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그냥 Jul 31. 2017

뻔한 주문 페이지의 개선 기획

고객에겐 간단하고 개발은 안간단한 '간단 주문서'

 

최근 글이 뜸했다.

 현직 기획자이기에 현직답게 내 기획과 서비스 오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일전 몇달을 공들인 서비스 하나를 또 오픈했다.

 바로 '간단 주문서'.

 이미 오픈했으니 비밀은 아니기에 오픈을 기념해서 기획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경험의 복기와 공유는 내 자랑을 하려는게 아니라 스스로의 방법론을 정비하기 위한 시간이다. 생각하는 과정은 누구나 다를 수 있고 결과물이 뻔하게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획과정은 어느 기획자에게나 자기만의 방법론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걸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남겨본다



문제인식 : '지름'을 진정시키는 쇼핑몰?

 나는 남편과 마트를 가면 혼자갈 때보다 쇼핑양이 적어진다.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구경하고 싶을 때 남편은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그거 집에 비슷한거 있잖아~'

 '그거 사도 몇 번 안쓸거 같은데?'

이런 소릴 듣다보면 결국 손에 쥐었던 물건을 다시 내려놓게 되는 것. 

 

 쇼핑몰에서 이런 '남편'같은 존재가 있다면 매출에 어떤 영향을 줄까?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결제하기를 눌렀으나 찬찬히 주문서를 보다가 '에이'하면서 스스로를 억누른 적이 있다면?

 실제 쇼핑몰의 주문서에서 주문완료로 넘어가는 구매전환율은 1~3%대. 대부분의 고객들이 주문서까지 도달했다가 그냥 다시 빠져나간다. 쇼핑몰의 주문과정에도 분명 우리 남편의 역할을 하는 놈들이 있는 것이다.

 

 모바일 주문서의 개선업무를 앞두고 나는 고객의 주문 프로세스를 방해하는 '남편'같은 존재를 분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능정의 : 모바일은 지름신을 영접한다

 필요에 의해서 구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논리지만, 그 '필요'와 '끌림' 선후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고객이 처음부터 '목적'을 갖고 쇼핑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본 상품에서 갑자기 눈치채지 못했던 필요를 깨닫는 것인지는 고객조차도 정확히 모른다. 그리고 우린 보통 후자의 경우를 '지름신이 오셨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이커머스의 역사를 통해 지름패턴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windydog/22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름신이 오셨다'혹은 '뽐뿌가 온다'와 같은 신조어가 대한민국에 등장한 것은 2007년. 소위 온라인 '트레져헌터'라는 사회 현상을 타고 개그스런 신조어로 번져나갔다. PC를 기반으로 한 춘추전국 온라인쇼핑시장에서, 고객들은 정보를 교류하고 후킹상품까지 골라내가며 누구보다도 싸게 물건을 사서 '쟁여두기' 를 하는 쇼핑패턴이 굳어졌다.

 

 손해보지 않기 위해 시작된 뽐뿌족들은 PC 주문서를 계약서 쓰듯 다뤘었다. '돈의 안전성'에 믿음을 주기위해 계약서 쓰듯 모든 예외사항까지 구구절절 쓰여있었고 고객들도 꼼꼼하고 진지하게 배송지를 선택하고 할인수단과 결제액에 집중했다.  (반면에 믿음이 가지않는 쇼핑몰은 회피대상이 되었고, 알만한 곳도 자칫하면 공인인증서와 함께 처음부터 다시하는 고통을 피하려고 더 집중해야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용환경이 바뀌면서 주문서는 방향이 바뀌었다. 처음 PC시절에 등장한 뽐뿌족은 특수한 소수집단에 불과했지만 모바일시대가 되면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양처럼 지름신의 영접의 순간도 시간공간 제약이 없어졌다. 틈틈이 모바일과 함께 하는 이용패턴은 더 짧은 시간동안 '구매 욕구'가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게 되면서 언제든지 지름신을 영접할 수 있게 됐다. 모바일쇼핑이 대중화된 지금 모바일을 손에 쥔 누구나 뽐뿌족이 되어버린 것이다.

 '혹할 때 휙 주문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은 모바일 시대 주문서의 큰 미션이 되었다. 게다가 각종 간편결제 페이 시스템의 출현으로 '혹~휙!'의 패턴은 계속 짧아지기를 강조받고 있다.


 모바일시대의 주문서커다란 미션 : 빠른 진입속도, 빠른 주문완료



데이터분석 : 실제 우리 주문서의 모습은?

  주문서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개선 인사이트를 찾으려 우리 주문서를 봐야했다. 거창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관찰을 통한 정성적인 방법과 데이터를 통한 정량적인 방법이 모두 동원했다.


 정성적인 방법 : 인사이트

  그럴듯하게 사용성 테스트나 검증을 하면 좋겠지만 사실상 회사에서 그렇게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사용한 방법은 '자가 관찰'과 '귀담아 듣기' 였다.

 자가관찰이란 우리 전시매장을 돌아보다가 마음이 혹하면 주문또는 주문을 포기하는 과정을 녹화해서 지켜보는 것이었다. 나는 기획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헤비유저다. 서비스 이용의 태도라면 내 이용모습도 제3자 관점에서 볼 수 있다면 꽤 괜찮은 관찰대상이 된다.

  나는 '모비즌'이란 앱을 이용한다. 이 앱을 이용하면 아주 쉽게 폰화면전체를 녹화할 수 있다. 개인정보가 하도 많아 영상을 공개하긴 좀 그렇지만 재밌는 점들이 발견됐다.

상품을 고르는 시간대비 내가 실제 결제하는데 들인 시간은 고작해야 몇초.

배송지나 결제수단을 이젼결제와 거의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

다양한 배송방법을 굳이 고려하지 않는다

엘롯데 주문하는 과정을 찍어본 모비즌 샘플 동영상

 두번째 방법은 귀담아 듣기. 말그대로 타인들에게 주문서에 대해 평소 열받은 경험을 묻고 귀담아 듣는 것인데 보통 주변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얻었다. fail요소들은 대체로 짜증의 기억으로 돌아왔다.

 친구에게 아이디를 빌려줬더니 배송지 변경을 못하고 기본배송지를 수정해놨다는 이야기

 제대로 보지도 않고 주문해서 집으로 보낼 물건이 회사로 와버린 경험

 

 정성적인 분석 결과 : 주문시 '디폴트세팅'이 중요



정량적인 분석 : 검증


 정량적인 분석으로는 기존 주문건의 비율과 클릭수들을 분석했다. 정성적 조사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몇가지 가설을 설정하고 검증하고자 했다.


가설1 : 모바일에서 '지름신'구매패턴이라면 장바구니를 이용한 복수개 주문보다는 1개의 단건 주문이 많을 것이다.

 실제 주문데이터 분석시 모바일 주문건중 단건주문의 비중은 약 60%를 넘었다. 특히 다양한 배송방법이 존재하는데도 1개의 상품을 일반택배로 구매하는 비율이 전체의 절반으로 단연 높았다.


가설2 : 디폴트세팅이 중요하다면 여러번 주문시 계속 같은 결제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특정기간동안 모바일에서 신용카드 주문자 비율은 약 82% , 3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그리고 2번이상 신용카드로 결제한 사람이 1개의 카드사카드로 결제한 비율은 약 90%에 달했다.


 이 두가지의 모습만으로도 사용자패턴에 어느정도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추가적인 화면 클릭 데이터 검토를 통해 몇가지 결론도 추론했다.


주문서는 실결제금액을 확인하려는 목적으로도 이용한다. - 체류시간 5초미만이 접수자수의 50%이상.

주문서의 부가적인 기능(배송메시지, 선물메시지, 다중배송, 배송수단변경 등)은 디폴트에 따라 사용여부가 달라진다.

 

 적인 분석 결과 : 모바일 주문시 1개의 단품을 매번 쓰던 신용카드로 구매하며 익숙한 배송방법을 선호한다. 많은 부가기능은 유사시에만 사용된다.

 


전략 : 빠른 주문서를 위한 조건

 빠른 주문서의 이용을 위해 병목현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 위의 조사과정을 통해 주문서에서 고객은  최소 3가지는 체크한다.

최종결제가격 (상품상세에서 본 금액 >= 총결제금액)

결제수단

 배송지

  물론 주문서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존재하지만 할인수단은 당연히 최대혜택을 자동 설정하고 배송방법은 유사시를 제외하고는 예상가능하고 익숙한 방식을 선호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가장 빠른 주문이란 이 세가지 정보를 빠르게 확인할 수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옵션의 다양성이 높아질수록 선택이 어려워진다는 '힉스의 법칙'을 고려했을 때 지금은 주문서에 늘어놓은 다양한 옵션들이 오히려 병목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좁은 모바일 환경에서 텍스트 입력은 컨트롤하기 굉장히 귀찮은 존재기도 하고.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아래와 같은 디자인 전략을 설정했다.

주요 항목의 검토를 용이하게 한다

주요항목의 디폴트를 강화한다

부수적인 옵션의 입력창은 감춰서 신경 분산을 최소화한다.

있던 기능을 없애면 불편이 증가하므로 필요시에는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런데 3번과 4번은 내용적으로 충돌한다. 감추려면 기능을 없애야하는데 기능을 유지하고 다양성을 보장하려면 UI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여기서 2가지 방식을 고려했다.


 주문서 이원화-이용자 목적에 맞는 주문서, 고객 능동선택 or 자동선택

비주류 기능을 depth를 깊게 해서 숨기는것.


 그리고 이를 판단하기위해 고객동선, 개발환경 등을 고려했다. 가장 큰 목표는 신경이 써지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최고로 단순한 주문은 단순하게 만들고자 했다.

주문시에 신경을 분산시키는 비주류 기능을 모두  제한된 새로운 주문서를 만든다.

주문시 망설임을 줄이기 위해 주문서를 능동적 선택보다는 자동적으로 노출 시켰다.

주문서에 평소 이용패턴을 통한 개인화하여 1개상품 택배 구매시에는 신규 주문서로 이동 시키고 2개이상의 상품 또는 수량을 구매하거나 특별한 배송방법을 이용하는 등의 복잡한 기능을 이용하고자 할 경우 다양한 기능이 있는 기존 주문서로 랜딩시킨다.


 이렇게 개념이 정리된 것이 바로 '간단 주문서'의 시작이었다. 

 여기까지는 기획 기본 개념의 정리였고 실제 기획과정에서는 자사의 상황을 현재 시스템을 고려하여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스케치 : UX / UI의 설계

  그렇다면 신규 주문서의 UI는 어떤 디자인 원칙을 가졌을까?

 스케치
주문서 기획때 했던 스케치 잔재,  그렇게 그림 잘 못그립니다

 앞서 강조했던 3가지 요소만 한 눈에 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배송지

최종결제금액

결제수단

 1)중요도가 높은 최종결제금액과 결제수단에 컬러로 포인트를 두고, 가능하면 스크롤링없이 결제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했다.

 2)최대할인을 자동선택해주고 포인트가 있는 경우 디폴트로 사용체크하여 최종결제금액을 최대로 낮게 보여주었다. 실제로 고객들은 적립보다 구매시점에 더 싸게 사는 것을 좋아하기에 디폴트를 잡아주어 두번 고민하지 않길 바랬다.

 3) 배송지와 상품은 주문자가 알아보기만 하면 되므로 영역을 최소화했다. 짤리고 작아도 이미 보고 온 상품이나 고정된 주소는 어떤 주소인지 모를 수 없다.

 4) 상품의 발송예정일자를 포인트 컬러로 보여주어 주문진행시를 예상하게하여 주문완료를 더 독려했다.

 5)그리고 필요시 기존주문서의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일반주문서로의 이동경로도 마련했다.


 SB와 페이퍼목업

 회사정책상 스토리보드 작성 시 아직까지 파워포인트를 이용한다. 하지만 규격 목업 이미지를 이용해서 거의 실제 폰 사이즈의 규격에 맞추어 요소를 배합해서 만들고는 한다.

 SB를 그리고 나면 인쇄후 페이퍼목업 형태로 잘라서 기기에 올라갔을 때의 모습을 확인해보고 가능하면 페이퍼 목업 형태로 다른 이들의 피드백도 받는다.

 비주얼 디자이너가 비주얼 디자인이 진행될 때는 최대한 내 기획의도를 전하되 비주얼 디자이너의 의견을 수용한다. 기획의도에만 맞다면  컬러나 사이즈나 강조포인트를 살리는 방법은 비주얼 디자이너의 의견을 듣는 것이 훨씬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 기회자는 기획의도와 달리서 조율을 잘 해야한다.

 그리하여 완성된 간단주문서는!

(캡쳐 해상도, 좌: 갤7 기준, 우: 아이폰7+ 기준)



 주로 디자인과 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가 되었기에 생략했지만 사실 SB는 요소의 동작과 예상되는 모든 케이스와 디바이스 이용등에 대해서 폭넓게 고려해서 작성해야한다.  또한 주문서까지 녹여진 많은 서비스에 대한 회사차원의 중요도에 대해서도 이해가 있어야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디스크립션은 아는만큼 잘 나오고 아무리 잘써도 빼먹은 부분은 있기 마련이기에 처음부터 폭넓은 연결적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


참고글 :

https://brunch.co.kr/@windydog/73



개발구현과 테스트

 이제부터 기획자의 역할은 철저히 '실현가능성'과 생각지 못한 이슈를 조율하는 것에 있다. 생각지 못한 불편요소를 개발과정에서 기획개선하는 것도 역할이 된다.  

 첫번째 사용자가 되는 개발담당자들과 QA, QC의 말을 잘 새겨듣고 고객이 느낄만한 의견과 프로젝트 인력이 느낄만한 의견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간단'하다면서 기능구현과 테스트하기가 왜 이렇게 안간단하냐는 말이었다.

 모든 케이스를 동등하게 고려하여 개발, 테스트하는 입장에서의 의견과 실제 구매 자체에 목표가 있는 고객에게 기능이란 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기획자는 가장 흔하고 평범한 케이스를 중심으로 사고해야하니까.


오픈 그리고 점검

 그리고 이제 어쨌거나 오픈을 했다. 정말 모두가 고생해서 얻은 소중한 결과다. 오류도 거의 없이 어느정도 목표를 얻은 셈이었다.



 이제 기획자로서 내 가설이 적절한지 오픈후 점검을 통해 계속해서 분석해야할 것이다. 그것을 KPI라고 하고, 내가 설정한 KPI는 기획초반부터 명확했다.

 그래, 이제 다시 분석만이 남았다!

 



 만약 원하는만큼의 효율이 나지 않는다면?

 그러면 또 다시 주문을 방해하는 원인분석을 시작해야겠지!



 *이 흐름만 가지고는 주문서SB작성은 불가능합니다. 생략된 주문 정책과 예외케이스 , 개발시 고려되어야하는 시스템 환경 등은 각사의 사정에 맞게 기획자가 잘 고려해야한다.

이전 09화 마이페이지 메인 개선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