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의 역할의 균형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족 단위의 친구가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끼리 친구가 되고 나면 엄마들은 아이들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아빠들은 조금 서먹서먹한 첫 대면과 그 뒤에 이은 한 번의 술자리로 절친이 되어 온 가족이 동네 친구가 된다. 종종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자연스레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게 되는데, 각 가정간의 차이가 은근히 흥미로운 소재 중의 하나다.
“우리랑은 다르네?”
또 그 중에서도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고 있는 상황은 차이가 좀 큰 것 같다.
결혼하고 꽤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하나의 주제로 다투는 일이 자주 있었다. 남편, 부인, 아빠, 엄마로서 각자 노력하고 있었지만, 상대방의 노력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했고 실제 그 결과도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조금 더 도와주면 안되?”
더 힘들어 한 쪽은 아내였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나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접어두고 나름대로는 가사든 육아든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끝이 없기로 유명한 가사와 육아 앞에서는 그저 ‘나름대로’에 지나지 않았던 것 일까? 아무튼 더 도와달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나대로 화가 나고 답답했었다.
“여기에서 뭘 더 하라고?”
결국, 가사와 육아에서 누가 무엇을 얼만큼 하느냐는 것을 두고 오랜기간 갈등을 겪었던 것이다. 여러 번 부딪히면서도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나도 할 만큼 하고 있다고.’
엄마와 아빠의 역할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엄마는 요리하고 아빠는 거실 소파서 TV 시청(세계일보, 2016년)”이라는 제목이었다. 삽화에는 명절에 시어머니 옆에서 요리를 하며 음식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열불이 치밀어 오른 아내의 모습과 소파에 녹아 든 듯 앉아 TV 채널을 돌리며 즐거워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상황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익숙한 풍경에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기사에는 여성가족부가 20~30대 성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양성평등 인식에 대해 조사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가정에서 아내(어머니)의 일반적인 활동을 묻는 문항에 성인과 청소년 모두 ‘주방에서 요리한다’(성인 40.2%, 청소년 27.8%)를 첫 번째로 꼽았다. 이어 △자녀를 교육하거나 돌본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한다 △옷을 정리하거나 빨래를 한다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남편(아버지)의 일반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성인과 청소년 모두 ‘TV를 보고 있다’(성인 34.6%, 청소년 33%)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거실 소파 위에 누워있거나 앉아 있다 △컴퓨터 혹은 휴대폰을 한다 등의 순으로꼽았다.
엄마는 집에서 가사와 육아에 매달리고 있는데 비해 아빠는 느긋하게 놀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많은 가정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가풍이란 것이 있으니 이런 풍경이 자연스럽고 아무 문제가 없는 집도 있겠다. 하지만, 만약 가사와 육아는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데도 여전히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다면, 각자의 역할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맞벌이, 외벌이, 주부 엄마, 주부 아빠 등 가족마다 부부의 역할에는 차이가 있다.
‘밖에서 일하고 온 사람한테 뭘 시켜?’
외벌이의 경우, 집에서 일한 사람이 고생을 덜한 것처럼 인식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실제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 역시 만만치 않다.
“집안일 한 번 해봐라 끝이 있나. 엉덩이 한 번 안 붙였는데 애들 집에 오는 시간이지, 설거지 하고 돌아서면 또 밥해야 돼.”
실제로 경험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가끔 아내가 주말에 반나절이라도 집을 비우는 날이면, 아들 셋 밥 챙겨 먹이랴 이야기 하고 놀이 상대하랴 금세 널브러지는 물건들 정리하랴 얼마나 정신이 없던지. 있는 반찬 놓고 먹었을 뿐인데 설거지는 왜 또 그렇게 쌓이는 것이며. 그렇게 몇 번 경험을 한 다음에는 집 안팎의 일의 강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그래도 회사에서 하는 일이 조금 더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안비밀이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역할에 관한 많은 대화(가끔 다툼을 동반한)와 경험을 거듭하면서 가사와 육아의 어려움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둘의 역할에는 조금씩 균형이 잡혀갔다.
그런데, 그렇게 균형이 잡히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들이 자는 동안이 각자의 개인 활동 시간이다. 늦은 밤과 이른 아침 시간을 활용해서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뜻이다. 보통 나는 지금처럼 글을 쓰고 아내는 바느질로 소품을 만든다. 대신, 그 외의 시간에는 개인적인 활동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아이들이 크면서 우리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조금씩 만들어 지면서 가능해 진 것 같다. 아마도, 하고 싶은 일이 기다리고 있고 노력할수록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는 동기 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가사와 육아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로 역할의 균형이 잡히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보태어진 마음의 여유, 그 덕분에 가능하게 된 각자의 취미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보태어지면서 역할이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게 된 것이다.
둘의 역할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구심점이 되는 생각과 말이 있다.
그럼 나는 이걸 할게.
상대방이 무엇을 하면 나는 다른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사실 이 자체가 대단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둘 중 하나가 이 생각에서 벗어나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이 균형은 아주 쉽게 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균형이 깨어지기 무섭게 안 좋은 일들이 이어진다. 일이 나누어지지 않고, 불만을 갖게 된 사람의 일 효율은 떨어지니 결국 아이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그만큼 늦어진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욕심을 부린 결과로 결국 각자가 가질 수 있는 개인 활동의 시간도 줄어들게 된다.
우리는 그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부의 역할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서로 도우면서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늘 보게 된다는 좋은 점도 있다.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협동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집안일이 누군가에게 몰리는 것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싸울 일이 없으니, 이런 갈등 요소 하나가 줄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정의 평화 유지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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