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물 안 일잘러를 아시나요> 07
우물 안 일잘러는 언제 이직을 택하게 될까
우물밖으로 탈출하는 것이 이직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이직을 택했다. 얼마나 언행불일치한 모습인가. 하지만 이직을 택하기 전까지 나는 사내에서 편한 것들을 벗어나서 일하는 방식만 바꾸는 우물 탈출을 꿈꿨었다. 사내에 남아있던 나의 익숙함과 쌓아온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내가 이 우물 자체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사내 메신저에 알람음이 울리며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메시지를 읽기도 전에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자마자 뒷목이 뜨끈해지면서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메시지를 보고 얼마간의 일을 한 뒤, 뱃속에서 무언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위경련이었다. 2년 가까이 회사의 대형 프로젝트에서 내 몫을 해내면서 일해나가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일의 입장에서 그러하듯이 필요한 만큼 정리하고 또 필요한 만큼 친절하게 그래서 누구에게는 선역일수도 누구에게는 악역일 수도 있게 내가 해온대로 역할에 맞게 움직였다. 그런데 몸은 알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스트레스의 원인은 메신저를 보낸 그 사람 자체는 아니었다. 그 사람도 나만큼 스트레스를 받아오고 있었을 터라 안타까울 뿐이었다. 프로젝트는 수많은 이해관계의 정리이고 그 의사결정은 조직의 방향성과 조직의 방식으로 정해진다. 그 전까지 익숙해던 그 조직의 결정이 버겁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체 이따위 결정은 왜 하는거야. 생각이 없나?”
상위 리더가 더 상위 리더를 통해서 정리한 결정들이 모두 바보같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 나의 일잘러라고 생각하는 에고는 극에 달했다. 모두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 힘겨운 프로젝트가 우여곡절 끝에 끝나고 회사는 운영이라는 평상시로 전환되고 난 뒤, 나의 태도는 더 가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요청이 오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저 사람들이 잘 몰라서’라고 생각했고, 일은 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에 대해서 실패하고 절망적인 결과만 떠올렸다.
에고에 대해서 쓴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나 외에 모든 사람이 바보처럼 느껴진다면 그 회사를 떠나야 할 때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의 본질은 내가 너무 잘나서 회사가 날 품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회사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 나 같은 사람이 방해가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우연히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를 본 것이 계기였다. 그 드라마에는 조한선이 연기한 ‘임동규’라는 인기 타자가 나온다. 소위 프랜차이즈 선수라고 불릴 만큼 구단을 대표하는 인기 선수이자 구단에서 가장 실력도 높은 선수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백승수 단장은 이 선수를 다른 곳으로 트레이드 시켜버린다. 드라마에서 이유가 잘 그려진다. 인기 선수라는 것에 취한 임동규는 구단내 팀원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고 팀웍을 흐린다. 그리고 구단의 방향성에 본인이 적합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이 잊은 듯한 모습이 보인다. 난 그 드라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스스로 일잘러라고 생각하고 평가도 잘 받으며 기세등등한 거만한 나 자신을 돌아봤다. 어쩌면 나는 꼴찌구단에서 혼자 잘났다고 우기며 팀이 더 잘할 수 있는 길을 방해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의사결정을 하고, 회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협업을 하고 의견을 낸다. 조직자체가 별로일 수도 있고, 조직 자체의 결정이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성공적인 전략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낸 것도 결국은 결과론이다. 그 과정에서부터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끝까지 실행을 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난 이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켜켜이 들어앉았고 누군가는 번아웃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오래 다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객관성을 가지고 날 보려고 노력해보니 더 이상 회사의 리더십을 따라갈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회사의 리더십에게 오히려 방해꾼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 에고가 지나쳐 조직의 순리조차 저버리고 자신의 일을 펼칠 공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면 그 회사를 떠나야 할 때다. 그리고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면, 당장 <블라인드>앱을 켜서 자사의 게시판을 하나하나 읽어보자. 최악의 극단적인 비판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하트를 누르며 동의하고 있다면 그 회사내에서 아무리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성장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당신은 이미 그 회사가 성공하든 망해가든 그 회사가 하고자 하는 방향을 방해하는 사람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이 회사의 서비스와 정책을 잘 알고 있고, 빠르게 일할 수 있다고 해도 이미 마음이 없기에 내가 없어져야 이 회사가 원하는 것을 더 하겠구나.”
결론을 내리고나니 서로를 위해 이별을 택할 수 있었다. 물론 ‘비전은 셀프’이기 때문에 다음의 회사가 날 무조건 성장시킬 거라는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적어도 회사의 의사결정에 대해서 한번 믿어보자고 생각할 수 있는 회사을 찾고 싶었다.
이직을 하지 않고도 우물을 탈출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우물이 기존에 일하던 방식을 의미한다면, 같은 회사에서는 우물을 벗어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나는 여기에 실패했었지만 이에 대한 좋은 교훈을 주는 친구들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약 1년동안 정확히 14주동안 매주 주말마다 모여서 기본 6시간 정도는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친구 2명이 있다. 한 명은 기존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또래의 연차를 가진 친구인 Cindy고, 다른 친구는 강의 수강생으로 만나서 여러가지 대외활동을 같이 하면서 친해진 동생인 Leina다. (이 친구들의 반응이 어떨 줄 몰라서 일단 우리끼리 부르는 영어 이름을 써본다. )
이 친구들을 처음 알게 될 무렵인 2018년~2019년 시기에 우리는 모두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다들 연차가 길기 때문에 일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비슷하게 자리잡아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함께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알게 된 것들을 나누고, 또 서로 자신이 일하는 환경에서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되는 것이 좋은지 가볍게 그렇지만 진지하게 서로 대화하고 나누는 시간들을 가졌다. 그리고 내가 임신과 출산을 마치고 거의 반년만에 만났을 때, 난 이 두 사람에게서 큰 영감을 받았다.
신디의 경우는 내 전 직장이 아닌 곳으로 몇 년전에 이직을 했는데 내가 기존에 있던 회사처럼 오래된 전통 대기업의 계열사였고, IT부문에 대해서 고전적인 외주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중이라고 했다. 작업의 방식도 기획자가 100% 기획을 하면 외주사가 수행하는 방식이라 아쉬운 점은 디자이너나 개발자들의 전문성을 더 많이 발휘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기존이라면 기획자가 100% 정리하는 기획을 더 선호하겠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좀 더 비즈니스적으로 의미있고 일을 하는 의미를 함께 더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했다. 팀장님에게 허가를 받아서 본인이 몇몇의 기획자, 디자이너와 팀을 이뤄서 구성한 프로젝트 내에서 외주개발에 전달하기 전까지 문서 작성 방식을 바꿔보고 일을 하는 방식을 바꿔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적용에 대해서 장점을 많이 차용해서 나름 절충적인 개선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나와 같은 13년차이기에 충분히 익숙한대로 해도 되고, 회사도 그걸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딱딱해보이는 회사에서 작은 프로젝트 조직이라도 사람들을 설득하여 일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신디는 자신이 가진 제약조건 내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넓히고 우물 밖으로 점프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레이나의 이야기도 훌륭했다. 레이나는 작년에 일의 방식을 바꾸고 싶어서 프로덕트오너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익숙한 상위 리더가 있는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실무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상위 리더 역시 회사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자 했지만 협업하는 대상들인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했다고 했다. 상위 리더와 실무에서 필요한 일의 작업 형태가 다르니 2인분으로 일해야해서 산출물은 별로 크지 않은데 두배로 힘들어졌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도 변화를 만들어낸 상태였다. 그 상위리더는 아쉽게도 회사를 떠났지만, 그녀는 프로덕트 오너로서의 역할을 더 잘 정비해서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좀 더 서비스의 현황 분석에 대한 부분과 방향성에 집중하기 위해서 회사와 상의해서 콘텐츠 생성처럼 PO가 하기 적절하지 않은 것은 외부전문가에 아웃소싱했고 덕분에 사용자도 더 늘었다고 했다. 그리고 업무에 있어서도 기획이 100% 되면 수행만 하려고 했던 동료들을 설득해서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더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프로세스를 정리했다고 했다. 그녀도 함께 이야기했던 것들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고, 지금은 업무량에 치이기 보다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직한 회사에서 여러가지 조직적 변화까지 있다면 위축되기 쉽다. 굳은 의지로 이직을 했어도 적응해야한다는 마음에 오히려 힘들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우물 탈출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여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또한 정말 훌륭한 성장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우물 탈출에 있어서 이직은 필수가 아니다.
내가 애정하고 오랜 기간 함께해온 회사와 함께 우물을 탈출하고 더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세계관을 확장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그 조직에 도움이 될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서로를 위해서 제 때 인사를 하는 것이 필요했따. 오랫동안 인정받으며 일한 조직을 떠날 때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 들 수 있었지만 이런 생각에 미치자 회사에 미안하지도, 회사에 이를 갈면서 나오지도 않게 됐다. 정말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다. 마치 서로의 인연이 다한 것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헤어진 연인들이 친구가 될 수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