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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Nov 06. 2022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

어린 시절 영화의 추억


우리 집은 전파사였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과 비디오는 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고장난 물건을 줏어오거나 해도 언제든 고쳐서 중고로 팔아야했기 울집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간은 짧았다. 가끔은 고장나서 수리맡긴 물건에서 재미난 것들을 발견할 때도 있었는데, 언니는 고장난 카세트플레이어에서 구출해낸 테이프가 마침 HOT 1집이어서 앨범을 처음으로 들어볼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외에 간혹 비디오플레이어도 테이프가 엉켜서 수리를 맡기는 경우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 이런 비디오가 있으면 주인이 찾아가기 전까지 몇 번이나 돌려보고는 했다.


이 영화도 그렇게 만난 작품이었다. 가난하고 평범한 집안에서 문화생활이라고 텔레비전이 전부 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나이대에 손에 잡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영화는 일본영화였고 제목은 한자로 되어 있어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천평의 시"였다고 기억한다.


일본 개화기 무렵이었고 일본 게다와 전통의상과 생활상이 나오기에 일본 문화의 왜색이 짙어서 90년대에 쉽게 접하긴어려운 작품이었다. 주인공은 큰 부자인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부잣집 장남으로 8살남짓이던 당시 나와 또래이던 시절을 떠올린다. 굉장한 부자인 그 집에서 천방지축 크고 있던 주인공은 어느날 가족의 전통이라며 미션을 하나 받게된다. 비단옷을 벗기고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같은 가난한 보따리상 차림에 나무로 된 일본식 솥뚜껑 수십개를 부여받는다. 나가서 집집마다 다니며 팔아오라는 내용이다. 다 팔고 올때까지  다른 혜택이 없고 매일 나갈 때마다 주먹밥을 쥐여준다. (사실은 닌자같은 보호자가 몰래 따라다닌다)

 아이는 처음에 너무나 부끄러워하고 투덜대며 돌아다니고 주먹밥도 맛없다고 처음엔 버리기도 한다. 한번은 귀찮은 솥뚜껑을 개울에 버려버리고 싶다고 상상하기도 하고 동네 아줌마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억지를 쓰기도 한다. 그러다가 결국 몇일이 지나도 통하지 않으니까 솥뚜껑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문득 들여다보게 된다. 가족들은 밥을 짓기위해 사용되는 솥뚜껑의 쓰임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고 아이는 문득 솥뚜껑의 가치가 보이가 시작한다. 돌아다니면서 솥뚜껑을 만드는 과정도 보게 되고 기억은 잘 안나지만 뭔가 조용히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솥뚜껑의 존재가 고마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물가에 쌓여있는 설거지하려고 둔 솥뚜껑들을 보게 된다. 아이는 다가가서 솥뚜껑을 설거지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발견한 동네아줌마들은 지금 솥뚜껑을 파괴해서 새것을 팔려는 거냐며 당황해하고 아이를 나무란다. 아이는 자신이 깨달은 솥뚜껑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며 마음에서 우러난 것임을 이야기한다. 동네 아줌마들은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솥뚜껑에 대한 가치를 아는 아이가 파는 솥뚜껑을 사고 싶다며 하나씩 사주게 된다. 아이는 한층 성숙한 장사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고 어른이 되어 이야기하며 막을 내린다.


 너무나 교훈적이고 전형적인 감동라인의 일본식 영화였다. 도시화되기 전에 일본 시골의 정취나 삶의 모습도 많이 나온다. 어린시절 처음 봤을 때는 정말 너무 재미없었다. 너무 잔잔하고 교훈적이었다. 렇지만 난 다른 비디오테이프가 하나도 없고 남는 시간은 많았다. 두번 세번 그리고 몇달에 한번씩 이 테이프를 돌려봤다. 그 온건한 영화의 교훈과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갔던것 같다.


자신의 일이 무엇이든 그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의 일에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장사는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봐야한다는 것 등등.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은 미루고 미뤄오던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영화의 냄새와 정취, 분위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나모리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는 그 때 조용히 그 영화 내용에 스며들었던 기억을 불러온다. 지나치게 일본적인 일에 대한 운명론적 사고관이랄까. 하지만 어쩐지 그 클래식한 교훈이 요즘처럼 100억을 벌어서 이어족 되겠다는 사람이 많은 요즈음에 더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일로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돈 많이 벌고 싶다거나 대기업에만 계속 다니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직무지원자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던 요즘이다. 어쩐지 마음이 교화되는 느낌이다. 삶의 반이 일이라면 그 반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본인자신이다. 일하면서 성장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난 여전히 느리게 살아가고 있지만 원래 내 특기가 장기적인 부지런함이다.


여튼 전파사에 딸린 단칸방에서 네 가족이 살면서 아빠 다리에 앉아서 노잼 예술영화를 보던 어린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뱃속에서 지금도 놀고 있는 우리 새싹이에게도 그런 고요한 열정을 잘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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