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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Aug 12. 2021

[어슬렁,남해]08. 마당에 누워 별을 헤아려 봤어

일몰 개고생 백패킹팀 2차 시뮬레이션/ 야외취침

엄마는 보름달이 뜨면 늘 내게 전화를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 객지에 홀로 사는 딸에게, 그 밤이면 늘 어김없이 전화를 했다. “딸, 오늘 달 봤어? 보름달이 무지 예뻐. 얼른 밖에 나가봐.” 

음력 보름이면 매번 어김없이 차고 다시 또 기우는 그 달이 뭐 그리 특별하겠느냐마는, 예순을 넘기고도 소녀같이 들뜬 목소리로 여전히 전화를 거는 엄마가, 참 좋다. 한결같은 그의 낭만이 사랑스럽다. 그래선지 나도 으레 달을 보면 시골의 울 엄마가, 그리운 옛 친구가, 놓쳐버린 인연들이 떠오르곤 한다. 밤하늘은 항시 마음속 누군가를 부른다.     




첫 백패킹이 드디어 이틀 후로 다가왔다. 최종 시뮬레이션으로 오늘은 야외취침에 도전하기로 했다. 등에 짊어지고 다닐 만한 백패킹 장비는 생각보다 너무 비쌌고, 남해에는 대여를 해주는 업체도 없었다. 결국 장비를 마련하지 못한 우리에겐 '근'의 1인용 텐트 한 개가 전부였고, 맨 몸 노숙을 감행해야 할 상황이었다. 막막하면서도 한편으론 더욱 험해질 우리 여정에 모험심이 충만해졌다. 유일한 걱정은 오직 모기떼의 습격과 불면. 몸이야 긴팔 긴바지로 가린다지만 얼굴은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궁여지책으로 얼굴에 그물망을 두를 수 있는 양봉 모자를 주문했다. 벌도 막는다니 모기쯤이야. 이제 막 배송되었다는데, 내일까지 무사히 도착하겠지? 


애초 계획은 '근'이 센터 앞 데크에 텐트를 치고, 나와 '문', '성'은 그 옆에 이불을 깔고 덮고 잠들어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제 하이킹의 여파로 고단했던지 초저녁에 깜박 잠이 들어 버렸다. 자정이 다 되어 깨어난 후 화들짝 놀라 '성'의 방으로 달려갔다. 내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깨우지 않기로 했다고, 그냥 연습이 무산되었다고 했다.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에 '문'과 우리 셋이라도 야외취침을 해보자고 재촉했다. 


먼지 쌓인 창고에서 찾아낸 두꺼운 매트 돗자리를 데크 위에 깔고, 방에서 들고 온 이불을 덮고 누웠다. 예상보다 훨씬 편하고 아늑했다. 이렇게 누워 별을 마주 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 어느 해 가을밤, 아소산 자락에 누워 별똥별을 바라봤던 기억이 와락 달려들었다. 외투 속을 파고들던 시린 밤공기, 옆에 누운 이의 체온이라도 느껴보고자 서로 더 바짝 다가붙던 순간들. 그들은 오늘 밤 어데서 무얼 하고 있을까. 가끔씩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처럼 그리워할까.


낮에는 바쁜 생활이 만들어내는 부지런한 소음에 가려져 들리지 않던 개구리울음과 풀벌레 소리. 인간들의 시간이 잠들자 비로소 자연의 소리가 선명해진다. 그래, 여름밤의 참 맛은 이 시각 이 소리였지. 


사서 고생하겠다고 나선 우리가 신기하고 재밌었던지 몇몇이 구경을 하러 모였다 다시 흩어졌다. 잔나비 노래를 흥얼거리다 옛 노래에 귀 기울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바람 소리, 무언가 스쳐 지나는 느낌에 잠시 잠에서 깼다. '매일 밤 들르는 그 고양이가 또 왔나?' 혹시라도 호기심 강한 녀석이 옆에 벗어둔 안경을 채 갈까 봐, 슬며시 안경을 목에 걸고 다시 또 잠에 빠졌다.


새벽 3시, 견딜 수 없는 추위에 몸서리치다 눈을 떴다. 옆에 누운 이들을 다급히 깨워 철수하며, 우리의 야외취침은 자동 종료되었다. 깔고 자던 돗자리는 현관문 안에 대충 구겨 넣고, 오돌거리는 몸에 이불을 돌돌 말고, 부스스 반쯤 겨우 뜬 눈으로 내 방으로 다 함께 내달렸다. 


사이좋은 애벌레 세 마리처럼 방에 나란히 누웠다. "우와, 방이 천국이었어", "그래도 우리 좀 준비성이 철저한 듯. 뿌듯하다", "응. 대견해"


모레 시작될 우리의 첫 여행, 너무나 설레는걸. 

         

맨몸으로 야영에 맞서려는 우리의 준비된 자세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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