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학생 시절을 보낸 후 30대 초반에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늦깎이 직장인에게 회사 생활 초기는 심신이 지치는 날의 연속이었다. 두 달쯤 지났을까?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꾸만 눈이 건조하고 피로해서 뜨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비교적 생활이 자유롭던 학생 때와는 달리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휴식 시간이 부족해지고 하루 종일 보고서 만드느라 노트북만 쳐다보고 있으니 눈이 성할 리가 있나. 산업 재해에 눈의 피로도 해당되는지* 알아볼까도 했다.
그대로는 일을 하기가 너무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 안압부터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닥터와 닥터. 자기 분야의 전문가 둘이 마주 앉은, 일종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물론 맞은편의 닥터는 내가 닥터인지 알 리가 없으니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었다. 아무튼, 차트를 이리 보고 저리 보던 의사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약간 기울인 얼굴을 내 쪽으로 내밀며 물었다.
"눈이 어떻다고요?"
"일을 한참 하다 보면 눈이 뻑뻑하고 피로해요.”
“그래요......”
“네. 오후가 되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졸음이 쏟아질 때처럼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듭니다."
"그래요? 혹시...... 졸린 거 아니에요?”
“네?”
“졸린 거 같은데? 그런 거 같은데? 야근 많이 하세요?"
"아. 네네!"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눈물밖에 없어요. 졸리면 좀 주무세요."
박사급 둘의 대화는 톤은 진지하지만 시트콤풍의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걱정은 덜었지만 허탈해진 마음만큼이나 무게감이 없는 인공 눈물을 받아 들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눈물을 넣는 것보다 먼저 낮잠 잘 수 있는 공간을 물색했다. 다음날, 눈"꺼풀"의 피로가 견디기 힘들어 졌을 때 그 공간을 찾아 잠시 눈을 붙여 보았다. 전문가의 판단은 정확했고, 졸음을 떨친 나는 일하는 동안 눈을 부릅뜰 수 있었다.
하루 잠깐의 낮잠 처방을 받은 지 7년, 일 하는 동안 나의 눈꺼풀은 중력을 잘 거스르고 있다. 불편함을 우직하게 참고 버텨야 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의외로 너무 쉽게 해결이 되어 버리는 불편함도 있다. 내려오는 눈꺼풀이 닫히지 않도록 오늘도 내일도 버티고 있었을 나를 생각하면 가끔 웃게 된다.
*실제 산업 재해 유형 중 눈 부위의 장해는 시력 장해, 눈꺼풀 장해 등이 있다. 시력이 매우 낮아지거나 실명한 경우, 눈꺼풀의 운동 기능 장해가 남거나 눈꺼풀의 일부가 없어진 경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