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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Jul 31. 2017

여행과 견문의 상관관계

글로벌과 아무 관계없는 여행이 더 많다

 종종 그런 말을 듣는다.


저는 해외여행을 통해 보는 눈도 넓히고
뭔가 자신에 대해서도 깨닫고 싶어요

물론 대학생들이 내미는 고민이다. 휴학을 원할 때 나오는 단골 멘트이기도 하다.


이 말에는 두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1.'해외' 또는 '여행'을 통해 평소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혀진다.

2. '해외' 또는 '여행'을 하면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된다.


나는 최근 스위스를 여행했다.

내 평생 보지못한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들이 웅장하다는 말로는 표현도 안되게 늘어서있고

미세먼지따위 겪어본 적도 없을 거대한 숲과 풀밭이 나라를 휘감고 있었다. 거기다가 풀밭사이 작은 들꽃들과 파란 하늘을 수놓은 구름은 태고적 지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피르스트 하이킹코스에서

 그러나.  이걸 보고 있다고해서 더 큰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된 걸까?

 여행지에서 하루에도 수십명의 한국인과 중국인을 만나고, 아주 단순한 영어와 비자카드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이미 정보는 발에 채이도록 많아서 티켓팅이며 발권 아니면 기차 플랫폼까지도 앱으로 검색되고 누군가의 검증된 지식은 수십개의 블로그를 통해 비교분석의 대상이 됐다.


 내가 대학교 초년생에 책한권에 유레일패스 한장 들고 왔던 유럽과는 상당히 다르다. 아날로그적인 과거를 찬양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지도를 펼쳐보던 불안은 안전한 구글맵이 해준다는 점에서 나는 오히려 지금이 안심된다. 게다가 지금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경험을 효율적으로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해도 당시의 여행과 이번 여행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여전히 우리는 여행지를 소비하고만 있을 뿐이다.


글로벌한 인재가 아닌 글로벌한 소비자


 수많은 대학생들이 외국경험이나 외국친구와 연결짓는 '글로벌적 인재'라는 것은 과연 여행과 상관이나 있는 것을까?


 유명관광지일수록 아주 로컬적인 지식을 활용된다. 관광사업이 발달할수록 로컬의 컨텐츠의 아주 외적인 부분만 글로벌적 형태로 소비하도록 '언어'만 병렬로 채워진다. 쉽게 말하면 컨텐츠는 그대로인데 아주 피상적인 소비방식만 글로벌한 것처럼 위장한다는 의미다.  깊이는 없지만 빠르게 소비해 버리기는 너무나 쉽고 적절하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융프라우에는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로 된 안내문과 안내방송이 등장한다. 글로벌적 언어는 분명 모두를 마치 융프라우를 완벽히 즐기는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융프라우 꼭대기에서 즐기는 신라면이 고정된 상태에서 우리는 도리어 익숙함만 느낀다. '익숙한 언어'를 만나다보면  그곳만의 근본적인 가치관의 존재는 망각해버린다. 구조적으로 다른 문화권에 와있다는 걸 전혀 느낄 수가 없기에 우리는 그저 돈을 쓰는 소비자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깊은 자기성찰이나 넓은 시각의 확대가 끼어들기엔 즐거운 소비는 너무 편하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그나마 외국인에게 말한번 걸어볼 필요조차 없도록 한국에서 구글맵으로 가는 길이나 식당 메뉴까지 모두 외어간 여행자들은 로컬을 로컬답게 상대할 필요가 없다. 그저 아주 훌륭한 소비자로서 이용할 방법만 익히면 되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한 글로컬라이제이션

 글로벌과 로컬라이제이션의 합성어인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단어는 더이상 낯선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단어는 소위 마케팅적인 용도로만 활용되고 있는 듯 하다.


 키포인트를 잡아서 언어를 번역하고 알리는 것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표지판과 안내판을 꾸미는 것도 돈이 든다. 그러다보니 돈이 바로 나올 수 있는 곳에서만 글로컬라이제이션이 이루어진다.

 

 예전에 파리의 몽빠르나스타워에 간 적이 있다. 그 곳은 파리에서 유일하게 에펠탑보다 높은 건물로 야경을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다. 하지만 그 전망대와 같은 층에는 단돈 10유로면 맥주한잔을 마시며 동일한 경치를 볼 수 있는 레스토랑도 숨겨져있다. 전망대를 가는 표지판은 여러가지 언어와 안내가 많지만 그 레스토랑은 가는 길조차 제대로 나와있지 않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히 로컬고객은 그곳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멋진 정찬을 즐기지만 관광객에게는 3배가까이되는 전망대티켓과 매점만 주어지는 것이다.


몽빠르나스타워 레스토랑에서 본 파리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소비적 형태의 여행'는 너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곳만을 다니게되고 소비에 필요한만큼의 정신에너지를 쓰게 된다. 스위스의 알프스산맥이 높은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들 어차피 우리는 우주에서 이미 티끌인 존재임을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여행을 통한 견문확대의 가능성

 - 베이징공항에서 트랜스퍼를 위해 대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자판기가 눈에 들어왔다. 옆에 LCD화면에는 바로 모바일패이서비스로 결제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O2O의 발달된 중국의 모습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 스위스의 마트인 Coop매장에서 회원 로그인 후 상품만 바코드로 선택하면 픽업 혹은 배달이 가능한 스마트 서비스를 보았다. 이 것은 O4O(offline for online)의 실제 예였다.

 - 스위스는 거대한 산에서 나무와 만년설이 풍족해서 물과 목재가 넘쳐난다. 목재로 된 집인  샬레를 짖고 물은 굉장히 차갑다. 에어컨이 없어도 창문만 열어놓으면 한 여름에도 밤에는 선선해진다.

 

 위의 3가지 포인트는 나의 소비적 여행에서 아주 일부다. 기존에 알고있던 지식과 눈으로 관찰한 것이 시너지를 이루며 깨달음을 갖는 순간이었다.

 여행동안 수많은 것을 보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단순 소비가 아닌 '지적 사고 시점'에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내가 일하는 관심사에 대해 재확인하고 나의 관심사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는만큼 보인다'의 재발견

  다 알고 가야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모르던 환경에서 얻은 것이 시너지를 일으킬 때 무언가를 얻는다는 의미다.

 만약 나에 대해서 혹은 무언가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기전에 자신만의 가설 혹은 이론이 있어야한다.

 예를 들어 서양은 국내보다 더 아날로그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직접가서 그렇지 않은 부분을 찾아낼 때마다 나의 사고는 커질 수 있다.

 스스로 낯을 많이 가린다고 생각했다면 모르는 길을 당당히 묻고 다닐 때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깨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라는 행위자체는 아무 것도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단순한 소비속에서도 지식생산자의 태도를 가진다면 그건 자아발견도 견문 확대도 계기가 생긴다.

 마치 '알쓸신잡'의 사람들의 대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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