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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Jun 07. 2022

기획자의 직업병

결혼기념일 그리고 품절상품


"아이, 그래버리면 어떻게!!"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의기양양하게 삭제 버튼을 클릭하던 남편의 표정이 당황스럽게 바꼈다. 

"쓸데없이 품절 상품 담고 있어서 지운거잖아"

"그거 장바구니 품절상품 표시 보느라고 안지우고 두는 거라고!!!!

 아 진짜 왜그러냐!"


남편은 계속 그랬다. 항상 나에게 정리도 안하는 게으름뱅이라는 듯이 말했다. 내 폰을 볼 때면 스마트폰의 push 리스트가 수십개가 그대로 남겨져 있는 것도, 그리고 이메일이 999+개가 쌓여있는 것도, 보지도 않은 SMS가 쌓여있거나 카카오톡에 쓸데없어보이는 채널의 광고메시지를 차단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도,  


깨끗하면 좋지, 평소에 남편보다 정리정돈도 잘 못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집안 청소를 하고 더 많이 청소를 하며 나에게 있는대로 구박해도 난 괜찮다. 그게 팩트니까. 그런데 이 멘트와 이 행동만큼은 슬슬 임계치가 올라왔다. 


"여보 내 직업이 뭔줄 알잖아. 내가 하는 일이 뭐야? 장바구니 만드는 일이잖아. 나 저거 다 보려고 냅두는 거야. 그리고 쿠팡의 품절상품은 일부러 그대로 둔 거야. 내가 왜 쓰지도 않을 유아동품 상품도 정기배송 장바구니에 담아두는지 않아? 그게 정기배송 장바구니 볼 수 있게 해주니까! 당신과 나랑 상황이 다른데왜 당신 잣대로 생각해서 다 지우는거야?


항의가 끝나고 침묵이 이어졌다. 

1분, 2분,, 3분,, 결혼기념일 저녁인데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치만 평소처럼 먼저 '괜찮아 어쩔수 없지'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대체 어떤 상품을 담아놔야 품절될 지 예상할 수 있을지 그 방법만 머리 속에 멤돌았다. 


이 것뿐만이 아니다. 남편이 보기에 나는 이상한 점이 한두개도 아니겠지만 일부러 해두는 것들이 있다. 얻어걸려서 생기면 '아싸'하면서 그냥 두는 것들도 많다. 

나는 신용카드가 갱신되거나 만료되면 삼성페이 등 간편결제에서 안지운다. 왜냐면 만료된 카드로 실행시켰을 때 어떻게 나오는지 종종 보니까. 결제가 실패하면 주문까지 취소시키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주문이 생성되지도 않는지 나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push에 대한 동의를 다 누른다. 오만 곳에 내 정보가 제공되고 있어서 수십통의 광고 문자와 전화가 빗발쳐도 나는 그냥 둔다. 왜냐면 거기에 타사의 새로운 사업형태나 새로운 서비스가 거기에서 보이니까. PUSH에 대한 새로운 형태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본다. 

가끔가다가 이메일 새로 만들려면 저 999개도 넘는 이메일에서 케이스 하나하나 타사꺼 찾아서 자료 찾아보고 개인정보동의나 회원약관 개정 메일이 와도 하나하나 다 읽는다. 그게 귀찮아서 쌓여있을지언정 필요할 때 요긴하게 꺼내본다. 


내 직업은 직장밖을 걸어나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끝나는 일이 아니다. 24시간 언제 어디나 온라인 서비스는 존재하고, 사용자의 시각과 플랫폼 제공자의 시각을 두 가지를 가지고 항상 깨어있어야 보이는 것들을 일상속에서 봐야한다. 그게 의도적이지 않은 살아있는 벤치마킹이고 그래야 일하는 속도도 더 빨라진다. 특히 온라인 서비스는 케이스를 인지하거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고 나는 그런 것들을 항상 머리 속에 입력시킨다. 언젠가 출력될 그 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볼이 퉁퉁 부어 투덜거리며 거실에 앉았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더니 내 속도 모르고 그걸 묻지도 않고 삭제하나 싶었다. 그의 눈에는 내가 뭔 일을 하든지간에 그냥 말안듣고 어지럽히는 철없는 생명체 같이 여기는 것인가 싶어서 엄한 TV채널만 쾅쾅 돌려댔다. 

"오늘 저녁은 저번부터 먹고싶어하던 마라탕사줄까?"

".. 그래!"


어제 미리 맛있는걸 잔뜩 먹었는데, 3만원 가까이 되는 거금을 추가로 들여서 남편이 진화에 나섰다. 나도 참 유치하지만 쫄깃한 꿔바로우에 알싸한 마라향에 마음이 녹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결혼기념일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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