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였는지, 친구들 사이에서 MTB가 크게 유행을 했다. 18단 기어의 그 자전거는 멋지기도 했지만 기존의 5단 기어와 달리 별 힘 들이지 않고 페달을 굴릴 수 있어서 정지 상태에서 힘껏 페달을 밟아 앞바퀴를 들고 누가 더 멀리 가나 내기가 매일처럼 운동장에서 벌어졌다.
참 많이 갖고 싶었다. 검은색 18단 1자 핸들, 두툼한 바퀴의 자전거가. 수많은 아이들이 가진 것에 비해 그 자전거는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그 자전거는 부담스러웠다.
몇 날 며칠을 이야기했다. 집안 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듣고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엄마 주변에서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좋아 보이더라, 묘기도 부릴 수 있더라. 차라리 사달라고 하는 게 속 시원했을 말을 잊을만하면 하고 또 했다.
결국 사 주셨다. 그 자전거는 아무래도 부담이어서 중고 2만 원짜리 자전거를 샀다. 18단 1자 핸들이 아닌, 바퀴가 얇은 5단 기어의 사이클이었다. 키가 크지 않았던 나는 다리도 제대로 닿지 않아 페달을 밟으려면 엉덩이가 안장의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너무 좋았다. 주말 하루 온종일 동네를 달렸다. 원하던 것과는 달랐지만 막상 내 것이 되고 나니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고 그렇게 빠를 수가 없었다. 좋기만 했다. 가끔씩 18단 1자 핸들의 자전거를 마주칠 때만 아니면.
산 지 사흘 째 되던 날 도둑을 맞았다. 아파트 1층 현관에 묶어 두었던 자전거가 없어졌다. 이런 장면은 현실감이 떨어져서 보자마자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느 구석 깊숙이 들어가서 안 보이는 거겠지, 한눈에 다 들어오는 현관을 이리 살피고 저리 살폈다.
자전거 없이 동네를 달렸다. 집에서 더 멀리 더 멀리 자전거를 찾아 달렸다. 비는 또 왜 그렇게 쏟아지던지, 잠깐 자전거를 보러 내려갔던 탓에 우산도 없이 비 속을 달렸다. 속상함과 분함에 악악 소리까지 뱉어가면서.
찾을 수가 없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되니, 혹시나 자전거 가게에서 판 다음에 다시 훔쳐간 건 아닌지 의심도 했다. 며칠을 기웃거렸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갖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던 만큼이나 상실감이 커서 잊어버리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사실 조금 모자란 만족감이었다. 원했던 것이 워낙 확실했고, 가진 것은 확실히 달랐다. 사이클을 사고 너무 좋았지만, 어쩌면 정말 만족한 것보다 더 만족했다고 애써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만족에는 약간의 아련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혹시 원하던 것을 가졌다면? 그랬다면 너무 만족한 나머지 마음이 다 채워져 버리지는 않았을까? 너무 쉽게 가져서 가진 것 자체가 별 대수롭지 않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오히려 2만 원짜리 아련함이 있는 사이클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눈물을 쏟고 악을 쓴 건 아닐까?
다 가지는 것보다는, 조금 모자라게 가진 것이 주는 간절함의 여운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대학생이 되어 18단 1자 핸들의 바퀴가 두꺼운 자전거를 샀지만 좋았던 마음이 딱히 기억 나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 그때가 아니어서라기 보다는, 결국 그걸 가져버려서이지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