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 상장 철회에 대해서 자꾸만 거론되는 이 단어가 불편하다.
최근 컬리가 상장의사를 철회했다.
이커머스 업계들의 이후 상장 여부를 결정하는 가늠자로 여겨졌다는 컬리 상장 철회는 아무래도 이후 상장을 고민중이던 11번가나 여타의 기업들에게 모두 '지금은 아니다'라는 확실한 의사로 보여질 것이다. 무려 한 때 4조원이나 육박했던 기업가치가 1조 언저리로 내려간 것도 모자라서 지금 크게 상장하면서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오히려 상장 후 곤두박질 치는 주가로 인해서 민심과 사내 인원들의 보상까지도 망가질 수 있으니 어려운 선택이지만 나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나는 주류가 되는 이커머스사의 민감한 전략 정책에 대해서는 섣부르게 말을 공식적으로 쓰거나 기고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 컬리 상장 철회 과정에서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야기중에 한가지 정말 이야기 나누고 싶은 점이 생겼다.
풀필먼트 물류센터의 규모의 경제란 과연 무엇일까
컬리가 상장을 필요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연 현금의 유입일까?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최근에 창원이나 거점에 물류센터를 더 설치해서 물류센터 규모의 경제를 노린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난 이 말이 지금 유효한 전략인지 그리고 정말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규모의 경제'란 규모가 커지면서 1개 단위당 생산단가나 비용이 낮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물류창고라면 들어가는 재고의 적재, 물동량의 증가로 인해서 인건비나 창고운영비가 낮아져야 한다. 추가로 물류창고를 짓는다면 배송에 들어가는 유류비라든가 지역 인재 선발로 인건비도 줄일 수 있어야 하고..
하지만 이게 대부분을 매입을 기반으로 하는 컬리가 물류센터에 추가투자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걸까? 물동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매입량이 늘어나거나 거래량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식품상품 위주로 매입을 하는 컬리에게는 매입량을 늘리면 원가가 내려가겠지만 반대로 엄청난 폐기량의 리스크가 따라온다. 그리고 거래량을 늘리려면 기존의 컬리가 아니라 다른 쇼핑몰(ex. 쿠팡프레시)에서 장보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끌고오지 못하다면 이 모든 물동량을 커버하긴 어렵다. 여기서 또 다른 비용인 프로모션 비용에 대한 부분도 분명히 추가로 들어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말 비용을 더 투자해서 지역까지 새벽배송을 넓히는 것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명확하게 내부에서 어떤 계산을 통해서 결정을 했을지 모르지만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이 계속해서 생겼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컬리가 본인들 입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겠다는 이유로 물류창고를 더 짓는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점이다.
난 이 문제의 모든 의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보도하는 언론사가 '규모의 경제'를 '물류창고'와 '풀필먼트 센터'를 구분하지 못하기 떄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물류창고는 기본적인 리테일 커머스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사입한 상품을 재고 저장관리하고 내보는 것에 있다. 반면 풀필먼트센터는 이 물류관리를 SaaS 서비스 형태로 건당 비용으로 관리하게 해주는 방식을 의미한다. 즉 우리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물건 뿐 아니라 제 3자가 다른 플랫폼을 위해서 물류를 관리한다고 해도 빌려줄 수 있는 개념이다. 이 용어 자체가 아마존의 FBA에서 나온 거고 핵심은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은 물류센터 자체를 넓힘으로써 활용도를 높이는 것에 있다. 쿠팡은 이미 확장된 거대한 거래량에서 로켓배송 외에 제트배송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러한 효과를 거두고 있고 이미 아무 것도 없던 전국에 물류창고를 까는 긴 여정을 이겨냈다. 그렇기에 규모의 경제라는 말을 붙여도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서울 지역을 고작 벗어나고 있는 컬리에게 물류센터 몇개를 더 짓는다고 해서 '규모의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비단 컬리 뿐 아니라 물류센터 1개만 짓는다고 해도 '규모의 경제'를 운운하는 언론사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이커머스에서 '빠른 배송'은 소비자 서비스의 영역이고 '비용'의 영역이다. '오늘의 집' '정육각' '오늘회' 그리고 '쿠팡'까지도 모든 사례를 보았을 때 물류센터 한두개를 늘리는 과정으로 '규모의 경제'를 가진 이커머스를 만들어서 뭔가 경쟁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굉장히 먼 이야기다. 쿠팡도 10년 넘게 망할거라며 떠드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있어왔다. 물류는 비용이다. 독점기업이 아닌 이상 계속해서 비용일 뿐일 것이다. 이미 많은 플랫폼사들이 그래서 제휴와 임대 형태의 물류센터 형태의 빠른 배송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시 옮겨가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돈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면, 성장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컬리가 상장의 과정을 통해서 좋은 평가를 받아서 돈을 더 받아서 물류창고를 지으려고 했다는 해석에 마냥 동의하기만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지금처럼 민간 소비시장이 위축된 상태에서 프리미엄 식품 소비는 위협이 가해지고 이미 일반 공산품위주 빠른 배송은 쿠팡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카테고리를 늘리고 판매처를 늘리는 것은 오히려 거래량이 늘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준비였을 가능성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물론 억지 상장에는 이미 많이 희석된 투자자들의 조급한 압박도 분명 있었을테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위바위보의 관계다. 플랫폼이 언제나 그렇듯이 쉽게 결론을 짓고 목표가 무엇이었다고 설명하기는 그건 정말로 내부자만이 아는 것이 아닐까.
난 요즘 몇년간 이커머스 시장을 바라볼 때 무조건 물류하고만 연결시키고 모든 것을 물류센터의 관점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마음 깊숙히 불편하다.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을 견인한 가장 최근의 요인이 로켓배송 - 오토바이 배달 - 새벽배송으로 3연속 이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이것은 배송이 핵심이 아니라 생필품 - 음식 - 신선식품으로 이어지는 카테고리의 확장에서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하기 때문이다.
뭐 여튼.. 나는 전략 전문가는 아니지만 오히려 지금 컬리에게 닥친 문제는 물류창고를 더 지어서 전국으로 확장하고 그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커머스 전문가인 기묘한 님의 오늘 메일에서 던진 메시지에 더 많은 공감이 가는 바다. (마지막에 링크 있음)
타회사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 그저 화이팅을 보내고 싶다.
우리 다같이 이 시기에도 버텨서 살아나봅시다.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iPF7SNn7g3bAoA8_l74HOuYBuUDPa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