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과 4박 5일 도쿄 여행 - #2
젖을 뗀 이후로 아이들이 한 번도 깨어 있어 본 적이 없는 시간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7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타기 위해 늦어도 5시에는 공항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오랫동안 살았던 도쿄로 6년 만에 여행을 한다는 설렘에 잠을 설친 첫째는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에 이미 일어나 옷을 입고 있을 정도로 상기되어 있었다.
"얘들아 일본 가야지?"
세상모르고 자던 둘째와 셋째도 어둠 속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에 단번에 눈을 떴다. 얼마나 기다렸던 것일까.
옷은 이미 잠들기 전 머리맡에 준비해 두었으니 집 나설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새해 둘째 날 새벽 4시 5분에 아들 셋과 함께 하는 일본 여행이 시작되었다.
식구가 많다 보니 짐이 항상 많고, 대중교통 요금보다 기름값, 통행료, 주차요금을 다 해도 훨씬 싼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어디를 가더라도 차를 사용하는 편이다. 집에서 인천 공항까지 택시로 편도 5만 원 이상, 리무진 버스로 편도 5만 원이니 차로 이동하고 주차 대행을 활용하기로 했다. 5일 동안 주차하는데 기본요금이 45,000원, 발레 파킹까지 해주니 경제적이면서 편리한 방법이다. 공항 주차장이 만차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불안감까지 덜 수 있다. 단, 새벽 5시 이전, 밤 12시 이후에 맡기고 찾을 때는 대행료가 추가된다.
출국하는 날 5시 5분에 공항에 도착, 귀국하는 날 비행 지연으로 밤 12시 반에 도착하여 추가 요금은 15,000원이 발생했고 주차에 총 6만 원이 들었다. 아이들은 추위에 떨며 기다리는 시간 없이 출국과 귀국을 할 수 있었다.
해외여행의 설레는 마음은 출국하기 전 공항에서 무너지곤 한다. 심사를 위해 늘어선 줄이 끝이 안 보인다. 3시간이 아닌 2시간 전에 도착한 게 죄라면 어쩔 수 없지만, 애들을 한 시간이라도 더 재우려는 부모 마음도 있는 것이다.
결국 5분 정도 남겨 놓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면세품 인도장까지 다녀온 아내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땀범벅이 되었다. 자리에 앉으니 노곤해진다. 저가 항공이라 기내식은 별도 구매고 값도 너무 비싸니 탑승구 앞에서 산 김밥 두 줄에 물 한 잔 얻어먹고 한숨을 돌린다. 1시간 남짓 비행하니 모자란 잠에 식구들 고개가 떨어진다.
그리고, 드디어 보이는 일본 땅. 어딜 가도 아파트 천지인 우리나라와는 상공에서 보는 모습이 다르다. 잠에서 깬 막내는 처음 본 섬나라 일본의 끝없는 해변을 내려다보며 엉덩이가 덜썩거린다. 유난히 부드러운 착륙과 함께 무사히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나리타 공항에서 가치도키(勝どき)에 있는 숙소까지는 전철을 한 번 갈아타고 가야 했다. 오후 3시로 약속되어 있는 체크인까지 시간도 남으니 숙소 근처에 있는 쓰키지 수산 시장(築地市場)에서 카이세키(懐石, 일본 코스 요리)를 먹을 계획이었다. 나리타에서 도쿄로 들어가는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이동하면서 가게에 전화하니 이미 예약이 꽉 찼다고 한다.
환승역인 우에노(上野)에 도착하니 이미 허기가 진다. 그냥 밥을 먹고 움직이기로 한다. 첫끼는 좀 편하게 먹고 싶어 백화점 식당가를 찾았다. 메뉴는 일본 정식으로. 이것저것 시켜 먹으니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이맛이었지.'
느긋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가치도키역으로 향한다. 도쿄도에서 운영하는 지하철이 숙소 근처를 지나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표를 사는 것도 불편하고, 아이들에게 기념도 될 것 같아서 IC 교통카드를 구매했다. 지하철에서는 PASMO, JR선에서는 SUICA를 구매할 수 있다. 어린이용(초등학생까지), 성인용이 있고 여권으로 이름과 생년월일이 확인되면 이름이 기입된 카드를 살 수 있다.
숙소는 역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체크인 시간 직전에 문을 열어두고 열쇠는 집 안에 두는 방식이었다. 4박에 40만 원 조금 넘는 가격이라 괜찮을까 걱정도 했지만, 괜찮았다. 침실 하나에 거실이 있는 평범하게 작은 일본의 집이다.
숙소는 주인이 사는 집은 아니었다. 호스트는 직장인으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몇 채의 집을 대여하고 있었다. 살림집이 아니니, 작은 숙소지만 침대가 네 개 있어서 다섯 살 막내까지 다섯 명이 충분히 잘 수 있고, 조리, 세탁, 목욕 등 필요한 것들이 웬만큼 준비되어 있다. 조식이 제공되지 않는 것만 감수하면 이 돈에 이런 숙소라면 만족할 만했다.
저렴한 숙소일수록 위치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행히 가치도키는 디즈니랜드, 긴자, 신주쿠, 아사쿠사, 오다이바 등 주요 관광지까지 전철로 30분 내외 정도로 갈 수 있는 곳이다. 가격, 시설, 위치의 세 가지 면에서 첫 에어비앤비는 성공적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첫 번째 외출을 나섰다.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인 도쿄 스카이트리다. 2012년 2월에 완공되었으니, 우리가 귀국한 2011년 가을에는 형태가 거의 완성된 상태였고 관람할 수는 없었다. 숙소에서 거리도 가깝고, 도쿄에 온 첫날 도시의 전체 모습을 조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입장권은 국내 여행 사이트에서 미리 예매를 해 두었다. 현장에서 당일권을 구입할 수 있지만 줄이 상당하다고 했다. 입장권을 구입한 전망대는 350m 전망데크였고 비용은 71,800원이었다. 450m 전망대를 가려면 350m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간혹, 입장권을 국내나 일본에서 오프라인으로 수령하는 상품도 있으나, 이메일로 교환권을 발급받으면 훨씬 편리하다. 이번에는 구매 확정한 다음날 교환권을 받았다. 날짜가 지정되어 있으나, 당일 입장하지 못하는 경우는 다음날로부터 29일 이내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우리는 예약한 당일에 방문을 했다.
4층 매표소에서 입장권으로 교환하는데 줄을 설 필요가 없었고, 현장 구매의 긴 행렬이 바로 옆에 늘어서 있었다. 전망데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역시 줄을 오래 서지는 않았는데, 엘리베이터 속도가 워낙 빨라 많은 인원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전망데크에 도착하니 유리창문 쪽으로 사람들이 가득하다. 겹겹이 쌓인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나면 차례가 돌아온다.
솔직한 심정으로, 야경을 내려다보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감동이 크지는 않았다. 그나마 예전에 구경했던 도쿄타워가 눈에 들어왔을 때의 반가움 정도는 있었지만, 워낙 넓은 지역에 펼쳐진 불빛을 보는 것이 생각보다 대단한 경험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잠깐 신기한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으니 인파 속에서 금방 지쳐버렸다. 그나마 언제 가냐는 질문이 잠시 멈춘 것은, 유리 바닥을 구경하는 짧은 시간 정도였다. 전망데크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마지막 이벤트로 마련되어 있는 듯했다.
스카이트리는 도쿄의 새로운 상징물이라는 점에서 한 번쯤 방문해 볼만 하긴 하지만, 비용과 노력에 비해 감동이 약할 수 있으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전망대에서의 야경보다는 스카이트리 아래에서 올라다 봤을 때의 압도적인 모습이 더 인상에 남았다.
평소보다 걷는 양이 많다 보니 아이들이 허기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식당을 찾아다닐 상황이 아니다. 쇼핑몰의 푸드코트로 향했다. 또 이것저것 먹는 재미는 있지만, 첫날의 식사는 만족스럽지 않다. 내일부터는 최선을 다해 식도락을 즐기겠노라 다짐해 봤다.
숙소 근처의 마트에 들려 내일 아침에 먹을 수프와 빵, 발포주와 안주를 간단히 샀다. 발포주는 최근 국내에서도 저가 맥주로 인식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판매가 되고 있고 시즌마다 나오는 기간 한정 상품을 맛보는 재미도 있다.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오늘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며 도쿄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