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정의를 회사 성과와 인정에 두지 않을 수 있다
어제 오랜만에 한국일보 박지윤 기자님과 통화를 했다. 작년에 진행했던 한국일보 인터뷰 시리즈인 '일잼원정대'에 대한 다음 플랜 이야기를 듣고, 또 그간의 근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일에 대한 여러가지 가치관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지난 호황기의 스타트업과 IT업계의 풍토에 대해서 이야기가 닿았다. 전세계적으로 기네스북 오를 것 같은 유래없이 폭망한 출산율이 결국은 20대 경제적 안정과 닿아있고 결국은 직무적인 조급함에도 닿아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
특히 지난 2020년과 2021년은 부동산 호황과 유래없는 주식, 코인 등의 금융시장이 마치 투기꾼처럼 변하면서 지금 청년세대의 삶의 기준이 많이 바뀐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기준이 바뀌었고, 누구나 빠르게 성공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결국에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으로 흐르는 이야기. 게다가 직무만 적당히 바꿔도 금방이라도 억대 연봉을 만들 것 같던 임금 인플레이션까지 아주 3박자가 척척 맞아들어갔던 '이상한 시기'였다. 거기다가 블라인드나 에브리타임같은 익명 커뮤니티에서부터 대놓고 보여주는 인스타그램의 비교문화까지.. 누구나 언제든지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고 쭈글이가 되서는 묘하게 삐뚤어지기 딱 좋은 시기였다.
그렇다보니.. 한쪽에서 묘하게 모든 것을 포기할 때 다른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열정적인 무리들도 나타났던 것 같다. 호황기니까 누구 말대로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서 무조건 돈을 벌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거나 엄청난 사회적 성공을 단기간에 이루기 위해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던 듯 하다.
그렇게 성장한 무리들이 N잡을 가르치거나, 에듀테크라고 지칭되는 온라인 성인 교육 시장이 아니었던가. 특히나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회가 나오면 인생이 바뀔 것만 같은 기술 집약적인 스타트업 세상에서는 '갓생'을 살겠다며 자신을 말려죽이고 또 그 이면에는 갓생을 못살겠다며 스스로를 또 말려죽이는 이중적인 모습들이 만연해있다. 나 역시 이런 현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그냥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지만, 사람들의 조급함을 볼 때면 한가지 소리치고 싶은 게 있다.
나의 성장이 당장의 회사의 성과와 정비례하지 않는다
어릴 때 토익을 공부할 때도 2가지 종류의 강의가 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서 영어실력 자체를 키우는 스타일의 강의가 있다면, 반대는 무슨 단어를 들으면 어떤게 답일 확률이 높다는 근본없이 점수만 높일 수 있는 노하우 강의가 있었다. 나는 당시에도 전자의 강의를 선택하는 편이었다. 편법이라는 것은 말그대로 편법이라서 그렇게 점수를 올려봤자 성적만 그럴듯하게 보일 뿐 나에게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성향이 무척 갈린다. 회사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에도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부분부터 고쳐 나가면서 실패가 있더라도 학습하며 성과를 내재화하며 원리까지 익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마음만 급해서 일단 닥치는 대로 성과가 나올만한 겉핥기식 모방 전략으로 성과를 만들어낸 후 그것이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특히 퍼포먼스 마케팅이 횡행했던 2020년즈음에는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이른바 '다크 패턴'이라고 불리는 UI나 UX라이팅으로 고객을 흔들거나 서비스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만들어서 일단 MAU를 높이기만 하면 성과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장의 전환율만 오르면 기업의 장기적 이미지나 윤리적인 부분은 개나 주라고 생각한 데이터 마이오피아의 시대였다.
그것도 시대적 실패를 학습하고 반성 한다면 전자의 근본적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런 자신의 성과를 자신의 성장이라고 착각할 때 나타난다. 대부분의 회사의 사람들의 일이 급진적인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경험을 팔고 다닐 때, 처음에는 부럽다가도 듣는 사람은 점점 불쾌감으로 변질된다. 그게 바로 지나치게 과대해져버린 '에고ego'의 모습이 아닐까.
최근 읽은 <에고라는 적>과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3가지 책은 저자의 삶의 궤적이나 하는 일, 그리고 굳이 사회적 입지나 성공의 척도를 봤을 때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한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상황에 취하지 말 것'이다. 오래된 표현으로 말하면 '겸손'이고, 현대적 표현으로 말하면 '메타인지와 객관성'이다. 무엇 하나를 잘한다고 해도 모르는 것은 여전히 많고, 자신이 해보지도 않은 다양한 영역들과 다른 이유들이 있다. 어차피 내 인생에서 평생을 학습한다고 한들 내가 다 알 수 없다. 처음에는 멋있고 부럽게 보이던 고성과자들이 나중에는 저러다 위험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는 보통 이 '에고'가 날뛰고 설쳐서 상대방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에서 한 가지 더 드는 생각은,
오래가는 열정은 타 죽을만큼 뜨겁지 않을 수 있다.
당장 오늘 인기 있어서 눈에 띄고 화려한 것보다 꾸준하게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멋있다. 인기는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나중에 또 다시 생길 수도 있다. 가수 '윤하'의 제2의 전성기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그저 꾸준히 음악을 해올 뿐이었다. 마찬가지다. 지금 20대 중반에 엄청나게 특출나든 30대에 사회적으로 주목을 많이 받든 우리는 40대에는 무엇을 할지 50대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 상상할 수 없다.
지금 타죽을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을 불살라서 멋진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성과를 자신이라고 믿으면서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무른다면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말하는 일본의 언론처럼 '나는 원래 고성과자고 지금 슬럼프야'라는 말만 30년간 반복하며 도리어 과거 영광에 갇혀 버릴 수도 있다.
한 때 나도 밤을 꼴딱 새울 정도로 열정적으로 한가지 문제에만 매달리고 자신을 불태우면서 '살아있는 느낌'을 추구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계속해서 새로 도전하고 성취하지 못하면 쭈굴이처럼 고개를 떨구고는 했다. 근데 그건 아드레날린의 장난일 뿐 계속해서 지속할 수 없는 열정이었다. 체력이 됐든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했든, 아니면 나의 지나치게 강한 에고에 누군가 눈을 흘리게 된다.
오래가는 열정은 타죽을만큼 뜨겁지 않다. 그냥 기본에 충실한 사람은 뜨겁기보다 안정적이다. 이건 MBTI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늘 하루 못해도, 내일 또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고 동일한 목적과 방향성으로 계속해서 조금씩 걸어가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다. 물론, 이 살아남음이 회사에 장기 근속하고 임원되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회사 네이밍이나 직업적 망상을 자신과 동일시 하지 말길
회사는 회사일 뿐,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을 설명해줄 수 없다. 그렇게 보인다면 그건 회사의 직원 그 이상의 정체성이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우리 나라의 오랜 문제 아닐까. 은퇴후 갑자기 병이 들거나 퇴직 후 삼식이가 되어서 구박받는 대기업임원들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나의 성장의 지표나 방향성은 내가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당장의 평가가 조금 낮게 나오고 성과금이 조금 덜 나오고 그런 것에 일희일비해서 따지고 있다는 것은 나의 성장에 대한 평가를 전혀 하고 있지 않거나, 좋은 성장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굉장히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다.
새로나온 <슬램덩크> 극장판이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슬램덩크는 그럴듯하게 전국재패를 하면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인 강백호는 산왕과의 경기에서 허리를 다쳤고 북산고는 그 다음 경기에서 바로 떨어졌다. 성과의 개념으로 보자면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 만화를 보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은 농구가 뭔지도 모르던 강백호가 결국 농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동료들을 믿고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는 진정한 내적 성장이 깔려있기 때문 아닐까. 성과위주였다면 진짜 천재적인 강백호가 서태웅보다 잘하게 되서 슬램덩크라는 개인기로 전국재패를 만들어야 한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북산고처럼 여러 회사 중 하나일 뿐이고, 나는 풋내기 초짜이거나 기껏해야 '안경선배 권준호' 아니면 이름도 잘 모르는 벤치멤버 일수 있다. 그렇다고 내 성장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산왕고에 다니는 이름도 기억 안나는 벤치 멤버들은 또 어떨까. 산왕고 다니는 것만으로 거들먹 거리고 그게 다라고 말하면 북산고에게 지는 날도 오게 된다.
성장은 성과가 아니고, 산왕고에 다닌다고 다 정우성처럼 NBA 가는 게 아니다.
온건하게 하나의 레퍼런스를 남기며 하나의 평범한 사회적 일원으로 나름대로 성장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내 목표다. 해외 유명대학이나 세계적인 테크기업 출신도 아니고 엄청난 서비스를 만들어서 세상의 사람들의 생활을 아예 바꾸고 싶다는 거대한 야망을 꿈꾸고 그게 되지 못한다고 자신을 기죽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도 모두 깃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