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강민 Salawriter Aug 19. 2017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의 기준

볼 것과 할 것이 있는 주말 당일 가족 여행

아이들을 위해 무엇에 투자할 것인가?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투자라고 하니 귀가 솔깃한 사람도 있겠고, 또 누군가는 지난 일에 가슴 한편이 아리기도 할 것 같다. 나는 한 때 이 문제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지곤 했었다. 그렇다. 나는 생각만 해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아들(Son) 셋을 둔 선셋라이프를 살고 있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투자: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는 것 (국립국어원)


투자의 사전적인 의미가 이런 것이라면 세상의 많은 아빠, 엄마들은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설마 ‘아빠 엄마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노후를 위한 보험으로 키우겠다’는 투자 전략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시간, 돈, 에너지… 뭐 이런 것들이겠지.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아이들의 무엇을 위해 투자할 수 있을까? 교육, 건강, 물건, 외모, 놀이, 여행, 운동, 특기… 가진 것은 정해져 있는데 쓸 곳은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슬픈 현실인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처럼 고민에 빠지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나는 ‘추억’에 투자하는 편이다.




올바른 선택인가?


추억. 사실 아이들에게 큰 관심사는 아닐 것 같다. 당장 손에 쥐어지는 물건이 아니니까. 둘째가 유치원을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어버이날 즈음에 참관 교육에 참석했더니, 부모님과 함께 했던 일에 대해 감사를 전하는 편지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 아이의 감사편지가 재미나서 참석한 부모님들이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00의 부모님께 전하는 감사 편지]
“엄마, 아빠. 마트에 데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같이 또 마트 가요.”


아이들의 이런 마음, 자연스러운 거겠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물질적인 것만큼 무조건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을까? 그런데 장난감을 하나 둘 사주다 보니 언젠가부터 허전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묘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아이들이 장난감을 받아 들고 깡충깡충 뛰며 좋아하던 기쁨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하게 된 선택. 아이들이 아빠의 속내를 알게 되면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추억에 투자하는 방법의 하나로 택하게 된 것이 아이들과의 여행이다.


내가 아플 때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 많이 데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는 음식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째의 ‘부모님께 전하는 감사편지’ 중에서」


둘째의 감사편지




어디로 떠날까?


아들 복 많은 우리 집에는 10년이 넘는 지난 시간의 대부분 집안에 아기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은 여행을 많이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나 나나 고생을 회피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아기가 5개월 정도만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첫째와 셋째가 처음 제주도를 가 본 것도 생후 5, 6개월 무렵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어떤 곳으로 가는 것이 좋을까? 결혼 전의 나에게는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풍경’, 잠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분위기’가 여행의 목적지를 정하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되니 중요한 기준을 하나 더 따져보게 되었다.


‘할 것.’ 어디를 가던지 할 것이 한 가지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가슴이 벅차 오른 아빠 곁에서 “심심해. 이제 뭐해?”를 연발하며 산통을 깨는 것이 아이들이니까. 그래서 우리 가족 여행의 목적지는 ‘볼 것’과 ‘할 것’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곳으로 정해진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가보지 못한 곳’.




일단 가보자. 당일 여행


몇 해 전, 연휴에 집에서 뒹굴뒹굴하다 아무 이벤트도 없이 휴일을 보내기가 아까워 온 가족이 우르르 차에 올라탔다. 일단 집에서 가까운 내부순환도로에 차를 올렸다. 어디에 가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첫째가 오늘 현충일인데 한다. 현충일, 6·25 전쟁, 북한 이야기가 이어지다 의견이 모아졌다.


“북한 땅 보러 가자!”


마침 달리고 있는 방향과도 맞으니 임진각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사실 그때까지 가본 적이 없었고 즉흥적으로 정한 것이다 보니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게 무작정 달려가 만난 신세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우리에게는 볼 것, 할 것, 가보지 못한 곳의 세 조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공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지막한 언덕 위에 가득한 색색의 바람개비였다. 3천 개나 된다는 바람개비 사이를 이리저리로 걸어 다니며 신기한 듯 살펴보는 막내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에 담기에 바쁜 엄마 아빠였다.


바람의 언덕에서, 두 살이던 막내


뒤늦게 알아보니 ‘바람의 언덕’(김언경 作, 2005년)이라는 작품이었는데, 하나의 한반도를 오가는 자유로운 바람의 노래를 표현했다고 한다.


바람의 언덕을 지나면 드넓은 잔디의 언덕이 펼쳐진다. 이곳이 우리 가족의 즐겨찾기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언덕에 항상 불고 있는 바람이 좋다는 것 때문이다. 시원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할 것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연 날리기’다.


첫 연날리기


우리 아이들은 이곳에서 처음 연을 날려 보았다. 공원에서 팔고 있는 천으로 만들어진 완제품의 연이었는데, 어릴 적 한지에 대나무 살을 붙여 가며 직접 연을 만들어 날렸던 기억이 났다. 바람의 힘을 느껴 보며 얼레의 실이 바닥날 때까지 높이높이 연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임진각을 찾게 된 이유였던 북녘땅 구경을 위해 바람의 언덕 맞은편에 있는 임진각 전망대에 올랐다. 임진각 앞을 흐르는 임진강, 그리고 도라산역과 임진강역을 잇는 임진강 철교가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임진각에서 북한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 보니 기대했던 만큼 북한 땅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북한을 볼 수 있을 만큼 남한과 북한은 가까운데도 망원경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을 아이들도 느꼈겠지. 그랬다면 더 의미 있는 당일 여행이 되었을 것 같다.


평화누리 전망대에서 북녘땅 바라보기




외출하듯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당일 여행.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투자에 걸맞은 여행인 것 같다. 추억의 질은 추억을 만드는 데 투자한 시간에 비례하지는 않으니까. 처음 가본 곳에서 만난 풍경에서 받은 느낌, 처음으로 경험해 본 것들. 소박하지만 특별한 추억이 눈에 보이지 않게 한 겹 쌓인 여행이었다.





*김강민 작가의 브런치를 구독하시면 다른 매거진의 글도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들셋 아빠의 육아 에세이 "선셋라이프"의 다른 글


매거진의 이전글 자녀, 엄마, 아빠의 변화하고 성장하는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