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엄마, 아빠...서로 다른 우리
아들(Son) 셋과 함께 사는 인생 이야기. 선셋라이프의 이번 글은, 떠올리면 가슴 뭉클하지만 계속 뭉클하기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한 단어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바로 ‘가족’이다.
가족. 일종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너무나 밀접한 모임.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계가 변하기도 하는 모임. 이런 모임이 언제나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을까? 혹시 항상 그렇게 지내는 가족이 있을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에게는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게 ‘가족’인 것 같다.
결혼한 지 십 수년, 아들 셋과 함께한 지도 어느덧 5년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매일같이 지지고 볶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너무 익숙해져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또는 사는 게 원래 이런 것이라고 단정 짓고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의문도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깊은 고민의 계기가 된 또 하나의 질문.
우리, 행복한 건가?
이 말의 뜻이 문득 궁금해졌다. 사전에는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지지고 볶다 : 사람을 들볶아서 몹시 부대끼게 하다.
그렇다. 그래서 이렇게 힘들었나 보다. 아들 셋이서 결승점이 없는 계주라도 하듯 번갈아 들볶아대니 매일매일이 부대낌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뜻도 있다고 한다.
지지고 볶다 : 희로애락을 서로 나누며 한데 어우러져 요란하게 살아가다.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지지고 볶고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상은 후자, 현실은 전자인 것 같다.
희로애락(喜怒哀樂) 중에서 유독 노여움(怒)의 비중이 큰 것 같고, 어우러지긴 하는데 유독 요란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왜 그런 걸까? 실컷 기쁘고 즐겁게 지내면서, 가끔 화내고 슬픈 일에 눈물 흘리면서 사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이런 생각 때문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지내는 날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 이유. 거듭 생각해 보다 보니, 무슨 대단한 문제가 있는 것보다는 달라서 그런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성향과 기질’의 차이처럼 말이다.
성향 : 성질에 따른 경향
기질 :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정한 유형의 정서적 반응을 보여 주는 개인의 성격적 소질
정확한 의미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성향과 기질에 차이가 있으면 같은 상황을 두고 느끼는 감정이나 대처하는 마음가짐, 방법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런 차이 때문에 가족 구성원 각자가 살아가는 방법이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가족 중 아빠, 엄마, 아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1순위로 꼽는 것을 랜덤으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하고 싶은 것 / 해야 할 일 / 사이좋게 지내는 것. 각각 누구의 1순위일까?
① 하고 싶은 것이 먼저인 아들
아이는 하고 싶은 게 많다.
공부보다는 더 재미나는 것들이 많고, 그것들을 하루 종일 너무너무 하고 싶다. 자연스러운 거겠지. 어른들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참고 있을 뿐이지. 가끔은 ‘아 몰랑’ 하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어 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하고 싶은 것을 넘어 몰입하고 있는 것이 항상 하나씩 있다. 시쳇말로 항상 무언가에는 꽂혀 있다는 말이다. 이 꽂힘의 역사는 파워레인x로 시작되었고 고무 딱지, 터닝메카x, 마인크래프x 등 부모가 봤을 때는 ‘그게 그렇게 좋은가?’ 싶을 정도로 몰입과 수집을 하곤 한다. 아들의 신경과 관심은 온통 그쪽으로 쏠려 있고, 다른 무엇을 하더라도 마음은 꽂힌 것을 향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가 말해 줄 때까지는 해야 할 일이 잘 떠오르지 않고, 말을 해줘도 선뜻 시작이 안 되는 모양이다. 사람이 무언가에 꽂혀 있을 때 누군가 다른 일을 시키면 하기 싫고 짜증이 나고 그렇지 않은가?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그 누군가에 해당하는 엄마가 매일매일 이렇게 외부 자극의 역할을 하고 있고, 아들은 자극의 반대 방향을 향해 있다는 것. 그래서 할 일이 미뤄지고 미뤄져 쌓여가는 현상이 매일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일요일이 되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아들의 할 일을 두고 몇 차례 폭발이 일어난다.
②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길 바라는 엄마
엄마는 늘 걱정이 많다.
아이가 준비물을 빠트려서 혼자 아무것도 못하지는 않을지,
숙제를 잊어버리고 안 해서 야단맞지는 않는지,
받아쓰기 준비를 안 해서 많이 틀리는 건 아닌지,
군것질을 많이 해서 밥도 제대로 안 먹고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을지,
안 씻어서 쉰 옥수수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남들 다 하는 공부 안 해서 나중에 힘들어하지는 않을지…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도 일이 끝도 없는데, 이런저런 걱정거리 해결에 아이들 해야 할 일까지 다 챙기려니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아들은 할 일은 안중에 없고 시간은 점점 흘러갈수록 엄마의 불안감은 쌓여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오늘의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질문이 던져진다.
“할 일은 다 했어?”
꽂힘의 대상에 몰입해 있던 아이는 적잖이 당황하고, 할 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 엄마는 남보다도 낯선 사람이 되어 입에서 불을 뿜는다. 매일 반복되어도 매일 처음인 것 같은 이 상황. 항상 똑같은 패턴인데도 눈곱만큼도 개선되지 않는 이 현실.
③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는 아빠
아빠는 평화를 바란다.
칼퇴를 하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는데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아들 둘은 달려 나오는데 한 명은 보이지 않는다. 익숙한 이 긴장감. 웬만큼 지지고 볶아서는 연출할 수 없는 분위기. 엄마는 도깨비 눈, 아들은 대역죄인의 어깨를 하고 있다. 믿기 싫은 마음에 정적을 깨는 질문을 던진다.
“또야?”
아빠는 그렇게 생각한다. 별 거 아닌 할 일 알아서 좀 하고, 엄마는 할 때까지 좀 기다려 주면 되는 거 아닌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야 하길래 이렇게 매일 같이 지지고 볶는 건지.
아빠가 가담하면서, 이제는 매일처럼 반복되는 이 갈등의 상황을 두고 3파전이 시작된다. 엄마와 아들의 싸움이 싫은 아빠는 평화를 갈구하면서도, ‘왜 싸웠는가’를 주제로 한 새로운 싸움판을 만들어 버리고 만다.
노력해서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향, 기질.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갈등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애써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그냥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매일같이 똑같은 패턴으로 부딪히고,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이건 분명 소모적인 싸움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어떤 강력한 방법을 취해서라도 이 상황을 바꾸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상황은 대단한 게 아닌, 평범하고 편안한 일상이 유지되는 것 정도인 것 같다.
실컷 기쁘고 즐겁게 지내면서, 가끔 화내고 슬픈 일에 눈물 흘리면서 사는 것
그것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들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착과 몰입도가 대단한 것 같다. 가끔 너무 집착한다 싶을 때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초등학생이 실컷 놀다 보면 숙제 못할 수도 있지.’
‘실컷 놀다가 숙제는 밤늦게 할 수도 있잖아.’
‘공부는 나중에 내킬 때 바짝 해서 쫓아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어릴 때부터 바쁘고 치열하게 준비해야 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원망해 보기도 한다.
아무튼, 끝이 없을 것 같던 지지고 볶음이 절정에 달하고, 이제는 우리의 상황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한 시점이 있었다. 그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약속을 했다. 아들에게는 자율적으로 일과를 꾸려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엄마와 아빠는 기다리고 지켜봐 주기로. 그리고 노력하다 힘들어하면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다. 혼자서 잘 안되더라도, 스스로 실패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주어 보자고 했다.
‘꼭 해야 하는 거구나.’
‘하면 좋구나.’
‘이러면 안 되겠구나.’
자신의 할 일에 대한 필요성, 애착, 재미를 느껴 볼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새로운 도전에 금방 성공하긴 힘들 것이고, 지지고 볶음의 관성은 아직 남아 있어서 가끔씩 위태로움이 느껴질 때가 있지만 이제는 모두의 마음속에 한 가지 공통된 질문이 새겨진 것 같다.
'이러면 행복한 건가?'
실컷 기쁘고 즐겁게 지내면서, 가끔 화내고 슬픈 일에 눈물 흘리면서 살기 위한 노력을 하루하루 더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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