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부는 버드나무 Aug 17. 2021

[어슬렁,남해]13.훗날 우연히 꺼내보고 애틋했으면

<마파람사진관>프로필 촬영

부산한 아침이었다. 처음으로 다 함께 읍내에 나간 날, 바로 <마파람사진관>에서 프로필 촬영을 하는 날이다. 각자 가장 맘에 드는 옷을 꺼내 입고, 오랜만에 정성껏 단장하고, 서로 조금씩 낯설고 화사해진 얼굴로 모였다.


인생의 주요 관문 앞에 설 때마다 숱하게 요구받아 온 증명사진들, 매번 긴장되고 번거롭고 조금씩은 고독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지켜보는 이, 응원하는 이, 꾸며주는 이들과 함께 하니 놀이처럼 설레고 즐겁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학급 친구들과 단체로 사진관에 몰려가 주민등록용 사진을 찍었던 그날처럼. 어엿한 어른이 된 것 같던 그 순간처럼, 오늘 이 순간도 새로운 내가 되는 시작이었으면.


개인 프로필은 전원의 ‘따로 또 같이’ 콘셉트를 위해 쪽빛 스카프가 공통 소품으로 활용되었다. 목도리로 두르기도 하고, 홀터넥 상의로 변하기도 하고, 리본 머리띠 혹은 두건이 되기도 하고, 어깨에 걸친 숄이 되었다가, 손목에 나부끼는 바람이나 등 뒤에 펼쳐진 푸른 바다가 되기도 했다. 열네 명의 개성을 담은 무궁무진한 창의력, 타인을 멋지게 꾸며주고픈 애정의 손길, 이 모든 과정을 서로에게 남겨주고자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각자의 카메라들, 모두 경이롭고 멋있었다.


열두 명의 살러 멤버들과 두 명의 운영진이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화면 속 나란히 웃는 모습들이 꽤나 다정하고 사이좋다. 부드럽게 짚은 어깨, 살포시 맞잡은 손, 자연스레 기운 몸, 활짝 웃느라 사라진 눈. 지난 2주의 시간이 우리를 이만큼 가깝게 만들었나. 흐뭇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못내 불안하다. 앞으로 남은 4주의 시간이 우리의 관계 역동을 어디로 이끌지 알 순 없지만, 먼 훗날 우연히 꺼내 본 단체사진에서 여전히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참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슬렁,남해]12.인생도 저 표지판처럼 우회했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