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원팀 당번서는 날/ 여유로운 브런치와 긴 수다
어젯밤 야외취침 연습으로 지쳤는지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그룹여행팀들이 모두 떠나버린 숙소는 고요하고 낯설었다. 여행 나간 팀들을 위한 혹시 모를 긴급지원에 대비하여 한 팀씩 숙소에 남아 '여행 지원팀' 역할을 맡기로 했다. 그리하여 오늘 숙소를 지키는 당번은 우리 '일몰 개고생 백패킹팀' 4명.
그동안 꽃내에서의 식사시간은 매일 명절 대가족 밥상 같았다. 끼니마다 당번 팀이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 대량의 음식을 만들어 상차림 하면, 기다란 테이블에 14명이 모두 모여 한바탕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먹어치우는. 하지만 오늘 분위기는 마치 해외여행지에 아무 일정계획 없이 맞은 휴일 아침 같다. 왠지 나가기는 귀찮고 그냥 현지인처럼 담백히 지어먹고 살아보고 싶은 그런 날.
한껏 게으른 기상 후 느긋하게 브런치를 준비했다. 메뉴는 단호박 수프와 '야메' 아메리칸 브랙퍼스트. 오랜만에 즐기는 정오의 여유가 반갑다. 가까이 마주 앉은 테이블이 단출하고 단란하다.
둘러앉아 얘기 나누다 보니 서로의 고민이 참 닮았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
팔릴만한 것과 만들고픈 것 사이,
익숙한 것과 실험적인 것 사이,
안정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 사이,
그 모든 사이사이에서 부단히 서성이며 고민하는 삶.
구르고 있기에 반들반들 윤이 나고, 재차 부딪히기에 더욱 영롱해지는 삶.
우리 서로, 그 삶들의 목격자이자 응원자가 되었으면.
여행을 떠났던 "예"가 오후에 혼자 택시를 타고 복귀했다. 이름도 붙지 않은 조용한 숲을 향해 떠났던 팀.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눈물 흘리는 어여쁜 팀원들을 위해 사진을 찍다가, 하산하는 도중 발을 접질렸다고 했다. 한눈에도 발등이 꽤 부었다. 눈빛만 마주쳐도 웃는 그녀가, 늘 괜찮다고 말하는 초긍정 그녀가, 조금 아프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운영진을 불러 서둘러 읍내 병원으로 보냈다. 혹처럼 부풀어 오른 자기 발등을 내려다보며, 꼭 알에서 뭔가 깨어날 것 같지 않냐며 농담하던 해사한 '예'. 별 일 아니어야 할 텐데, 어째 마음이 불길하고 어수선하다.
결국 그녀는 골절 진단을 받았다. 붓기가 너무 심해서 한 주 정도 지켜본 후 깁스를 하기로 했단다. 다리에 칭칭 붕대를 감고 목발을 짚은 채 복귀한 그녀는 여전히 씨익 웃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건물을 매일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함, 외부활동 참여가 어려워진 당혹감, 제대로 가료하지 못할 경우 악화될 염려, 무엇보다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칠 것 같다는 미안함과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은 5주간의 일정을 끝까지 함께 하고픈 아쉬움. 뒤섞인 감정과 혼란스러운 선택지 사이, 그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