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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강민 Salawriter Aug 30. 2017

버려지기 쉬운 뜻밖의 여유, 어떻게 쓸까?

잠깐의 여유를 활용하는 작은 취미

시간 소유의 상대성


하루 24시간이라는 길이, 1초에 '째깍' 정도로 흘러가는 속도.

누구나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주어진 시간이지만 쓰는 방법에 따라 각자가 실제로 가지게 되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업무 시간에는 집중해서 일을 하고, 여가 시간에는 느긋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라면, 하루의 일정 시간을 정해진 용도로 써야 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보다 이상적인 것이 있을까? 말은 쉽지만 하루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로 얽혀 있다. 돈만큼이나 시간도 다 쓸 데가 정해져 있는 것인지, 모처럼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날도 예정에 없던 일들이 끼어들어 곳곳에서 시간을 앗아간다. 하루라는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어느샌가 동이 난다.


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또 어떤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이런 것일지. 일이란 마치 시간에 대한 포만감을 못 느끼는 존재인 것처럼 한 시간, 1분, 1초까지 참 알뜰하게도 집어삼키니, 대체로 마감 직전이 되어야 겨우 끝이 난다. 엉덩이 한 번 안 붙였는데 식구들이 돌아올 때나 되어야 끝나는 집안일도 다를 바가 없다. 일을 시작하며 소박하게 기대했던 잠깐잠깐의 여유도 그렇게 사라진다.


운 좋게 여유가 생길 때도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에 목말라 있으면서도 바쁘던 와중에 막상 여유가 생기면 딴짓을 해버리고 만다. 상비약도 아니고, 뜻밖의 여유를 잘 사용할 마음의 준비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어느새 지나간 여유의 먼발치서 후회를 해 보지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란 대게 그런 것이다.


하지만, 여럿이 여행을 가면 그중에 소화제나 해열제 정도는 꼼꼼히 챙기는 사람이 한 명쯤 있듯이, 대수롭지 않은 시간이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소유하는 방법을 준비해 두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쌓여가는 일의 양, 줄어드는 시간의 여유




시간을 조금 더 소유하기 위한 "잔취미"


시간에 대한 욕심은 제각각이다. 누가누가 멍 때리기를 더 잘하나 겨루는 대회가 열리듯이 누군가에게 여유는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낼 때 가장 좋은 것이기도 하다.


또 누군가에게 여유는 그렇게 쓰기엔 아까운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사용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은 잠깐 생긴 여유 동안 해버리고 마는 딴짓을 방지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겠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가벼운 취미이다. 이왕이면 생산적이면서 가벼운 취미가 좋을 것이다.


혹시 취미가 훗날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되어 잔치를 열게 될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희망을 담아 "잔취미"라고 이름 붙여보자.





잔취미의 조건


취미는 종류도 방식도 다양하지만,  '잠깐의 여유'라는 제약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잔취미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공간의 제약이 없다.

숨은 근육까지 깨워준다는 클라이밍이 취미라고 해보자. 우선은 탈만한 벽이 필요하다. 잠깐의 여유를 수십 번 모아야 벽 앞에까지 갈 만한 시간이 될지 모를 일이다. 이런 것은 잔취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딜 가야만, 또는 어느 정도의 공간이 주어져야만 할 수 있는 취미는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걸릴뿐더러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음으로 미루기 십상이다.


특별한 공간과 시설이 필요한 취미


잔취미는 고민할 시간에 이미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여유가 생긴 그때, 그 자리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공원의 벤치에서, 사무실의 자리에서, 서있는 지하철 안에서. 넓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내가 있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잔취미는 생각보다 많다.


간단한 도구로 할 수 있다.

취미의 대명사인 사진을 생각해 보자. 요즘은 스마트폰만 해도 탑재된 렌즈와 앱만 잘 조합하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소형 하이엔드 카메라 또한 DSLR급의 사진을 간편하게 찍을 수 있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 정도의 도구로 즐기는 사진이라면 잔취미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사진이 취미라고 말하면 일단 궁금해지는 것이 사용하는 "장비" 아닌가? 장비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진을 제대로 즐기기 시작하면 카메라의 바디와 렌즈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져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좋은 피사체를 찾아 떠나기 시작하면 짊어져야 할 부대 장비는 또 얼마나 많아지는지.


사진을 제대로된 취미로 누릴 때 필요한 것들


이처럼 생산적이고 좋은 취미라 하더라도 대단한 도구가 필요하다면 잔취미로 즐기기는 어렵다. 그런 도구는 정작 순간적인 여유가 주어졌을 때는 내 손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단한 도구일수록 갖추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돈이 들어가기 마련이니, 잠깐의 여유를 즐기자는 소박한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다. 취미 때문에 "빚"잔치를 하고 싶지는 않다.


잔취미의 도구는 필요할 때 바로,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 거대하지 않지만 출중한 생산 능력을 지닌 도구를 찾아 주변을 한 번 둘러보면 어떨까?


머리를 많이 쓰지 않는다.

잔취미를 즐기는 시간은 매우 짧다. 그래서 금방 하고, 한참 잊어버리고 있다가 또 잠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를 적게 쓰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에 잠깐의 여유가 다 흘러가 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잔취미를 즐기는 보람이 없을 것이다. 머리 쓰는 취미로 대표적인 바둑의 경우, 일종의 게임이긴 하지만 한 수 한 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잔취미와는 거리가 먼 예라고 할 수 있다.


한 수 한 수에 신중을 기하다보면 어느샌가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래서 잔취미는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것이 좋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순간의 느낌을 살려 할 수 있는 것, 단순한 창작 등이라면 짧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뭔가를 남길 수 있다.




어떤 잔취미가 가능할까?


이렇듯, 우리의 일상에서 주어지는 짧은 여유를 활용하여 작은 결과물을 쌓아갈 수 있는 취미는 무엇이 있을까? 각자에게 맞는 잔취미를 찾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본다.


스케치

크로키, 펜화처럼 가벼운 손놀림으로 일상의 장면을 기록한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잔취미이다. 사진과는 달리 나만의 표현 방식으로, 함께 보았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장면으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스케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기고를 하는 것은 이러한 소소한 취미가 만들어낸 특별함, 유일함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필요한 도구는 단출할 수 있다.

길 위에서 현재를 그린다. (Photo by Quino Al on Unsplash)


메모

짧은 시간에도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글"이라고 부르면 생각이 깊어질 것 같아 메모 정도로 수준을 낮춰보았다. 무언가를 글로 기록한다는 것은 일의 일부나 습관일 수 있지만, 기록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는 취미가 될 수 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의 단편, 남기고 싶은 일상의 에피소드는 잠시 메모해 두면 더 큰 여유를 얻었을 때는 그만큼 큰 생각과 내용의 살을 붙일 수 있다. 도구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순간의 단상(斷想)을 기록한다.


캘리그래피

멋들어진 글씨로 쓰인 광고 카피를 접하다가 직접 캘리그래피를 하게 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기본적인 요령을 터득하면 생각보다 쉽게 메시지에 감성을 담아 표현할 수 있는데 비해 작품이 주는 감동이 커서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연필, 볼펜, 매직 등 글자를 표현할 수 있는 기구라면 무엇이든 캘리그래피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잘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틈틈이 하다 보면 언젠가 만난 잠깐의 여유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간단한 도구의 폭이 다양한 캘리그래피


손바느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작은 소품부터 옷까지 손바느질로 만들고 있다. 재단이나 재봉틀을 사용해야 하는 작업은 공간과 도구의 제약을 받지만,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은 가방에 지니고 다니다가 틈이 나면 꺼내 작업을 이어간다. 잠깐 사이에 한 땀 한 땀 보태다 보면 외출하던 중에 완성하는 것도 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의 그늘 아래에서, 잠시 숨 돌리는 식탁 의자에서 작품은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천, 바늘, 실만 있으면 가능하다.

잠시 꺼내어 몇 땀을 더한다.


(영양가 있는) SNS

요즘의 우리는 거의 대부분이 컴퓨터를 한대씩 가지고 다닌다. 손 안의 만능 기기라고 할 만한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이 많다. 글을 쓰는 것은 물론, 그림, 음악, 영상 등 우리가 향유하는 갖가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여유가 생겼을 때마다 기웃거리게 되는 SNS도 사실은 누군가가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 있고, 우리도 그중 한 명이다. 최근에 등장한 춤 이름의 모 SNS는 사용자가 큐레이터가 되어, 본인의 관심사나 전문 분야에 대한 글을 공유하는 게 주목적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소화하게 된다. 즉, 콘텐츠를 시간 들여 만들지 않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 사진을 공유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영양가 있는 콘텐츠를 공유한다면 SNS도 좋은 잔취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콘텐의 생산자 또는 큐레이터로 SNS에 참여하기


번역

조금 의아할 수 있으나, 번역은 나의 잔취미 중 하나이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아마추어 번역가 중 소정의 테스트를 통과하면 등록 번역가로 활동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 웹과 앱 모두 지원하니 스마트폰으로도 번역 참여가 가능하다. 보통 한 문장 단위로 번역을 하고 문장 당 일정 번역료를 받는다. 번역할 수 있는 문장만 하고 어려운 문장은 넘어가면 된다. 즉, 어느 정도 외국어에 익숙하면 크게 머리 쓰지 않고 해 볼 만한 잔취미라고 할 수 있다. 큰 수입을 얻는 것은 아니니, 보통 후식 쿠폰으로 바꾸어 가족들과 즐긴다.

쉽고 간단한 번역도 잔취미가 될 수 있다.




더 많은 잔취미가 있을 테니, 각자의 생활과 관심사를 생각해서 한 번 찾아보면 좋겠다.

넉넉하지 않은 여유를 활용하는 잔취미라 할지라도 그 리듬을 이어가다 보면, 문득 여유를 만났을 때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떠나보내는 허무한 무한반복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인 잔취미의 결과물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변화시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만의 잔취미가 있으면 댓글로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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