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부는 버드나무 Aug 24. 2021

[어슬렁,남해]18. 입구만 찍고 되돌아 나가도 괜찮아

남해 바래길7번화전별곡길/단풍나무길/바람흔적미술관/남해편백자연휴양림

오늘도 또 걷는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꽃내 센터와 연결되는 바래길 7번 코스 화전별곡길을 따라나섰다. 내가 사랑하는 강둑길을 소풍 가는 마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동천교에 다다른다. 먼 산에서 흘러나온 시원한 강줄기를 잠시 감상한 후 반가운 단골가게 CU를 지나면 곧 꽃내 중심가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백패킹팀 모두가 처음 걷는 길. 


봉화교를 건너 봉화마을 입구에 이르니 아름드리 보호수가 위엄 있게 서 있다. 넓게 드리운 그늘 밑 평상에 누워 더운 땀을 식힌다. 백지 조각이 드문드문 끼워진 금줄을 허리에 느슨히 두른 340세 느티나무. 옆에는 동제를 지낸 후 제삿밥을 묻어두는 돌무더기 밥무덤과 원효대사가 보광산(지금의 금산)에 세웠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후 분실되었다는 삼층석탑의 모형도 있다. 


음력 시월초 정일에 동제를 지낼 때는 제관으로 선정된 주민이 하루 전 솔태산 자락 냇가에서 냉수 목욕을 하고 우선 산신에게 고하는 산제를 올린다. 동제 날엔 이 느티나무 앞에서 마을 성씨의 숫자인 11개의 상을 차려 본동제를 모신 후, 끝나면 주민 모두 둘러앉아 마을 대소사를 논하고 음식을 함께 나누며 어우러진다. 


지금도 눈앞의 밥무덤과 석탑에 금줄과 흰 삼베 띠가 둘러진 걸 보니, 여전히 마을의 신성한 수호자로서 숭앙받고 있나 보다. 오랜 시간 대물림된 믿음과 공경, 그 굳건한 마음이 무엇보다도 고결하고 신성하게 다가온다. 지나는 나그네에게 대가 없이 시원한 바람을 내준 너그러운 당산나무 어르신께 손 모아 감사인사를 드린 후 다시 길을 나선다.     


봉화마을 보호수인 340세 느티나무. 옆에는 금줄 두른 밥무덤과 삼베 두른 삼층석탑이 호위하고 있다. ©류


끝없는 초록 들판을 일렬종대 근위병처럼 에워싸 지키는 깊은 산을 감탄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단풍나무 가로수가 아름다운 내산마을로 들어선다. 금산 자락 바로 아래 깊은 골 안쪽에 위치하여 內山이라 불리던 마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평탄하게 이어진 도로, 갓길에 나란히 줄지어 선 단풍나무가 안온하다. 벌써 성미 급한 나무 몇몇은 작은 손바닥 잎을 붉히며 한참 남은 먼 가을을 마중 나와 있다. 매년 가을 아름답게 물든 이곳 단풍나무길이 전국 상추객을 유혹한다더니 과히 그럴만하다. 촘촘히 길게 이어지는 나무 그늘, 이렇게만 걸을 수 있다면 영원히 전진할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이서 오래 바라본 단풍나무는 뜻밖에도 조금 낯설다. 잎은 갓난아이 손처럼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지만, 기둥과 가지는 깡마른 발레리나의 손처럼 혹은 여든 살 노인의 주름진 손처럼 바짝 하다. 매년 단풍철이 오면 꼬박꼬박 그 붉은빛을 눈요기하면서도, 사실 이파리 외에는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었구나. 여유로운 마음이 선물해 준 눈일까, 자연이 눈에 익을 때 비로소 열리는 눈일까, 가려진 세상을 투시하는 제3의 눈이 새롭게 뜨인 기분이다.  


어제 앵강다숲길 도보 일정을 마치고 간만의 술을 마신 탓인지 어느 순간 나도 몰래 숨이 거칠어졌다. 앞서거니 걷던 '성'이 “애들아, 류 힘들어 보여!”라고 외친다. 선두에 있던 '근'이 뒤돌아서며 잠시 쉬어가자고 제안했다. 괜찮다고 사양하니 다들 자기가 쉬고 싶어서 그런다며, 덕분에 쉬어가니 좋다며 걸음을 멈춘다. 왈칵 고마움이 밀려든다. 느리다고 답답해하지 않고, 힘이 부친다고 귀찮아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대로 앞서 걷다가도 가끔씩 뒤돌아보며 기다려주는 그들의 등이 오늘도 참 든든하고 고맙다. 도로 갓길에 둥글게 둘러앉아 챙겨 온 방울토마토와 시리얼을 우적우적 먹었다. 서로의 젖은 등을 가리키며 놀리기도 하고, 벌겋게 익은 얼굴을 보며 웃다 보면 다시 일어서 출발할 힘이 난다.  


누구도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는 커다랗고 빨간 <세모점빵>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보라색 바람개비들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바람흔적미술관>에 다다른다. 출입구에서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중년 남성 두 분이 살갑게 말을 건넨다. 도보여행 중이라는 그들은, LA에서 8개월 고성에서 4개월씩 번갈아가며 생활 중이라는 외향적인 사업가 아저씨와 며칠 전 경찰직을 정년퇴임했다는 과묵한 남해 토박이 아저씨였다. 오랜 친구라는 두 분은 꽃내 지역을 지날 때 우리가 걷는 걸 봤었다며 반가워했다. 길 위에서는 우연한 마주침도 소소한 행복이 된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라 서로 덕담을 나누며 헤어졌다. 


남해의 매력으로 흔히들 바람을 꼽는다. 남해에선 어느 때, 어디에서건 바람이 늘 곁에 있기 때문이다. 하여 '바람', '흔적'이라는 명칭을 들었을 때 왠지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바람을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었을거라 기대했는데, 신진 작가나 지역 작가들 작품을 기간별로 전시하는 다소 평범한 곳이었다. 입장료가 없는 무인 미술관인 탓에 관리도 살짝 소홀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예술 문화를 향유하고픈 이들에게 대가 없이 발걸음을 허락해 준 너른 마음이 귀하고, 찾아오는 길에 만났던 풍경이 충분히 아름다웠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나선다.  


고요한 내산저수지를 지나 <편백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길목, 아까 마주친 아저씨 두 분과 다시 조우했다. 낯선 길에서 우연히 동창을 만난 것처럼, 한적한 해외여행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다음 목적지가 서로 같음을 확인한 후 아예 나란히 함께 걸었다. 아저씨 한 분이 길 옆의 삼나무를 설명하시다가 88년도 대학생 신분으로 일본 여행 갔던 기억을 꺼내셨다. 아소산 가는 길 삼나무 숲의 장관에 넋을 잃던 순간, 산 정상에서 맡은 아찔한 유황 냄새, 도쿄에서 시모노세키까지 신칸센을 타며 느꼈던 놀라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들렀던 기억, 부모님을 졸라 당시 꽤나 거금이었던 30만 원을 용돈으로 들고 갔으나 너무 높은 엔화 환율에 겁먹어 막상 아이스크림도 제대로 못 사 먹은 아쉬움... 30여 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 9박 10일 첫 여행의 추억은 여전히 너무나 생생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기억이 된다는 건 어쩜 무한한 영생의 권한을 부여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편백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하마터면 입장을 못할 뻔했다.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며 도착했더니,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4인 이하 입장’ 조건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서로 손사래 하며 황급히 관계를 부인했다. “저희 모르는 사이예요. 이 앞에서 만났어요”. 무사히 입장을 허락받자 아저씨들이 입장료를 한꺼번에 내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매점으로 달려가 생수 두 병을 사 건네 드렸다. 더하고 빼면 결국 그대로인 것들. 그래도 그 사소한 오고 감 속에 정이 쌓이고, 추억이 영글고, 아직 ‘살맛 나는 세상’이란 위안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종일 걸어서 고단했던 우리는 매점 뒤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까먹었다. 크고 건장한 편백나무들이 드리워준 그늘 밑에서 땀을 식히며 각자 품은 고민과 꿈을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거린다. 슬슬 배도 출출해진다. “편백숲 산책하고 싶은 사람?” 서로 눈치를 보다 금세 씩 웃는다. 아쉬운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럼 우리 그냥 <뚱이네> 고기 먹으러 갈까?” 누군가 꺼낸 한마디에 모두 벌떡 일어나며 큰소리로 외친다. “좋아!”


충분히 다 둘러보지 못해도, 입구만 찍고 되돌아 나가도, 가끔씩 옆길로 새 버려도 괜찮다. 우리의 목표는 길 그 자체가 아니니까, 정확한 코스대로 완주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길 위에서 새로운 나와 너를 발견하고, 여정 속에서의 숱한 우연과 만남을 소중히 아로새기기 위함이니까.   


도로 옆을 일렬로 걷다 보면 뜻하지 않는 교통정체가 생긴다. 허나 괜찮다. 네가 물 한 모금 마시면, 우린 숨 한번 돌리고 사진 한 컷 더 찍으면 되니까 ©류





매거진의 이전글 [어슬렁,남해]17.유물 같은 바람이 풍요한 남해에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