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리방조어부림
이제 꼼짝없이 장마구나 싶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하늘이 말갛게 갰다. 밤새 묵은 때를 말끔히 씻은 세상은 더욱 선명하다. 장장 일주일 간의 비 예보 중 오직 오늘만 '맑음'임을 확인하자, 도저히 방에 머무를 수가 없다. 서둘러 밥을 욱여넣고 홀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도보 한 시간 거리의 <물건리방조어부림>. 우연히 지도에서 그곳 지명 '물건리'를 본 순간, 운명처럼 내가 그곳에 가리라 예감했다. 내 인생 가장 뜨거운 여름 중 하나였던, 강원도 홍천군 물걸리 마을 농활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십수 년 간 잊고 지내던 그 동네의 이름을 다시금 불러보니, 소멸한 줄 알았던 빛바랜 기억들이 일시에 되살아나 와락 덮쳤다.
강원도 물걸리. 통통한 우렁이가 논마다 그득하던 곳, 뒤뚱뒤뚱 오리가 벼 사이를 활보하던 곳. 이제는 이름조차 희미해진-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나버린-선비 같이 올곧은 농부가 살던 곳. 그분의 부고를 한참 뒤 전해 듣고 찾아가, 애도인지 설움인지 모를 울음을 바닥까지 토해내곤 술로 정신을 잃었던 그곳. 그의 낯선 부재가 두려웠는지, 취한 모습을 뵌 꼴이 부끄러웠는지, 아니 그저 까닭 없는 죄책감이 돋았는지 차마 다시는 찾아가지 못한 그곳.
“나처럼 그냥 이 마을로 시집와”라던 운동권 출신 여농회 언니의 농담이 뭉게구름처럼 걸려있던, 동네 노총각으로 놀림받다 뒤늦게 필리핀 여성과 결혼하고선 웃는 얼굴로 멋쩍어하던 늦깎이 새신랑이 살던, 한 철 정성껏 키운 오이가 한 박스에 이천 원이라 포장 값밖에 안 나왔다고 푸념하던 귀촌 부부가 살던, 정숙한 일본인 아내가 새참으로 막걸리와 올챙이국수를 내주던 과묵한 농부가 살던, 값이 폭락한 호박 밭을 갈아엎으며 내내 말이 없던 늙은 농부가 있던, 그곳.
이제는 모두 날아가 버린 이름들이지만, 그들이 내 마음에 디뎌둔 발자국은 화석처럼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시 남해 물건리. 꽃내 중심가에서부터 시작되는 완만한 경사로를 30분 정도 돌고 돌아 오르면 드디어 언덕 위에 다다른다. 한숨 돌린 후 내리막길에 접어들자면 저 멀리 시야 가득 너른 바다가 눈에 담긴다. 간밤에 내린 비로 구름 연기가 가득한 탓에 수평선 너머 바다와 하늘은 한데 서로 뒤엉켜있다. 맨 왼편 <엘림마리나리조트> 앞 수상레저 선착장을 기점으로 고개를 차츰 우측으로 돌리면, 마주 보고 선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한 쌍, 물 위에 뜬 과묵한 바지선 한 척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표지판을 따라 발을 옮기니 드디어 오래된 비밀정원 같은 <물건리방조어부림>이 시작된다.
17세기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을 버텨왔다는 숲은 자연림 마냥 수종이 다양하고, 서로 가지를 뻗다가 아치형으로 얽혀버린 나무들 덕분에 마치 동굴 속처럼 아늑하다. 하늘을 가린 울창한 나무 천정 덕분에 한낮에도 공기가 청량하다. 숲 가운데 깔린 데크길을 천천히 따라 걷다가 무심코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곳엔 항상 물건항 바다가 있다. 초록 잎 사이로 비치는 푸른 바다에 눈이 시원하고, 촉촉한 나무 냄새, 물큰한 바다 냄새에 코가 신난다.
이백여 년 전 일부 경솔한 마을 사람들이 숲의 나무를 땔감으로 베어 썼다가 큰 풍해를 입은 후, 방풍어부림의 나무는 절대 건들지 않기로 온 주민들이 맹세했단다. 아직도 매년 음력 10월이면 이 숲에서 가장 큰 이팝나무 앞에 제사를 지낸다는 마을. 오래된 경외와 세대를 이어 대물림된 약속이 여전히 굳건한 이곳에서, 문득 버티는 삶의 힘과 무게를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