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를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도
딜? 싸게 파는 거!
쇼핑몰에서 순수 고객님이신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딜상품이 뭔지 알아?"
남편이 대답했다.
"어 알아. 딜 싸게 파는 거잖아"
쇼핑몰서 일하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 남편은 싸게 판다고 확신한다.
"여보는 딜이 왜 싸다고 생각해?"
"싸게 팔라고 그렇게 해놨겠지"
그래서 이번에는 저 밑줄 친 '그렇게'를 좀 고민해볼까한다.
딜의 정의
몇년 전 사이트의 딜매장을 재구축할 때 마케팅 담당자에게 질문을 했다.
"책임님, 대체 딜이 뭐에요?"
책임님은 팀내에서 나름대로 내린 정의를 알려주셨는데 우리 남편의 해석도 어느정도 포함됐다.
딜이란 제한된 기간 혹은 제한된 수량으로 고객에게 평소와 다른 혜택을 제공해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제한된 기간과 수량이란 딜의 희소성을 의미한다. 또한 평소와 다른 혜택이란 꼭 가격만 의미하지는 않으며 사은품이나 패키지구성, 페이백이나 적립포인트, 포장서비스 등등 제공가능한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딜에 대한 멘탈모델?
사실 딜이 익숙해진 것은 소셜커머스 덕분이었다. '오늘의 딜'(one-a-day deal)형태로 일정 이상의 사람이 구매를 원하면 싸게 파는 소셜한 커머스는 사람들의 눈을 확 끌어당겼다.
2014년 이래 이런 딜 매장은 대부분의 쇼핑몰에 다 들어찼다. 유통의 방식(중개, 직매입, 위수탁)도 다 다르고 할인의 폭도 달랐지만 겉보기에는 똑같아 보인다. 특히 3가지의 특징이 이런 매장에 일관적으로 적용됐다.
가로형 배너 상품 이미지
시간제한 또는 판매수량
기획전형 상품 구성
가로형 배너 상품 이미지
국내 쇼핑몰의 딜 매장은 정말 일관성이 있다. 어쩌면 '딜'이란 단어보다도 대표적인 할인 플랫폼이란 아이덴티티는 이 UI형태에서 인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같다.
위의 두 사이트 모두 딜이란 단어가 전혀 없지만 그 형태만 봐도 우리는 딜매장임을 눈치챈다.
가로형의 배너 이미지는 기존 정사각형의 기본 이미지보다 이미지적으로 다양하고 꽉차는 느낌을 줘 시선을 끈다. 게다가 초창기의 작은 모바일화면에 가장 적합했다. 페이지를 꽉 채우고 끝없이 상품을 로딩해오는 무한 스크롤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된 쇼핑몰 입장에서 기존 규격과 다른 가로이미지는 꽤나 귀찮은 존재였다. 일일이 디자인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품관련 이미지를 업체에 전담시키던 기존 쇼핑몰은 직접 제작하는 소셜커머스를 따라잡느라 큰 고생을 했다.
특히 한때 쿠팡을 모토로 전략키를 잡았던 GSshop의 경우 아예 기본 상품등록시 가로이미지를 모두 등록하게 정책화해서 업체들의 많은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쇼핑몰들도 이 가로 이미지 등록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잡았었다.
시간제한 또는 판매수량
딜의 생명은 희소성에 있다. 오늘의 딜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할 때 우리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도 원데이 딜 플랫폼을 요청했었는데 그 때 요구사항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긴박해 보이도록 디자인해주세요'
초시계도 달아보고 폭탄을 붙여봐도 도저히 긴박해보이는 느낌의 UI를 잡기가 어려웠다. 초시계가 째깍째깍 넘어가는 느낌이 구매를 자극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판매수량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상품의 판매수량이 많을수록 상품이 사고 싶어지지 않겠냐며 소리를 높였다. 이번에는 상품MD들이었다. 우여곡절끝에 판매수량을 붙였지만 매번 비슷한 상품이 반복 전시됐다. 판매수량이 높아질수록 좋은 재고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촉박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딜의 두가지 요소는 기본적으로 딜의 유한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첨부터 딜기간이 한달넘게 길다면 딜답지 않다면 남은 시간도 판매수량도 의미가 없어진다.
게다가 이 UI자체가 판매량을 올린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일종의 미신이다. 실제 클릭과 판매 데이터를 보면 딜상품의 판매는 철저하게 컨텐츠에 좌지우지된다. 상단에서부터 하단으로 전시되면서 상품클릭수가 줄어들긴 하지만 대략 20번안쪽의 상품까지는 컨텐츠에 따라 매출은 얼마든지 역전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인기 딜은 조만간 재입고되고 오늘 마감되도 다른 사이트에서 내일부터 판매될 거라는 걸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 어설픈 선착순유혹보다도 확실한 혜택을 알리는 것이 더 고객에게 매력적인 이유인 것 같다.
기획전형 상품
희대의 가격비교 사기템이기도 한 기획전형 상품. 딜에는 하나의 상품안에 기획전만큼 다양한 가격의 다양한 상품이 합쳐져 있다.
상품명은 하나인데 가격은 선택한 옵션에 따라 달라지고 옵션의 갯수도 몹시 많다.
위의 지마켓의 상품이 바로 그렇다. 사실 '딜'이 유명해진 것은 소셜커머스라도 기획전형 상품만큼은 분명히 PC시절부터 오픈마켓에서 흔한 형태였다.
가장 최저가의 옵션가를 기준으로 가격비교에서 우위를 점하기도 하고 상품1개 광고할 공간에 수십개를 연결하니까 효율도 높다. 고객이 상품에 온 뒤에 실제가격에 배신감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뭐 상관없었다. 어쨌거나 유효한 트래픽을 얻었으니까. 그리고 온라인MD들은 많이 깔아놓으면 어쨌거나 팔린다고 믿는다. 매출만 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조금 변했다. 고객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아주 쉽게 좋은 상품을 얻고자 한다. MD들이 이끌어온 방향과 고객의 니즈는 서로 방향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이런 기획전형 상품이 없는 것이 컨셉인 'G9'같은 곳도 등장했다. (기획전형 상품이 판을 치는 오픈마켓에서 스스로를 까는 컨셉의 몰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면서 현명해보인다)
기획전형 상품은 특징상 개인화와 추천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게 이 기획전형 상품이 얼마나 판매자 위주의 전략이었는지에 대해 반증이기도 하다.
딜을 바라보는 고객의 자세
딜을 보는 고객들은 기본적으로 '체리피커'의 기운이 있다. 필요해서 물건을 찾는다기보다는 그냥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많은 상품을 누가 보겠나싶었지만 클릭 데이터를 조회해보니 일단 스크롤해서 내려간 고객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최상단전시부터 점차 클릭수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고객이 이 연관성없고 불필요한 상품을 100개가 넘게 넘기도록 본다는 것 자체가 목적 구매는 아니라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더 재밌는 사실은 대략 한두 스크롤 내에서는 상품에 따라 더 밑에 있는데도 더 클릭이 높은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목적구매가 아니라 체리피커 타입의 고객이라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상품 자체의 강력함일까?
아 그러면 싼 것처럼 강력한 것처럼 느끼도록 UI를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고객은 바보가 아니다. 상대는 특히 체리피커다. 상품명이나 모델코드만 알아도 바로 가격비교로 돌진한다. 딜 상품만 비교하는 쿠차같은 곳이 잘 되는 이유는 체리피커들의 성향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딜 페이지의 전략은?
UI기획을 위해 고민하면서 이 페이지는 사실 컨셉과 컨텐츠의 승부처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싸게 파는 것'이라면 디자인을 아무리 변화준다고 해도 이 페이지가 고가상품을 전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된다.
딜을 개선하려고 한다면 운영의 용이성보다도 상품의 컨텐츠가 더 눈에 잘들어오게 해야할 것이다. 딜처럼 보이는 UI를 쓸 거라면 일단 저단가를 보장해야 된다. 반대로 말하면 이 UI에서 저단가가 아닐때 오는 배신감이 클 것이라는 점이다.
UI가 아닌 UX를 하려면 이런 가격적인 부분도 확실히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 사이트의 딜이 누가봐도 저단가로 운영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디자인을 바꾸는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MD의 소싱은 기획자 맘대로 되는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