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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Feb 11. 2023

슬리퍼에서 찾은 데이터 리터러시 감각

하나를 보면 열이 보인다.


옛말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일상속에서 데이터 감각을 설명할만한 상황이 있어서 기록을 남겨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산부인과병원 2인실에 24일째 입원중인데 옆에 산모만 벌써 5번째 바뀌었다. 2인실은 5인실보다는 좋은 편이어서 신발벗고 사용하는 바닥 보일러가 있고 내부에는 산모환자 전용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안에는 샤워부스도 있는데 당연히 산모만 쓰도록 되어있고 남편보호자들은 병실 바로 밖에 있는 남자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현관에는 각 환자별로 1개의 슬리퍼가 제공되어 놓여져있고 슬리퍼에는 번호가 쓰여있다. 매일 생수 1리터 한병과 세수할 때 사용되는 수건이 제공되며 인당 쓰레기통이 하나씩 있다.

병실에는 커튼 뒤 침상과 소파,서랍장이 개별 방처럼 분리되어 있고 공통으로 쓰는 화장실 가는 길에 옷걸이와 냉장고도 각 개인별로 쓸 수 있도록 나란히 비치되어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입구쪽으로 화장실을 가려면 이 옷장과 냉장고를 지나서 화장실로 가야한다. 물론 나는 치료 때문에 수액 폴대를 하루종일 끌고 다녀야하는 사람이다.


정리해보면 이런 그림이다.

2인실의 전경


5커플이 제왕절개2커플와 자유분만3커플로 모수는 일단 작지만 이 5커플에서 아주 기묘한 차이가 있었다.

오로지 2커플에게서 문제가 일어났고 모든 중도덕 문제가 전부 일어났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도 신기할 정도였다.

바로 슬리퍼 문제다. 다른 물품들이 상대적으로 주인의 구분을 하기 쉽다면 현관의 슬리퍼는 위치로만 주인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이 두 커플은 내가 가져다 놓은 개인 슬리퍼와 환자2용 슬리퍼를 맘대로 신고 다니는 것이 몇차례 목격됐다.  그 외에 공동 병실에서 불안끄고 새벽까지 떠든다든가 산모 전용 화장실에서 보호자가 사용한다거나 폴대를 밀고 다녀야하는 복도를 캐리어나 짐으로 막아놓는 등의 소소한 문제도 모두 이 슬리퍼를 맘대로 사용한 커플에게서만 나타났다.


잘 돌아다니지 못하는 누워있어야만 하는 환자인 내가 내 슬리퍼를 신었을 때 묘하게 발볼이 늘어났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정말이지 분노가 살짝 올라왔다.

"공중도덕의 기본이 안됐네?" 미간에 팍 주름이 잡히는 순간 이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 두 커플은 기본적인 데이터 리터러시가 부족하구나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신규 입원한 커플눈앞에는 현관에 구분없이 놓여진 슬리퍼는 2종류였다.  병원에서 제공해주는 슬리퍼 2컬레와 모양이 전혀 다른 내 개인 슬리퍼.  마치 데이터가 규칙없이 늘어져 있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서 데이터 리터러시가 있는 사람이라면 의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도 관찰한 내용과  3가지 전제조건을 떠올릴 수 있다.


전제조건1.  이 병실은 2인실이다.
전제조건2.  병원은 슬리퍼를 제공해준다고 했다.
전제조건3.  이 병실에는 1명의 환자가 이미 있다.

그리고 나서 데이터에 해당하는 슬리퍼를 직접 한번 보자.  

분명 차이를 관찰 할 수 있다.

두가지 데이터가 존재한다. 지금도 나에게 제공된 병실 슬리퍼를 신고 나간 옆 보호자.
슬리퍼 종류1 - 병원 이름과 병실, 환자번호가 기입되어 있다. 사이즈가 프리사이즈다. 갯수는 2개다.
슬리퍼 종류2 - 홀로 모양이 다르며 병원과 조금도 상관없는 기업명이 쓰여있다. 사이즈가 여성사이즈로 작고 갯수는 1개다.


자, 이 관찰 결과로 무엇을 추론할 수 있을까?

센스가 있다면 이 문제는 굉장히 쉽다.


1.  각 환자에게 병원에서 제공해주는 프리사이즈 슬리퍼는 1개씩이며 기입된 환자 번호로 매칭이 가능하다.
2.  검정 슬리퍼는 먼저 와있는 병실 환자의 개인 슬리퍼다.  

고로, 자신의 환자번호에 맞는 1번 슬리퍼를 사용하고 검정 슬리퍼는 사용해선 안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데이터 리터러시라고 생각한다.  알고 있는 전제조건과 관찰내용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생각을 통해,  데이터에 대해서 기준을 가지고 분류하고 이유를 찾고 이후 행동 액션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니다.


간혹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SQL을 열심히 배우고 오는 주니어중 데이터를 보고도 인사이트와 액션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낫놓고 ㄱ자와 연결 시켜 보지 못해서 탐정으로 다잉 메시지 찾아내지 못하는 거고 어쩌면 제대로 보지도 않고 옆 환자의 개인 슬리퍼를 맘대로 신고 다니는 무례함을 저질르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데이터 리터러시가  부족하다면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법을 배워봐야 아무 소용없다.  데이터 전문가가 있어도 어떤 전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요청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데이터 리터러시는 어떻게 키워야하는가? 이건 분명히 소프트스킬의 영역이다.

정도도 없고 편법이나 속성과외는 더더욱 없다.  평소에도 잘 관찰하고 생각해서 행동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머리속에 딱 3가지만 기억하자.


명확하게 정리된 전제조건 : 도메인 지식이나 원리

관찰된 대상의 차이점 : 객관적인 관찰로 편중되지 않기

분류와 추론 : 억지가  아닌 합리적인 해석과 이에 따른 액션 아이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우리 모두 하나부터 잘 하자.





덧.  오늘로 입원 24일차.  이 글도 누워서 태블릿으로 씁니다.

       아마도 내일은 진짜로 퇴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에 가서도 아직 휴식이 필요하지만 집에 가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걱정+응원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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