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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Aug 11. 2021

[어슬렁,남해] 06. 노을을 보면 왠지 착해지는 듯해

읍내 장보기/ 처음 만난 꽃내 일몰

남해에 머문지도 벌써 6일째다. 

그간 줄곧 꽃내 지역에 갇혀 있다 보니 읍내 나들이가 너무나 궁금했다. 어느 지역에 놀러 가던지 시장 구경을 꼭 하는 성격인지라 읍내 장보기팀에 한 번쯤 따라가고 싶었다. 마침 장보기 당번 중 불참자가 생겨 서둘러 자원했다. 출발인원 사전 체크 시 오류가 있어 인원수가 초과되었지만, 탑승자들의 배려로 꼽사리에 성공했다. 오예! 


화창한 날씨 덕분에 센터에서 읍내로 향하는 풍경이 눈부시다. 푸르고 초록 초록한 풍경들에 넋을 놓다가, 귀에 익은 명칭의 간판들에 반가워하다가 보니 어느새 읍내 한가운데. 대량의 다양한 식자재를 한꺼번에 구매하려다 보니 전통시장이 아닌 마트로 왔다. 오랜만에 끌어보는 카트에 처음엔 조금 설렜다. 하지만 드넓은 마트 안 혼란스러운 진열대들 속에서 긴 구매 목록의 상품들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금세 지쳐버렸다. 고난의 카트라이더를 마치고 나니, 인내력 테스트 같은 계산대 정산 순서가 남았다. 내 인생 가장 거대한 식품 산더미, 난생처음 듣는 거액의 결제금액에 입이 턱 벌어진다. 꽃내에서 소 열두 마리를 키우는 듯한 경이로움! 




저녁식사를 조금 서둘러 마친 후 남해 유스타운 앞바다로 산책을 나섰다. 오래된 보호수가 있는 둔촌 마을을 지나 한참 걷다가 비탈진 도로를 오르내리면 갯벌이 드넓은 바다가 보인다. 며칠 전 해양 액티비티 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해 질 녘 찾아오니 한결 차분하고 단정한 바다이다. 서쪽을 등지고 선 산 모퉁이에 가려 해넘이를 보진 못했지만, 보랏빛 향내 어슴푸레 머금은 듯한 노을은 충분히 마음을 설레게 했다. 


돌아오는 길,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은 도로는 더욱 고요하다. 아름다운 것을 본 직후여서인지 내 마음도 조금 아름다워진 기분이다. 매일 이런 풍경을 보고 산다면, 나도 좀 더 순하게 살 수 있을까? 바보 같은 질문임을 알면서도 옆에 있는 이에게 불쑥 건네고픈, 그런 밤이다.    

 

돌아오는 길 묵묵히 불을 밝혀주던 다정한 가로등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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