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강민 Salawriter Dec 31. 2018

당신에게서 돌아오지 않는 질문

첫 대면의 서먹함을 대하는 마음

처음 만난 사람과의 서먹한 분위기를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먼저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는 편이다.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며 상대방을 알아가고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보기도 한다. 이렇게 문답을 해보면 물어보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누구나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일상에서 흔히 겪은 일이라도 그 사람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경험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가 되어 있다.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들은 그 사람이 살아온 매 순간 쌓이고 쌓여 있다가 처음 만난 나에게 한 조각씩 전해진다. 그리고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다가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순간은 비슷한 경험이나 생각을 전해 들었을 때이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실마리를 찾는 것은 반가우면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다음부터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첫 대면에서는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공통분모가 없으니 내 이야기를 보탤 수가 없고,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역할을 내가 도맡는 상황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나를 곤란하게 하는 사람도 도울 수 있는 사람도 바로 상대방이다. 나를 돕는 길은 질문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강민씨는 어때요?”




아이들 덕분에 알게 되는 아빠 친구들이 있다. 엄마들이 주선해서 만들어지는, 타의로 시작되는 이런 관계의 첫 만남에서도 대화하기가 쉽지는 않다. 보통은 아이들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고,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는 만큼 대화의 소재가 풍요로워진다. 다른 아빠들이 하는 일,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접해 보지 못한 상황을 간접 경험해 보고 좋은 자극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상대적으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아빠도 있고, 그 아빠의 이야기로, 다른 아빠들의 질문과 반응으로 대화의 많은 부분이 채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묻고 공감하는 에너지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일까?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대화는 질문이 고갈되거나 묻는 에너지가 소진되는 순간 단절된다.

“아버님. 저...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물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맥락과 상관없이 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묻지 않는 상대방에게 뜬금없는 이야기를 풀어놓기는 쉽지 않다.

“제 이야기도 궁금하실 것 같아서 말씀 좀 드려 볼게요.”




묻고 답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인터뷰가 아닌 이상, 질문은 양방향으로 오고 갈 때 대화는 동력을 얻어 이어질 수 있다. 오랜 시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문득 그 사람에게 있어서 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것일까?'
'긴 시간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나를 배려할 마음이 없는 것일까?'
‘나를 만나보니 별 관심이 안 생긴 걸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제 이야기만 실컷 했네요.”

하지만, 다음 만남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만날 기회가 생기면 망설일 것 같다.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니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전 05화 제 어깨는 거치대가 아닙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