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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Jun 23. 2022

쉬라고 있는 시간, 휴가 중 단상들

1. 휴가. 


이번주는 휴가를 내고 푹 쉬고 있다. 사실 이직 전에 사정사정해서 한달을 쉰 것을 빼면 여름휴가를 일주일간 통으로 낸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직무의 특징상 신경쓸 일들은 항상 있어서 못난 걱정때문에 매번 3일정도로 휴가를 타협하고는 했다. 3일이라도 대체로 주말과 붙여서 쓰면 짧은 여행 2박3일 여행 정도는 소화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온전히 쉬기 어려운 날이 더 많아진 것 같다. 휴가를 가기 전에는 휴가를 가기 전이라고 빠듯하게 미리 챙기고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마련이니까. 이번에도 결국 일요일까지 주말 근무를 빠듯하게 해서 월요일부터 워킹데이 5일간 마음을 비울 준비를 해야했다. 

 2박3일간 기와집 카페의 도시인 경주에 다녀왔다. 황리단길을 포함해서 보문단지 전체는 한옥 천장의 서까레 노출 인테리어가 된 동서양의 조화를 이룬 카페가 디폴트다. 을지로나 성수동이 생각난다.  고요하고 넓고 잘 정리된 힙쟁이의 도시였다. 힙쟁이가 되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석굴암이 보고 싶었다. 이래뵈도 사학과라서 석탑에 대한 지식이 많은 편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감은사지 3층석탑과 신라 탑의 정수라고 하는 다보탑, 그리고 어쩐지 석굴암을 다시 보고 싶었다. 진짜 아무 것도 없는데 수학여행때 봤던 바다위 문무대왕릉이 있다는 대왕암도 보고 왔다. 36도의 더위에 중간중간 마신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남편과 손잡고 하루 2만보씩 걸어다닌 것, 간만에 탄 KTX에 회사며 다른 것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서 좋았다. 

 렌트한 자동차에서 큰소리로 마음껏 아이돌들의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다는 것. 그걸 그냥 옆에서 같이 들어주는 남편이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휴가는 완성이다.  

 그래, 음악이다!  휴대용 마샬 스피커가 매번 휴가의 분위기를 업시켜준다. 어차피 늦게 잘거 뽀송한 호텔 침실에서 보내는 이 고요한 시간이 너무나 좋다. 이 좋은 걸 작년 휴가 때 처음 알았다. 인생에는 배경음악이 절실하다. 

 

 아.. 그래도 내가 이번 휴가에서 제일 잘한 것은. 이번에는 정말도 조금도 슬랙을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것! 이직한 이후로 잠을 자기 전이나 후나 주말에도 수시로 들여다보던 슬랙인데 정말로 딱 알림을 끄고 신경도 끄고 있다. 이러라고 있는 것이 휴가니까. 



2. 존재감과 카피 


서비스기획 분야, 이커머스 기획분야에서 볼 것이 하나도 없던 시절부터 목소리를 내며 여러가지 읽을 자료와 공유를 해온지도 벌써 5년여가 넘어간다. 그간 많은 자료와 많은 콘텐츠를 정말이지 맨바닥에서 만들어야했다. 어설프게 외국 글을 그대로 번역해서 만들거나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내가 읽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또 현실에 적용시켜가면서 한번 소화하는 과정이 거쳐서 내 것이 된 후에야 글로 쓰고 생각을 말하고 콘텐츠로 만들었다. 내 안에서 완전히 스며들어야 글로 쓸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아무 곳에서도 참고할 것 없이 내가 힘들게 만들어낸 것들이 요즘 종종 다른 강의나 다른 사람들의 콘텐츠내에 토시하나 틀리지 않게 들어가 있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어차피 이 일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니 크게 다를 수 없고 또 한번 퍼진 아이디어나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보낸 숱한 고민의 시간이 희석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 전혀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닌데.. 사실 이런 목차 카피는 교육업체가 할 수도 있는 거고, 강사 개인이 할 수도 있는 거다. 이제 바라는 것은부디 목차나 흐름이 같더라도 꼭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길 바라고, 꼭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만드셨길 바래본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오해하는 것이 내가 N잡을 즐기거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고 누군가는 필요로 할 거란 사실이 신나고 흥미로운 것이지. 이러저런 과정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그냥 N잡러로 돈을 벌고 싶었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강의와 커리큘럼을 고민해서 만드는 수고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바닥에 좋은 컨텐츠가 많아져서 참 좋은데, 가끔무서운건 내가 이제 별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되게 될까봐랄까.. 내 귀에 명확하게 전달되진 않더라도 저 수많은 like중에는 분명 도움받은 사람들이 있겠지. 그래 그거면 됐다. 



3. 정보의 범람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전에 아웃스탠딩에 한번 기고한 적이 있는데, 때로는 '정보 식이장애'가 일어날 것 같은 때가 있다. 너무나 많은 정보의 리스트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욕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혹은 모두가 지나치게 열심히 사는데 쉬고 싶은 내 마음을 질타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과거에는 페이스북이 그랬고 금은 커리어리 목차가 그런 식인데..  그런 환경은 성장의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씹지 않고 꾸역꾸역 넘기는 기분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무언가를 진득하게 오래오래 하려는 사람이라면 종종 모두 끊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전부다 한방에 알 수는 없다. 이것때문에 발을 동동 구른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솔직히 그거 하나 지금 당장 읽는다고 내가 달라질 것도 없다. 필요할 때 다시 찾아서 읽으면 된다. 그런 정보가 거기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다. 

 나중에 그런 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은 그때가서 느끼도록 하자. 그건 나중의 내 몫이다. 그만큼 또 열심히 살 이유를 찾겠지.  

 그러니까 휴가에는 말이지,,  오히려 TV를 끄고, 유튜브도 끄고, 채팅창을 닫고, 온전하게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먼저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보의 범람에서 벗어나서 멍-하니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고요한 여유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나면 어쩐지 정신이 좀 차려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다시 넘쳐나는 정보를 읽고나면 좀 다르게 보인다. 리스트만 봐도 토할 것 같던 마음이 어쩐지 진정된다. 

 모든 면에서 다 잘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속도와 다른 사람의 균형감각을 흉내낼 수는 없다. 나는 그냥 나대로 사는 거다. 못하는 것은 못하는 대로, 조금 느리면 느린대로, 남들보기에 영악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내가 성장하는 속도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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