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 아빠의 육아일기, 첫 이야기
2013년의 어느 날, 나는 애국자가 되었다. 셋째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물론 애국심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나 좋자고 현대판 대가족을 만든 일 하나로 애국자가 된 이 상황을 두고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다둥이의 아빠다. 게다가 아들만 셋이다.
아들 셋과 함께 하는 삶. 겪어보기 쉽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힘들 때도 있지만 특별하고 신나는 하루의 연속인 아빠의 삶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이름하여 아들 셋 육아일기, Son 셋, ‘선셋라이프’를 시작한다.
사실 우리 부부가 아들 마니아는 아니다. 설령 마니아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아들 셋을 가질 수도 없겠지만. 아무튼 나는, 많은 아빠들이 그러하듯 나를 쏙 빼닮은 예쁜 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있던 평범한 아빠다. 아내 역시 공주놀이를 함께 할 짝꿍 한 명 정도는 필요했을 것이다.
첫째가 아들이란 걸 알았을 때 참 든든했다. 양가 부모님들이 딱히 손자를 요구하신 것은 아니지만, 왠지 아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새색시가 큰 숙제를 해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중에 오빠가 동생 잘 돌봐 주겠지.’라며 좋아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을까?
첫째가 두 살이던 해에 또 한 명의 아기가 우리 부부에게 찾아왔다. 일본에 살던 때였는데, 그곳의 의사는 절대로 성별을 알려 주지 않았다. 산달이 다 되어 한국에 와서야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너 형아 되겠네?”
초음파 검사를 받던 아내의 눈가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50%의 확률인 만큼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고, 유독 주변에서 이번에는 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엄마 배 모양을 보니 딸이네, 큰 애가 엄마 무릎에 앉는 모습을 보니 딸이네, 딸이야 딸. 그 딸은 어디로 간 걸까? 배 속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나는 깨달았다.
아들이냐 딸이냐는 지극히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둘째는 너무 예쁜 아기였다. 둘째들의 특성이라고도 이야기하는, 애교와 눈치로 무장한 아이기도 했다.
말도 행동도 빨라 또래보다 더 큰 아이 같은 첫째, 보기만 해도 아빠 미소를 짓게 하는 둘째와 함께 하는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딸은 얼마나 예쁠까?”로 시작해서 “또 아들이면?”으로 끝나는 대화가 종종 우리 부부 사이에 오가기도 했다. 그렇게 둘째가 4살이던 해의 어느 날, 또 한 명의 아기가 찾아왔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런데, 아기가 커서 어린이가 되어간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되면 길을 가다가 지나치는 아기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힘들었던 기억과 육아 스트레스는 어디로 가고 또 ‘저런 아기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떠올려 보면, 아내나 나나 “또 아들이면?”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았었지만 셋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설마 셋째는 딸이겠지’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셋째도 아들.
둘째와 셋째는 다섯 살 차이가 난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아들? 딸? 낳아? 말아?
그렇게 우리 가족은 남자 넷, 여자 하나로 구성이 되었고 더 이상의 변동은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아직도 들려오는 지인들의 “하나 더?”라는 질문에 아내는 “다섯째까지 아들일 것이다.”라고 답을 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3단 콤보 대화가 있다.
Q : 아이는 있어요?
A : 네. 큰 아이가 13살이에요.
Q : 벌써요? 아이가 몇 명이예요? ← 1단계 : 의외임(일찍 결혼한 편이다.)
A : 셋이에요.
Q : 셋이요? ← 2단계 : 놀람(요즘 세상에 웬일인가 싶은 것이다.)
A : 네. 아들 셋이요.
Q : 아들만 셋이요?…… ← 3단계 : 신기함, 불쌍함, 존경함, 궁금함(나보다 심경이 더 복잡해 보인다.)
대체로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러고 나면 의례히 애국자, 아버님, 육아 전문가, 능력자 등의 타이틀을 부여받게 된다. 아무튼 캐릭터 하나는 뚜렷한 가족이다.
그렇다. 나는 아들만 셋이다.
바이런의 표현을 빌려본다.
낳고 나니 애국자 됐다.
아들만 셋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사실인가 보다. 특히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엘리베이터를 타 보면 사람들의 눈이 우리 가족을 한 명씩 확인하며 커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후에는 일행과 눈빛을 교환하며 신기한 광경을 공유하기도 한다. 간혹 아들 셋이냐고 확인을 해 보기도 한다.
가끔은 마음이 상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식당을 갔는데 종업원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보더니 “우짜꼬. 우짜꼬.”라며 안타까워한다. 처음 보는 반응이 아니라 그냥 넘겼는데 옆 테이블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면서 “아들만 셋이라네요. 우짜꼬. 우짜꼬.”를 연발하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어서 “뭘 어떡해요. 좋다고요.”라고 크게 소리를 쳤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요.”라며 한술 더 뜨는 아주머니를 옆 테이블 손님들도 야단을 치니 그때서야 사과를 한다. 그 밖에도 “엄마가 힘들겠다.”며 너무 깊이 위로를 한다거나, “딸이 좋은데.”라며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두고 본인의 취향을 주장하는 등 반응이 과한 경우에는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다.
他人之宴曰梨曰枾(타인지연왈리왈시) : 남의 잔치에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한다.
여름이 찾아오고 셋째의 머리가 좀 길고 나니 시원하게 해 줄 겸 아내가 머리를 묶어 주었다. 일명 삐삐머리. 그랬더니 사람들 반응이 좀 달라졌다.
“성공했네.”, “오빠들 많아 든든하겠다.”
아내와 나는 의미 심장한 미소로만 답하거나, 거짓말 못하는 둘째가 “오빠 아닌데. 형인데.”라고 말하는 입을 막기도 하며, 불필요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반 이런 반응을 즐기는 마음 반이었다.
그렇게 위장술을 사용하는 것도 잠깐. ‘아들 셋’이 우리 가족의 강한 정체성이라는 것에 스스로 익숙해지고 나니 주위의 남다른 반응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고, 그런 반응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도 얼마나 예쁜 아기인가. 언젠가부터 아들 셋에 놀라기보다는 막내의 귀여운 모습에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삐삐머리는 그렇게 풀어지게 되었다.
내가 괜찮아야 남도 괜찮다.
가족의 성비가 편중되어 있는 만큼 일상도 남다른 면이 있을 것이다. 놀이가 특히 그럴 것 같은데, 아이들과 놀다 보면 기이한 현상과 마주하게 된다.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남자아이들 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형제가 많으니 증폭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놀이터를 가도 한 군데만 가지 않는다. 두세 군데 투어는 기본이다. 놀이기구는 본래의 용도를 잃은 지 오래, 남들은 관심도 두지 않는 부분에까지 오르내리고 매달리니 놀이기구의 가성비가 급증한다고 좋아할 일일까? 게다가 놀이터에서만 노는 것이 아니라 주변까지 십분 활용하는데, 놀이터 뒤 오솔길 탐험부터 시작해 자전거 오프로드를 즐기기도 한다. 유아용 자전거로도 거침이 없다. 돌계단이 나타나면 자연스레 자전거를 내던진다. ‘아빠 이거~”라는 말만 남기고 말이다.
이렇듯 세 아들의 놀이에는 공통적으로 모험과 탐험의 요소가 잠재해 있고, 아빠의 힘을 보태어 주면 놀이는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지치지 않는 아이들과 노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은 사실다. 하지만, 돌봐준다고 생각하면 노동이 되는 것이고 함께 하면 놀이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같이 놀자고 하지 돌봐 달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과 평생 신나게 놀기 위해서는 자가발전 능력이라도 있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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