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쌓아 가는 외국어
영어가 죽을 때까지 발목을 잡을 거야.
태어나면서부터 배운 모국어가 엄연히 있는데 평생을 남의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글로벌 시대이다. 자동 번역이 언젠가 실현되겠지만, 미래는 미래일 뿐 지금의 우리는 아직도 말문이 트일 기미가 안 보이는 외국어 때문에 내일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사실, 외국어를 잘 하기 위한 방법은 그 나라에서 몇 년 동안 사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사 한 번 하기도, 이직 한 번 하기도 어려운데 무려 외국에서 사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스트레스 하나 날려버리자고 거처를 외국으로 옮긴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어학연수도 도움이 되겠지만 실패한 선배들도 워낙 많으니, 친구를 잘못 사귀는 바람에 영어권에 가서 일본어를 배워 왔다는 경험담은 이제 원래 그런 것으로 느껴질 정도다. 역시, 외국어를 잘 하려면 그 나라에서 몇 년간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이래서 어렵고 저래서 안된다고 해서, "해야 되는데"라는 말을 머리에 남겨 두고 있는다면, 외국어는 평생의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제대로 시작해 보려고 마음은 먹고 있으나 늘 시작하지 않고 있으니 좋아질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그 말 대신 "조금씩이나마 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상황을 바꿔보면 어떨까? 아무리 작은 티끌이라도 모으면 모이기는 하니까.
나는 일본의 대학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비 유학을 했고, 우리나라 정부가 아닌 일본 문부과학성의 장학생으로 초청되어 국립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일본에서 유학하는 학생들 중 다수가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서, 또는 어학연수 등으로 이미 일본에서 거주해 본 경험이 있다. 언어가 걸림돌이 되지 않으니 기회를 얻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다. 그렇지 않은 나와는 아마 과정에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는 일본어로 뭐야?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했다. 언어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라, 독일어라는 과목을 좋아한 것은 물론이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본어도 말 자체가 재미있어 보이고 궁금해서 자주 옆 반을 기웃거렸다. 그래 봐야 몇 마디 주워들은 것이 전부이지만 일본어에 대한 흥미는 그렇게 10대에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입시에 제2 외국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니 독일어도 일본어도 그저 관심거리로 남겨진 채 10대가 지나갔다.
일본어를 처음 제대로 배운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궁금하니 배워 봐야겠다는 생각에 학원을 등록했다. 공부는 역시 시험을 쳐야 하는 것인지. 첫날 칠판 가득 히라가나를 쓰신 선생님이 당장 내일 시험을 친다고 하시니 엉겁결에 남의 나라 글자를 몇 시간 만에 외워버리게 되었고, 일본어와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는 흔한 말이 있다.
'배워서 어디에다 써먹지?' 따위의 고민 없이 그저 궁금해서 시작한 일본어 공부는 순수하게 재미로 하는 것이었다. 재미가 있으니 자꾸만 눈이 가고, 자꾸 보니 외워진 문장을 중얼거려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학원 교재를 통째로 삼키듯 하게 되었고 초급 때부터 단어와 문장들은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당시에 일본어를 해 보라는 사람들에게 야쿠자를 흉내 내듯 낮고 굵은 목소리로 읊었던 한 문장이 아직도 기억난다. "この青い色のベッドはありませんか。"였는데, "이런 파란색 침대는 없습니까?"라는 뜻이었다. 그 정도 수준의 문장들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스무 살에 시작해서 생활 습관처럼 된 일본어 공부는 군 복무 기간을 거쳐 대학교 2학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방학이 되면 학원을 다니고, 학교에서는 남들이 교양 학점을 채우려고 한 과목 정도 듣는 일본어 강좌를 레벨을 높여 가며 모두 수강했다. 교재는 여전히 통째로 소화했고 예시로 나오는 대화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정도였는데, 내가 외국어를 길게 술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런 것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일본어 공부를 꾸준히 한 것은 아니고, 마음이 내키면 한참 공부를 하다가 몇 달 쉬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 또다시 책을 꺼내어 드는 식이었다.
좋아서 하는 공부는 지치지 않고, 조금 쉬면 다시 생각나는 취미 같은 것이다.
초급으로 시작한 일본어는 어느덧 아는 단어, 아는 표현이 웬만큼 쌓여 있었고 영어가 대세인 사회에서 특이하게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 정도의 인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유학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된 만큼, 취업이냐 학업이냐를 두고 스스로를 가늠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좋은 학생 신분을 버리고 회사를 가기는 아깝고 막상 가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지 막연한 불안감이 앞섰다. 결국 유학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부모님께 동경대를 가겠다는 선언을 했다.
말은 뱉었으나 수습이 쉽지는 않았다. 우선 유학 비용을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었고, 짧은 시간에 그 큰돈을 마련할 방법도 없다 보니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바로 국비 유학이었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에서는 매년 해외 학생을 대상으로 학비 면제에 생활비가 지급되는 장학금을 주어 초청을 하는데, 내가 응시하던 시절에는 이과 20명, 문과 20명, 일본어과 10명 정도로 한국에서 한 해에 50명 가량을 선발하여 주로 국립대학의 대학원에 진학시켰다. (일본 문부과학성 국비유학 안내 : http://www.kr.emb-japan.go.jp/cult/study_government.html)
건축을 전공한 나는 전국에서 스무 명 안에 들어야 유학을 떠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좋아서 해왔던 일본어가 큰 도전의 성패를 결정짓는 부담으로 바뀐 것이다.
3학년 때 처음으로 시험에 응시를 했다. 응시라기보다는 체험이 정확한 표현이다. 시험 정보를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으니 실전에서 모의고사를 쳐 보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시험장에 앉아 있는 내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울고 싶었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지식은 지금까지 익힌 말 중심의 공부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좋아서 했던 공부를 시험 합격이라는 목적 지향적인 방식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부담을 떨치려면 잘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
방식을 바꾼 공부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니, 4학년 겨울 방학이 되어서야 일본어능력시험 2급에 겨우 합격하게 된다. 장학금 시험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1급 이상이었으니 한참 수준 미달이었고, 졸업하고 몇 달 후에 있을 다음 시험까지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3개월 단기 시험 대비반을 다니게 된다. 이 3개월 동안, 학교 도서관의 불을 켜고 끄는 것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하루에 한자를 수백 개씩 외워야 했으니 공부의 강도가 상당했다. 하지만 시험에는 떨어졌다. 그나마 짧은 시간에 주입식으로 했던 공부의 성과로 그 해 겨울에 일본어능력시험 1급에 합격하게 된다. 초급으로 시작해서 어학 시험의 가장 높은 레벨에 합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9년이었다.
10년에 조금 모자라는 시간은 돌이켜 보면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이 조합된 별거 아닌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을 보낸 밀도의 영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며 지낸 9년이지만, 전체 기간 동안의 공부의 밀도를 균등하게 퍼뜨려 보면 단 5분을 공부했더라도 쉰 날은 하루도 없는 셈이지 않을까.
습관 같았던 공부의 결실인지, 다음 해 시험에 합격했다.
졸업 후 두 번째 도전으로 국비 유학생의 신분이 되었고, 예전에 선언했던 대로 동경대학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초급반으로 시작해서 정확히 10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일본에서 거주를 시작하자 또 한 번의 언어 장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책에서 배운 것과 다른 것이다.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난무하니 어쩔 수 없다. 또 쌓아가는 수밖에.
일본어를 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듣고 보는 대로 최대한 기억했다. 논문을 일본어로 써야 했는데 작문은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내가 쓴 문장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작문을 하고 나면 문장을 통째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고, 유사한 문장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반복했다. 검색을 할 때마다 새로운 문장들을 접하게 되고 그만큼 표현력이 늘어갔다. 표현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니, 이제는 필요한 단어 몇 가지만 바꿔 주면 웬만한 문장은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석사 2년, 박사 3년으로 유학 생활을 마쳤다. 초급으로 시작해서 국비 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데 14년이 걸렸다.
학위 취득 후 바로 국내 기업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업무 상으로는 일본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그러다 보니 일본어를 점점 잊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애써 체득한 외국어를 그냥 잊기는 아쉬워서 조금씩 노력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10분씩 전화 일본어 수업을 듣고, 출근길에 웹 포털에서 제공하는 오늘의 회화를 듣는다. 외국 거주 경험은 역시 무시할 게 못 되는지 모르는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언어 감각을 유지하고 몇 가지씩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얻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어쩌면, 지금의 공부는 처음 히라가나를 배울 때의 마음 가짐과 더 가까운 것 같다. 좋아서 하다 보니 습관처럼 되고 있는 것이다. 습관처럼 공부하다 보니 눈에 띄게 성장하기보다는 미미하지만 꾸준히 실력이 쌓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력의 강도보다는 행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영어는 일본어와 같은 방식으로 매일 공부를 하고 있고 다음 달부터는 중국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 중국에서 사는 것 만 못하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잘 하겠지. 그런 마음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려고 한다. 티끌도 오랜 시간 모아 보면 꽤 쌓이기 때문이다. 중국어도 10년 정도면 자유자재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김강민 작가의 브런치를 구독하시면 다른 매거진의 글도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티끌모으기 매거진의 다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