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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Oct 18. 2021

PM 또는 도그냥, 일의 기쁨과 슬픔

결국 믿고 주목해야할 것은 나 자신의 성장

일의 기쁨


얼마전 반가운 연락이 왔다. 이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개발팀의 팀장님이셨다.

구축 때부터 상주로 계시는 분이기 떄문에 굳이 외주라고 구분할 필요도 없는 분이다.

개발 TL과 대화를 하다가 '일 잘하는 기획자'가 누구였나 이런 이야기가 나왔고, 내 이야기를 했다며 근황 이야기를 들었다고 연락을 주신 거였다.


 '일 잘하는 기획자'로 기억해주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한 지, 마른 자존감에 단비가 내리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 연락을 받기 전에 온라인에서 나를 거론하며 비아냥대는 댓글을 본 후였기에 마음이 더 기뻤다.

 사실 '일을 잘한다'는 기준은 참으로 어렵다. 글로벌한 서비스에서 일한다거나 걸출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성과를 이야기하는 거라면 겉으로 보이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나같이 뒤에 보이는 서비스를 주로 다루는 기획자가 세상에서 찬사를 받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지금처럼 고객 사이드의 화면을 거의 다루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화면보다 구조나 데이터에 신경쓰는 시간이 더 많을수록 겉만 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일 잘하는 기획자' 소리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게다가 이런 파트일수록 설명하고 정리할 정책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아무리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어렵다고 이해 안간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골치아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최근 아웃스탠딩에 기고한 PG가 없을 때의 정산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관련 업무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똑같은 설명을 수십번을 했는지 모른다. 못해도 근 3년간 100번은 넘게 한 것 같다. 구축한 개발자부터 관련 계열사나 VOC 담당자, 팀장님, 본부장님 등등 똑같은 설명을 나한테 들은 사람만 못해도 1000명은 될거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퇴사할 때 더이상 설명할 사람 없을까봐 설명 동영상까지 찍어놨던 부분이라...

  아무리 설명해도 '오버 커뮤니케이션 해주세요'를 요청받는 프로덕트의 담당자인 나에게는 유일한 믿을 구석은 결국 같이 일하는 동료들뿐이다. 동료의 이 한마디가 다시 나를 살리는 것 같다.


 이전에 다른 개발팀장님과 이직 후에 술을 한잔 하면서 나에 대해서 2가지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 처음 협의할 때는 원하는 기준이 확고해서 무섭다

- 약속된 개발 요건을 어떻게든 지켜준다.

 결론은 술자리인만큼 일한 좋은 이야기였지만, 기획자로서 본인은 그런 점이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처음에 확고하게 정리한 요건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준다는 점에서 좋은 기획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하면서 처음에 까다롭게 정리하고나면 뒤에 요건을 바꿀 일이 많지 않고 처음에 많은 변수를 생각해서 정책을 짜면 뒤에가서 추가할 일이 많지 않기에 그 부분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마참 그 마음을 알아주는 동료가 있다니 기뻤다.


 '내가 만든 서비스가 최고로 좋은 서비스였냐'는 질문에는 물음표를 넘어서 후회가 많은 경우가 많았다. 내가 정할 수 없는 숱한 제약사항과 전제조건이 깔린 환경에 있었기 때문도 있고, 무엇하나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서비스에도 제한이 많았다. 제한은 결국 불편함이었다. 사실 그래서 이직을 했던 것이 제일 컸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또 새로운 환경에서 과거의 장점과 새로운 환경에 노력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단련시키는 중이다. '일을 잘 한다'는 기준은 모두에게 다를 것이고, 지금 환경에서 내가 얼마나 '일을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능숙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공부를 하고 있고, 그 공부를 정리해서 나누는 과정에서 더더욱 고민하며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성장한다는 것이 나의 '일의 기쁨'이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슬픔


 그러나,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일이 많다는 것은 노출이 많은 사람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예전에 기획 책으로 유명한 어떤 저자에 대한 뒷담화를 들은 적이 있다.

  '밖으로 강의하고 다니는 사람치고 일 잘하는 사람없다며?' 라는 수근거림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나서 바로 회사를 떠났고, 직업 강사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 수근거림은 계속해서 더 짙어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 때 결심한게 '나는 절대로 현장을 떠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었다. 현장에서 성장하면서 그 현장의 향기를 계속해서 보이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진짜로 고군분투하면서 계속 성장하고 고민하면서 그 생생한 고민을 누군가는 필요할만한 사람에게 전해주자는 생각을 했다. 내가 처음에 필요했던 그 자양분을 내가 만들어준다면 누군가는 정말 빠르게 성장하고 꽃피우지 않을까.

 이 생각의 끝에는 '내가 최고의 기획자가 아니고, 내가 현재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수 없다'라는 전제조건도 있다.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 출신의 보통의 온라인서비스를 만드는 곳에 직장인으로 다니는 기획자다. 딱 나정도의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인간도 있어야, 저 위에 '넷플릭스 CPO'의 성공스토리를 보며 모두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꿈꿨던 선배의 모습은 쭉쭉 성장하여 관리자이자 창업자로 성공하는 관리자트랙의 선배가 아니라  '이 직무의 전문성을 키운 선배'로서 전문가트랙의 선배였다. 조금 더 신나게 이 일을 하고, 이 일을 하는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수준.. 딱 그 정도의 수준.. 말이다.

 

 근데 무엇이 슬프냐면, 얼마전 출연했던 'EO'의 '워키토키'에서 고민사례로 들었던 그런 상황들이 나에게도 모두 있었다는 점이다. '외부 활동이 더 중요해서 회사에 욕심이 없냐'는 질문을 듣는다던가, 아니면 '책을 또 쓰다니 회사에 일이 별로 없나봐요'라는 말을 들을 때다.  그리고 이름도 모르고 같이 일해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강의 다니는 사람치고 일은 잘 못하더라'라는 그 멘트를 나 역시 들어야 한다는 것이 참 슬프다.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해도 인정받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도 참 고마운 사람이긴 하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나까짓게 이런 칭찬을 들어도되나'하는 '임포스터 신드롬'에 허우적 거릴 때 이런 사람의 멘트가 중심을 잡아주긴 한다.  악플은 상처가 되어 가슴을 후비지만 칭찬 소리에 추던 어깨춤을 잠시 내려놓고 '그래, 좀 더 일을 열심히 하고 더 성장하는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에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모든 일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내가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대로 보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내 강점과 내 부족한 점을 명확하게 짚어가는 것, 그리고 어떻게하면 조금 더 현실을 잘 만들어나갈 지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하고자 하는 목표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올곧게 해나가는 것뿐이다.

 그게 정말로 PM으로서 '일을 잘 하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업에 대한 나의 가치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여러가지 고민을 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만족한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어려운 프로젝트를 받으면 항상 속으로 이런 문장을 외쳤는데 요즘은 성장에 대한 압박이 약간의 자존감을 해쳤던 것 같긴하다. 다음주 또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오랜만에 외쳐본다.

 "OK, 최고의 퍼포먼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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