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그냥 Feb 04. 2023

출산도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엄마의 희생이 아닌 PO로서 합리적인 선택이다


조기수축으로 입원 16일째. 33주차 3일을 지나고 있다.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하는 이런 한량같은 시기는 다시는 없겠지만 피할 수 없어서 즐기기엔 감옥과도 같다. 조기수축방지제인 라보파 용량을 낮추려할 때마다 되살아 나는 수축에 더이상 조산이 아니게 되는 35주에야 무조건 가능하다는 퇴원은 아득하게 느껴졌다.  벌써 2번째 실패다.  35주 달성까지 앞으로 남은 날짜는 10일 남짓.  집에 가지 못하는 답답함과 가족에 대한 보고싶음, 업무에 대한  갑작스런 이탈 등에 밤마다 조용히 울기도 많이 울었다.  

예상치도 못햇던 빠른 출산휴가도 시작했다.


거봐라.  출산은 엄마의 희생이야

 소식을 들은 모든 주변인들이 나에게 희생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엄마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고 모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모든 블로그들은 본인의 고통과 아기에 대한 모성애를 드러내며 자신의 인고의 희생을 표현했다.  

 난 정말 한달이라는 시간을 희생만 하고 있는걸까? 이건 오로지 엄마가 부실해서 혹은 엄마의 잘못으로 생겨난 일일까?


문득 이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잘 아는 개발 프로젝트에 빗대서 생각해봤다.


임신과 출산이 만약 개발 프로젝트라면?

요구사항은 단 하나, 건강하고 멀쩡한 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아기가 만들어지는 공수는 40주다.  여기에는 개발과 테스트 기간이 모두 포함된다.  실제로 아기는 25주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의 장기와 사람의 형태가 완성되어 있다.  정말 운이 나쁜 경우 25주에 조산을 해도 인큐베이터에서 연명치료로 살아나는 기적적인 해외토픽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뒤로 40주까지는 만들어진 장기를 튼튼하게 만들고 자라나는 시기다.  어떻게보면 테스트 기간이다.

 아기는 25주 정도면 태동을 하고 딸꾹질도 한다. 빛 밖에 구분하지 못하지만 눈도 깜빡인다.   아직 사용할 일이 없지만 모로반사를 통해 다리 기능 테스트와 양수를 이용해서 폐호흡을 연습하는 중이다. 딸국질은 폐호흡 연습의 흔적이다. 개발에서 테스트서버에서 실험하는 것과 똑같다. 근데 이 부분이 핵심이다.

 조산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자가호흡 문제라고 한다.  35주 미만의 아기는 자가호흡을 할 수 있는 폐성숙이 덜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만약에 그 상태로 태어나 버리면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고 운이 나쁘면 이 과정에서 폐손상이나 시력손상 등 엄청난 합병증이 올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에 인큐베이터와 항생제 등을 통해서 생겨날 수 있다고 일부 학계에서 주장되는 소아비만이나 자폐증 등은 인과관계도 분명치않은 옵셔널한 리스크다.

 그런데 폐기능은 태어나봐야 자가호흡이 되는지를 알 수가 있기에 모험을 하기엔 리스크가 크다. 엄밀히 말해서 폐호흡은 양수안에서 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개발할 때도 테스트 서버 횐경상 secure 프로토콜에 대한 테스트가 안되거나 결제수단중 일부가 안될 때가 있는데 똑같다.  오픈해봐야 알기에 더더욱 오픈이 신중해지는 부분들이다.


 지금 내가 겪는 주기적 자궁수축이 심해지면 아기가 밀려나오게 되는데 조기수축이 조산을 초래하는 가장 큰 이유다. 원래는 지금 일어나면 안되는 현상이다.  개발 프로젝트로 치면 아직 테스트가 한창인데 배포담당자가 자꾸 본인 퇴근하겠다며 미리 릴리즈 버튼 먼저 누르겠다고 하는 꼴이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프로덕트오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완료조건을 충족할 지 안될지 확인이 불분명한 준비도 안된 서비스를 오픈하는 대참사는 먹아야한다.  오류가 펑펑 터져나오는 꼴을 볼 수는 없다.  테스트에 대한 퀄리티 컨트롤이 안되는데 저 말도 안듣는 배포담당자를 냅둬서는 안된다.  개발이 다 된 것 같아도 테스트 기간을 충분히 다 사용해서 혹시나 생길 리스크를 줄여야한다.

 애자일?자가호흡은 우선순위 높은 MVP다. 애자일한 배포로 생각하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대충 만들어서 기술부채 만들기엔 이 프로젝트는 오픈하면 수정이 거의 불가능하고 영향도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자책감과 가슴 아픔은 평생 따라올 덤이다.

 

산모님이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좀 만 더 참고 35주까지 버텨보시죠

모닝 태동검사에서 자궁수축이 또 잡히고 퇴원이 또 불발됐다.  담당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분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뇨.  저 일찍 퇴원 안해도 되요.
35주까지 있어도 상관없어요


 이건 담당 의사쌤에게 억지로 당하는 희생이 아니라 아기 출산 프로젝트의 프로덕트오너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내가 직접 의사결정을 한다고 해도 같은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집에 가겠다는 배포 담당자를 멱살 잡고 붙잡고 있고 어서 하루라도 더 테스트 해보자고 안전성이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설득해야한다. 성격대로라면 배포담당자 자리 옆에 의자 갖다놓고 앉아서 테스트 끝날 때까지 지키고 있었을 게 눈에 선하다. 이른바 병풍친다고 하지..

 지금 그것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 내가 이렇게 24시간 링겔을 맞으며 누워있는 것뿐이다. 다를 것은 하나도 없다.

 오픈 후 제대로 릴리즈공지하려면 오픈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만들어졌는지도 항상 중요하다.  우리 아기도 나도 막바지 노력이 한창이다.  지금까지 문제없이 잘 달려온 프로젝트인데 잘 마무리하고 싶다.  


 이 시기만 넘기면 된다.  엄마로서 나는 아무 것도 희생한 것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희생같은 감정적이고 말랑한 단어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유세를 부리고 싶지 않고 억울하고 슬픈 사람이 되고프지도 않다. 문제의 원인은 아기도 엄마도 아니라 불수의근으로 주인 말도 안듣는 자궁의 퇴근 욕구일 뿐.

매거진의 이전글 IT판에도 워킹맘은 있겠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