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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강민 Salawriter May 27. 2018

논쟁에서 이겼을 때의 마음가짐

입사 초기에 참여했던 어떤 프로젝트의 리더는 독단적인 성향의 소유자였다.

회의를 하면 분위기가 늘 살벌했는데, 팀원들이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는 마치, 회의란 리더인 자기는 무조건 옳고 나머지는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자리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강압적인 어투와 못마땅한 표정은 늘 극에 달해 있었고, 그런 리더 앞에서 팀원들은 눈 아래 책상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해 봐야 소용이 없고, 하면 더 많은 공격이 이어질 뿐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납득이 되지 않는 일방적인 공격. 답답하지만 리더가 교체되지 않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그저 매일 한 차례 견뎌야 하는 고통스러운 의식 같았다.


어느 날, 그와 논쟁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다른 팀원들과 마찬가지로 회의 중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고 지냈다. 하지만, 그날 그의 주장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다. 리더가 주장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의지가 너무 강하면 따라갈 수는 있다.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사실에 입각해서 만들어 주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잘못된 주장을 할 때 그것을 입증할 근거를 만드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팀원으로서는 거부해야 할 일이다.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명백한 근거를 제시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 역시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본인이 직접 사실을 확인해 보기로 하고 회의는 끝이 났다.

확인해 봤는데, 자네 이야기가 맞더라고.

퇴근길에 받은 전화 통화는 아주 짧았다.

그 성격에 먼저 전화해서 일종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평소 회의에서는 자기가 옳음을 주장하던 그의 말은 한 번 시작되면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일을 대하는 자세,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서 세상 사람 모두가 잘못되어도 자신만큼은 옳다는 근거를 끝도 없이 나열하던 그는 본인의 잘못됨을 인정하는 데는 말이 인색했다.


웃음이 났다. 통쾌했다. 몇 달 간 참아온 고통스러운 의식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승리의 주인공이 나라니. 다음날 아침, 팀원들에게 어제의 짧은 통화를 전하는 나는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벌써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프로젝트 이후로는 나도 리더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들려오는 사람들의 평으로는, 나는 다행히도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성향의 소유자는 아닌 것 같다. 논쟁을 벌일 일도 별로 없고, 팀원들과 대화하면서 대부분의 일을 풀어나가고 있다.


가끔씩은 의견이 다를 때도 있다.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때도 있다. 각자 의견을 개진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결론이 날 때까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팀원들에게 내 의견을 개진할 때 몇 년 전 그 논쟁의 주인공이었던 나와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역할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지난 몇 년 사이에 의견과 주장이 가진 힘을 느껴서인 것 같다.


논쟁의 끝에 내 의견이 채택이 되었다면, 그 의견 자체 뿐 아니라 그 때까지 개진한 근거는 앞으로 일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방향이 흔들리지 않고 일이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과 책임은 의견을 개진한 나의 몫이 된다.


그때, 의견 차이로 인한 오랜 논쟁 끝에 내가 옳다는 결론이 났을 때, 내가 느껴야 하는 건 통쾌함이 아닌 무거운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주제와 상황인지는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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