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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May 22. 2023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책이나 보고 쉬고 싶다

뻥치지 마라, 내 몸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책이나 잔뜩 보고 쉬었으면 좋겠어"

문득 머리 속에서 이 문장이 튀어올라온다. 머리 속을 강렬하게 가득 채우는 이 문장.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온 내 몸과 마음의 지친 신호인 듯 보인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인다고 몇 일간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집에 있어본 적이 있다. 눈앞에는 읽고 싶던 책 몇권을 예쁘게 쌓아두고 음악도 한쪽에 틀어두고 예쁜 향초에 불도 붙인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캡슐 커피 머신에서 향긋한 차도 한잔 내린다.  

이제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창가 곁 소파에 앉아서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그것이야' 생각하며 일단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카톡에 있는 친구에게 나의 쉼을 알린다. 


그리고 난 뒤 2시간뒤, 나는 그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 그 상태 그대로 여전히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책? 펼쳐보지도 않았거나, 펼쳐놓고 손으로 잡은 채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배경음악으로 유튜브 채널을 틀어놓았던 큰 TV화면은 이제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의 영상을 쉴새없이 서칭하고 있다. 2시간이 뭔가.. 4시간도 5시간도 가뿐이 지나간다. 

그리고 어쩐지 의미없이 지나가버린 시간에 휴식은 커녕 더 지친 느낌이다. 내 몸이 원하는 것은 지식과 생각인데 실제 채워넣은 것은 산만한 영상 다발이었으니까.. 


이쯤되면 의심스러워진다.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이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책이나 보는 게 맞았을까
그리고 지금 난 제대로 쉬기나 한걸까?


다년간의 경험으로 나는 똑똑히 알게 됐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책이나 보고싶다"라는 말 자체가 그럴듯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냥 지금 머리 아프고 복잡한게 하기 싫어서 '책'이라는 양심에 덜 위해되는 존재를 끄집어 내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래놓고는 정착 책을 제대로 읽는 때는, '잠들기 싫어서' 뒤척 거릴 때 뿐이었다. 


이래서 시간이 없다는 소리는 어쩌면 정말 그럴듯한 개소리다. 시간이 없는게 아니라 그냥 하기 싫은 거다.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바뀐 내 자신을 볼 때 더 절절하게 깨닫는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하지 않던 빨래며 몇일간은 쌓아두던 설거지를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즉시즉시 해치워버리는 내 자신이 너무나 놀랍다. 베란다에 쓰레기 버리는 곳의 정비되지 않은 상태로 3년가까이 살아왔는데, 아기가 태어나니 굉장히 빠르게 정리를 해버렸다. 계속햇 집의 공간을 정리하고 개선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느니 휴식이 필요하다느니 생각했던 내 자신이 어이없게 느껴진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나는 하기 싫어서 안했던 것 뿐이다. 7살 때 이틀 안에 성경문구를 외어서 암송하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해야할 때였다. 나는 죽어도 외우지 못하겠다며 성경문구를 읽는 것 자체를 징징댔다. 해보지도 않고 징징댄다며 크게 혼나고 문 밖에 서서 엉엉 울면서 성경문구를 읽어댔다. 발표자 중에서 제일 긴 문구를 받았기에 자신이 없었지만 결국 외었다. 그리고 30년이 넘은 지금도 그 문구가 머리 속에 박혀서 떠나가지 않는다. 자신감이 없어서이든 아니면 그 짧은 시간이 외우기에 부족한 시간이었든 7살 인생도 나름 바빠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든, 사실은 그냥 하기 싫었던 것 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할 시간에 그냥 해보면 놀랍게도 그냥 될 때가 분명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 호불호는 전혀 없지만 그녀에 대한 평전을 읽고 머리 속에 각인된 그 한 문장. 


바쁜 중에 해내지 못하면 한가한 중에는 절대 할 수 없다.
- 힐러리 클린턴  


'가짜 배고픔'처럼 종종 찾아오는 나의 멘탈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련다. 책을 보고 싶으면 자기 전에 읽고, 정말 그냥 쉬고 싶다고 진심으로 믿을 때는 그냥 푹 쉬는 시간을 주지. 책을 보고 쉬고 싶다는 개소리는 스스로에게 더이상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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