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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강민 Salawriter Mar 25. 2019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의 의미

9 to 6를 벗어난 자율 근무제

정해진 근무 시간의 의미


저는 지각 위험군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전 직장의 인사조직은 출근 시간인 9시의 몇 분 전후로 스피드 게이트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리더에게 전달했었는데요. 직원들의 근태를 관리하는 방법 중의 하나였죠. 스피드 게이트 옆에는 일찍 출근해서 근무 시간 전까지 자기 시간을 가지면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X배너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던 것일까요? 9시가 다 되어갈 때면 1층 엘리베이터 홀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스피드 게이트 밖에는 미처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근태(勤怠)
1. 부지런함과 게으름
2. 출근과 결근을 아울러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근무태도(勤務態度)의 줄임말로 오해할 수 있지만 한자가 다른 '근태'는 직원들이 회사 생활을 부지런하게 하는지, 회사를 잘 나오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근태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기준인 근무 시간, 그 중에서도 출근 시간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같이 시작하기 위해서 정해 놓은 약속과도 같습니다. '9 to 6'라고는 하지만, 6시에 일을 정확히 마치는지 관리하는 회사는 흔하지 않죠. 이른 퇴근을 독려하는 회사는 더더욱 그럴 겁니다.

"10분 일찍 퇴근해서 자기 시간을 가지세요."

처럼 말이지요.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근태가 나쁘면 평가를 잘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처럼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근태는 편하지 만은 않은 약속처럼 느껴집니다.


출근 시간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는 지각 위험군의 명단에 열심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일찍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까요. 어차피 9시 전까지는 일한 시간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회사라는 공간에서 개인적인 일을 한다는 것이 마음 편하지도 않았죠. 그리고 퇴근을 정시에 한다는 보장도 없었으니, 애써 일찍 출근해서 나의 시간을 회사에 더 내어 주기가 싫었습니다.


매일 아침 달렸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스피드 게이트를 통과할 때까지 전력 질주를 했죠. 늦게 출근하면 아침이 여유로울 것 같지만, 일찍 일어날 동기가 없으니 5분만 더, 5분만 더 하다가 결국 늦게 눈을 떠서 서둘러 준비를 하고 아침마다 격한 달리기를 하니, 일을 시작할 때의 몸은 이미 퇴근해야 할 것 같은 상태였죠. 지각을 하냐 안 하냐의 경계에서 졸이는 마음은 또 얼마나 피곤하던지요. 그때의 저에게 회사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되도록이면 뒤로 늦춰놓고 싶은 시간이었고, 저녁은 언젠가는,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퇴근이라는 선물을 기다리는 시간 같았습니다.




유연한 출퇴근 시간의 의미


직장을 옮기고 거의 매일 아침 8시에 회사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뭐든 먹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아침”밥”형 인간인 저에게 정해진 시간 전에 조식을 먹으면 무료라는 점은 무척 매력적이었죠. 그렇게 밥이 동기가 되어 회사에서의 아침을 일찍 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9시 전까지 회사 라운지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시간에 맞춰 본격적으로 출근을 하곤 했었죠. 일을 시작하는 시간만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저는 여전히 속 좁은 직원이었고, 회사에 너그럽게 시간을 내어 주지 못했습니다.


2주 80시간 자율 근무제로 바뀌면서 저에게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대가 유연하게 바뀐 것은 당연하겠지만, 가장 큰 것은 시간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시간을 저축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죠. 일을 일찍 시작하면 언젠가 그만큼 일찍 마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무료 조식보다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아침을 일찍 시작할 동기가 더 강해진 것이죠.


여전히 8시에 아침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자리에 앉으면 8시 25분 정도가 됩니다. 매일 30분이 쌓이면, 다음에는 몇 시간을 일찍 마치기도 합니다. 주변에는 더 이른 시간에 회사에서의 아침을 시작하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이른 퇴근을 하고 운동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기도 하죠. 반대로,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러시아워를 피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대를 조금 늦추는 분들도 있죠. 오랜 시간 길 위에서 보내는 일이 없어지니 심신은 그만큼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출퇴근은 눈치가 아닌 책임과 배려로


상사보다 일찍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고,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눈치 보고 앉아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스스로 정하면서 이런 풍경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일에 대한 각자의 책임감으로, 서로 함께 일하기 편한 시간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출퇴근 시간을 디자인하고 그 약속을 스스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본의 대형 건축설계사무소의 직원들은 야근과 철야를 밥먹듯이 했었습니다. 6시 같은 초저녁에 퇴근하는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직원이 과로사하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야근을 하려면 미리 신청을 해야 자리의 조명이 켜지고, 11시 이후에는 근무를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의 목소리가 많이 들렸어요.

"할 일은 매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근무 시간을 줄이면 일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지만,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빨리 바뀌어 갔습니다. ‘어차피 밤은 길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점점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잠을 충분히 자면서도, 저녁밥을 집에서 먹으면서도 일은 진행이 되었죠.


회사에서의 생활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유연해졌고,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의 밀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만들어내는 가치가 훨씬 더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를 나서서 각자의 인생에 보태고 있는 가치도 커지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작곡 레슨을 받으러 가야 합니다. 스무 살 때부터 꿈꾸던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실현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의 이른 아침이 많았던 만큼, 일 때문에 레슨에 늦거나 결석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요즘, 여러분의 하루는 어떤가요?



*기업 웹진에 게재된 글입니다.

**메인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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