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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강민 Salawriter Sep 25. 2017

일상의 소박한 쉼, 작은 섬으로의 여행

나와 마주하는 짧은 여정

익숙하고 반복된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잠시 숨 쉴 틈이 필요할 때 생각나는 "여행".

하지만 여행이란 것이 막상 필요한 바로 그때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도리어 여행을 못 떠나는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을 내느라, 제대로 된 목적지를 고르느라 한 번 떠나기가 힘들 만큼 여행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반복된 일상에 수시로 숨 쉴 틈을 만들 수 있는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작은 섬으로 떠나는 여행처럼.




작은 섬 여행은 소박하고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크기도 작지만 볼거리가 아무리 많아 봐야 구경하는데 1박으로 충분하다면 작은 섬이라 할만하겠다. 여정이 단순해서 딱히 계획이라는 것을 세울 필요도 없으니 고민하고 있을 시간에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준비할 것도 단출하니 소박한 마음 정도면 된다. 무언가 얻기보다는 놓아두고 오려는 그런 마음.


섬은 유명 관광지가 아닌 곳이 좋다.

굳이 작은 섬으로 가는 이유는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단히 유명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니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닿을 수 있는 곳을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두세 시간 정 거리 섬들이 물망에 오른다. 대신, 목적지가 도(道)를 넘어야 하는 곳에 있다면 여행하는 기분이 조금 더해진다. 서울에서 경기도, 경상도에서 전라도. 그래서 첫 여정은 의례히 바다가 가까운 도시로의 여행으로 시작된다. 탈 것은 머리와 손이 자유롭고 풍경을 볼 수 있는 버스가 좋다.


아주 오래 전 석모도로 향하던 버스 티켓




좌석에 앉으면 버스가 도시를 벗어나기 전에 서둘러 공부를 시작한다.

섬 이름의 유래는 무엇인지, 어떤 모양이고 둘러볼 곳은 어디인지, 그런 것들을 대략 알아보는 것이다. 하지 공부만큼은 도(度)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은 섬 여행이란, 미리 열심히 공부해 둔 유명한 곳을 찾아가, 누군가 인터넷 자랑한 멋진 풍경이 실제로도 그런지 확인하는 듯한 목적지 지향적인 여행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장소가 가지는 위대함을 기대하기는 힘든 여행이기 때문에, "미지의 풍경"을 만나는 순간이 이 여행을 하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요소이며, 그 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행의 맛은 깊어진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모르는 게 약이다.



공부를 적당히 마치고 나면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려본다.

일상의 스크린에 비치던 도시 생활이라는 장편영화의 주인공들은 퇴장하고 탁 트인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저만치 멀리 있는 산이며 구름 정도다. 비일상적인 풍경에 일단 마음이 놓인다. 일상에서 벗어난 것에 마음이 정화되는 것은, 일상에 지쳐서라기 보다 일상에 푹 빠져 지낼 만큼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위로 겸 칭찬해 본다.


풍경이 낯설어지는 만큼 섬은 가까워져 간다.

바다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들의 삶의 터전은 나의 일상의 무대와는 사뭇 다르다. 버스가 도착하고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곳의 바다가 전하는 짠 내음을 처음으로 느껴 본다. 피부에 와 닿는 독특한 수분, 길을 안내하는 듯한 바람을 이곳 사람들은 눈치채고 있을까?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기면 틀림없이 그곳에는 기다리던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다.


작은 섬으로 향하는 배는 여느 교통수단과는 속도감이 다르다.

배가 서두르지 않는 것일까, 수평선을 향하는 길이 끝이 없어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 여유로움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배는 나를 섬으로 데려다 놓는다. 조금은 아쉬운 선상에서의 낯선 시간.


곧 섬에 닿을 시간




섬에는 길이 있고, 바다가 있고, 산이 있다.

그리고 넓은 하늘이 있다. 여행하는 이의 마음이 갈구하는 여러 장소가 축소되어 모여있다.


길을 걸어본다.

가끔씩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며, 이방인을 대하는 그들의 표정을 느껴본다. 무엇을 찾아왔는지 궁금해해도 대답할 길이 없다. 나의 일상을 떠나 당신의 일상으로 잠시 들어와 보았다고 속으로 대답해 본다. 경계하는 빛이 역력한 강아지의 짖음도, 도시에도 흔한 새의 울음소리도 이방인에게는 반갑고 새로울 뿐이다.


여행의 계획은 길 위에서 세워진다.

이정표를 만나면 마음이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어디든 가 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곳에서 만난 것이 비록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실망할 일은 없다. 여행 채비에 기대는 넣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향하던 길




해가 지려고 할 때 즈음, 섬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한다.

짧은 여정인만큼 이곳에서의 일몰과 일출을 볼 기회는 보통 한 번 밖에 없다. 다음을 기약하면 그 광경을 담아두고자 하는 마음이 느슨해진다. 앞으로 이 섬 만나는 것은 기억 속만으로 한정하며 의지를 다져본다. 걸음을 재촉해 정상에 올라 마음의 준비를 한다. 여행의 한 막을 마감할 순간을 위해 숨을 고르는 것이다. 무엇을 놓아두고 갈 것인지 떠올려 보기도 한다.


수평선에 닿을 때까지 아무것도 시선을 가로막는 것은 없다.

이 넓은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 마음은 왜 그렇게 옹졸한지, 이런 넓은 시야를 왜 갖지 못하는지. 그 순간만큼은 충분히 감성에 젖어 후회든 반성이든 사라져 가는 빛에 실어 보낸다. 내일 아침 어둠이 걷힐 때 다시 이 곳에 서서 만나게 될 나는 조금 다르기를 바라며 하나 남김없이 떨쳐 보낸다.





아무도 없는 섬의 밤길을 홀로 걸어 보았는가?

낮 동안 간간이 들려오던 생활의 소음도 사라지고, 마주치는 건 빛과 그림자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두려움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인지, 괜한 상상이 사물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씩씩한 척 혼잣말도 내뱉어본다. 그러면서 빛을 향해 걸어간다.


숙소를 찾아 홀로 걸었던 섬의 길


작은 섬을 여행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잠잘 곳을 정하는 일이다.

특히나 홀로 여행하는 사람은 괜한 의심의 눈빛을 피할 수 없다. 가능한 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내일 아침에 살아서 뵙겠습니다. 극단적인 선택 따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걱정을 끼쳐 송구스럽지만, 혼자 올 수밖에 없었던 이 여행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노트를 꺼내어 오늘 걸어온 길을 그려둔다.

길에서 마주친 것, 사람, 풍경, 그리고 생각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걸어온 길은 길지 않지만, 지면에 남겨진 여정은 몇 곱절 길어진다. 눈과 기억에 담아 둔 풍경에 감상이 덧칠해지기 때문이다. 이 단어들과 함께 남겨질 몇 장의 사진 훗날 떠나기가 쉽지 않을 때 아쉬움을 달래주겠지. 남김없이 기록했다면 서둘러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일출 시간을 미리 알아두는 것은 필수이다.


짐을 풀고 여정을 기록할 시간


새로운 빛을 맞이하려면 다시 어둠과 마주해야 한다.

구면이라 익숙해진 길을 걸어, 어제 나를 비워낸 그곳에 다다른다. 아직 한 밤중인가 의심스러울만치 어두워 시계를 확인해 보게 된다면 일출을 맞이하기에 여유로운 시간이다. 서서히 주변의 사물들이 섬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입술에 닿던 차가운 공기가 어느덧 온기를 되찾아간다. 어제 만들어 둔 마음의 여유를 확인해 보며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한다.




돌아갈 일상이 있어 여행은 특별하다. 여행의 아쉬움이 남기에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다음을 기대하며 설렌다. 


그리고 작은 섬에서 돌아오는 길, 부쩍 자란 나를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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