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창고프로젝트/카페애매하우스
남해군은 인구 유출로 고심하는 지역이지만, 한 편에선 젊은 예술가와 귀촌자들이 꾸준히 유입되는 신기한 곳이다. 뭐니 뭐니 해도 난개발 되지 않아 무사한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촌맛, 그리고 물리적 거리에서 기인한 적당한 고립감이 가장 큰 매력이겠지만, 아마도 이곳으로 터를 옮겨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정착인구 선배들의 아우라도 한몫하는 것 같다. <돌창고프로젝트>, <마파람사진관>, <아마도책방>, <키토부>, <팜프라>, <해변의카카카> 등등.
그중 1세대로서 왕성하게 지역살이 중인 <돌창고프로젝트> 대표님을 만나기 위해 다 함께 <카페 애매하우스>로 향했다. 그는 방치된 유휴공간이었던 돌창고를 지역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최초의 프로젝트 이후,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남해의 빛, 소리, 보호수, 음식, 기억, 사람, 공간 등 다채로운 지역자원을 소재로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남해각, 노도, 앵강만, 미조항 등 오래된 기억 속 바래고 희미해지는 공간들을 재생하는 작업에 몰두 중이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남해에서 6주간 머물게 된 우리였기에 묻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답도 참 많다. "이런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같은 비즈니스 상담부터, "저는 여기서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혹시 협업할 만한 아티스트가 있을까요?" 같은 네트워크 문의, "귀촌을 고민 중인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 볼 사항은 무엇일까요?",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던데, 실패하는 사유에는 무엇이 많나요?" 같은 시행착오 조언, "남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예요?" 같은 숨은 명소 추천, "남해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남해로 젊은 귀촌자들이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같은 외지인의 호기심까지.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멈추지 않는 질문에 적잖이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진지하게 답변해주는 호의에 감사했다. "서울과 남해의 시간은 다르다. 십 년 정도는 꾸준히 해야 뮐 좀 하는구나 인정받는다. 도시와 시골의 삶이 결코 다를 것이라 생각지 마라. 여기서도 모두 치열하게 열심히 산다. 도시에 있지만 남해에 없는 것을 단순히 이식하려 들지 마라. 그건 도시는 우수하고 시골은 열등하다는 오만한 생각이다.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것, 이곳 만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면 좋겠다. 이웃, 마을과의 관계를 일, 비즈니스처럼 여겨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감수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대표님의 말은 '맞고 나면 좀 아파서 며칠 고생하지만 효과 좋은 백신' 같다. 지난 2주간 남해와의 달콤한 허니문에 흠뻑 빠져 앞만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서 숨 한번 고르라고 차근차근 제대로 살펴보라고 말한다. 무모하고 헛된 낭만에 미혹된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창고라고 해서 막연히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차갑고 휑한 어떤 곳을 상상했는데, 남해 돌창고는 제법 위풍당당하고 근사하다. 큐브형으로 잘라낸 자연석 돌을 탄탄히 쌓아 올려 지은 덕에 점잖고 듬직한 것이, 마치 어느 고을의 성문 같다.
남해대교가 생기기 전 고립된 섬이었던 남해는 콘크리트와 시멘트가 귀했단다. 농경시대 귀한 자산이었던 곡식과 비료를 보관하는 창고이기에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재료로, 최대한 튼튼히 지었다. 네다섯 마을씩 공동으로 사용한 창고였기에, 돌창고가 있는 곳은 과거 그 구역에서 가장 거점 동네였던 셈이다.
당연히 지역별로 건축양식도 조금씩 다른데, 시문 돌창고는 우아한 아치형 입구가 특히 매력적이다. 기술적 어려움으로 여러 번 무너져 실패한 끝에 겨우 완성해냈다는 아치형 입구. 내가 창조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고픈 석공의 집념이었을까, 생명이자 자산이었던 보물을 잘 지켜주십사 비는 농부의 경건함이었을까, 우리 동네 자부심과 긍지를 드높이고픈 주민들의 애정이었을까.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사소한 것에도 아름다움을 담으려 애쓴 옛사람들의 미학적 고집과 성실한 마음, 오늘을 마주한 내게도 그 애틋함이 닿았는지 돌벽이 새삼 보드랍고 따뜻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