저 노력하고 있었을테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작을 하는 사람들이 고객의 마음을 얼마나 잘 모를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팬들은 모바일 게임이 아니라 전용 게임기를 사라고 해도 돈을 내고 살 사람들인데 게임사에 기대하는 퀄리티 있는 게임에 대한 기대치를 게임사는 몰랐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재밌고, 한편으로는 아쉽다. 지금 그 서버 문제도 아이를 재우고 와이프 몰래 PC방으로 나와서 게임을 하고 있는 남편들에게는 피말리는 시간일 텐데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얼마나 많은 사용자들의 기대치를 저버리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반대로, 고객의 기대치나 유즈케이스를 어디까지 고려해야하느냐도
쉽게 결정하긴 어려운 요소긴 하다. 


 최근 다음 카페에서 익명게시판에 업데이트를 하나 했다. 익명게시글이라도 게시자가 댓글을 남길 때는 표시해주는 기능이다. 이 기능은 어찌보면 흔한 기능이다.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도 있고 왠만한 커뮤니티는 작성자 표시를 해주고 있다. 그게 소통에 있어서 최소한 질문자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게시판의 완전한 익명성을 바탕으로 이상한 Usecase로 이용해왔던 사람들이 갑자기 들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본인이 익명글을 쓰고 익명댓글로 동조하는 댓글을 달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 순간의 업데이트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부끄러움은 모두의 몫이 되어버렸다. 

 https://www.instiz.net/pt/7038956


 나는 이들이 어떻게 사용했듯이 이 부분을 서비스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지켜보는 네티즌들이라면 그냥 '어이없네'라고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서비스기획하는 업계인으로서 다음 카페 담당자들의 고통이 눈앞에 그려진다. 

 문제는 이들의 업데이트에 대한 항의에 있다. 아주 날선 항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형태의 글을 쓴 당사자들은 지금 얼굴이 화끈거릴테니 그 만큼 CS센터에 업데이트에 대한 항의를 할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VOC의 갯수가 급격하게 올라갈 것이다. CS담당자들은 프로덕트 조직에 이 업데이트를 철회해야하냐고 이야기를 할 것이고, 프로덕트 조직에게는 업데이트를 철회할 명분도 없고, VOC에 대해서 냅둘만한 명분도 없다. 

 

 자, 익명게시글에서 질문자와 답변자가 모두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인 척 쓰면서 여론을 조장하는 것은 정상적인 Usecase인가? 

 이러한 비정상적인 Usecase가 압도적으로 많은가? 아니면 일부 사용자에게서만 나타나는가?

 정상적이지 않은 Usecase가 훨씬 더  많이 이용 된다면 그게 윤리적이지 않더라도 요청을 그대로 수용해줘야 하는가?


 온라인 업계에서 일하면서 나는 누가 플랫폼에 항의해야한다고 말할 때, '지랄과 보상은 정비례한다'고 말해준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지랄을 하는 사람이 소수라고 할지라도 보상이 따라오거나 그 사람의 목소리대도 될 때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 것을 막기위한 명분은 생각보다 없다.

 온라인 서비스는 프로덕트의 균형점을 찾기가 상당히 쉽지 않다. 사용자는 왕은 아니지만 그들이 계속해서 쓰게 해야하는 이유가 있기에 '프로덕트 윤리'를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결국 고객의 소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도, 아니면 생각과는 다르다고 여겨지는 비정상적인 이용형태에 대해서 균형점을 찾는 것도, 어느 쪽도 프로덕트팀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기준은 필요하다. 블리자드가 모바일을 발표했을 때 욕을 먹은 것은 서순의 문제였기에 마케팅의 실패일 수는 있어도 프로덕트의 실패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서버가 터지는 것은 명백한 프로덕트 실패다. 이 부분에서 잃은 고객들의 평가에 대한 부분이나 감정에 대한 부분은 지금 추후 디아블로4로 넘어오게 될 유저들에게 블리자드의 레거시가 노후화됐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반면 다음카페의 업데이트 기준에 대한 정책은 '거버넌스'의 문제다. VOC라고 해서 모든 것을 들어준다고 프로덕트의 질이 올라가지 않는다. 항의하는 사람들이 전체의 어느정도의 비중인지 증명하고 볼 필요가 있다. 이 떄 주의해야할 점은 전체 VOC중 비중이 아니라, 전체 사용자수 대비 VOC를 넣는 사람의 비중과 코호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과연 그 고객들은 거버넌스 관점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어떤 서비스도 이유없이 떠나갈 사람들을 잡을 수 없다. 더 좋아할 사람을 많이 끌어오는 것이 더 좋은 관계를 가져간다. VOC를 해결한다고 해서 충성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이론은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VOC를 평가하는 것은 결국 프로덕트에 대한 어떤 기준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황금같은 휴일에 디아블로2를 해보겠다고 컴터 앞에서 하세월을 보내고 있을 모든 사람들과 작성자 표시로 인해서 다음카페 익명게시판에서 소통하는 것이 더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대부분의 온건한 사용자들을 응원한다. 

 더불어서 어떤 VOC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가야할 방향성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가지고 살아갈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들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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