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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Sep 06. 2021

[어슬렁,남해]28.고단하고 설운 삶의 풍경도 빛나더라

군내버스 타고 읍내 터미널로/ 가천 다랭이마을

꽃내 동네 명물 <카페 유자>는 오늘도 성업 중, 주차장이 만차이다. 고작 4주 더 일찍 머물렀다고, 발길 급한 여행객들에게 맘 속으로 훈수를 둬본다. ‘사진 많이들 찍고, 잘 놀다 가시게. 난 이 좋은 동네에서 지금 살고 있다네’. 땡볕 내리쬐는 맞은편 버스정류장엔 아무도 없다. 뒤쪽 논에는 백로들도 한낮 더위를 피해 산 그림자 속으로 날아들어가 버리고, 나는 줄줄 흐르는 팥죽 땀을 닦아내며 30분 후 도착할 버스를 마중한다. 


나는 정류장의 버스를, 승차홈의 열차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도착하겠다고 약속된, 굳건한 신뢰로 버티는 기다림, 그리고 이 길이 나를 싣고 가 기어코 재회시킬 누군가를 향한 설렘, 조금 부지런을 떨고서 얻게 된 작은 공백이 주는 뿌듯함, 모든 준비가 완료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느긋한 여유. 어쩌다 한 줄기 바람이라도 이마를 스쳐준다면 이내 행복해지는 단순하고 본능적인 기쁨도 있다. 갈대처럼 혹은 버들처럼 낭창낭창 바람에 제 몸을 전부 내어 맡기는 건너편 언덕의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한 여름 정오의 참맛을 실컷 맛본다.


버스가 예상보다 늦어지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벽에 붙은 남흥여객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내 위치를 말씀드리니 곧 버스가 도착한다고 안심시켜 주신다. 이내 다다른 버스에 올라타니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친 것 마냥 안도한다. 익숙한 풍경도 버스 차창 밖으로 내다보면 한층 전원적인 분위기로 비친다. 덜컹대는 군내버스의 아우라 덕분인지도 모른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하차하고, 종점인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엔 나만 혼자 남았다. 기사님께서 갑자기 말을 건넨다. “아가씨가 회사에 전화했어요?” 혹시라도 기사님께 폐를 끼쳤나 싶어 잔뜩 웅크린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자, “아가씨가 기다린다고 꼭 태워오라고 전화 왔더라”며 웃으셨다. 호쾌한 대답에 내 마음도 활짝 기지개를 켠다. “기억하고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밝게 인사하고 내리며, 또 한 번 남해에 반한다.         


시골길 위의 버스정류장은 때로 이정표이자, 쉼터이자, 그림 같은 풍경이 되어준다(사진출처=남해군 공식 블로그 '남해랑 썸타자')


서울서 내려온 절친을 마중 나가려던 계획은 버스시간 계산 착오로 실패했다. 도리어 그가 터미널에서 30분간 나를 기다렸다. 괘씸하게도 가해자는 늘 쿨한 법이다. 미안한 내색은 잠시 뿐, 곧 반가움에 수다 폭격을 날린다. 뻔뻔한 나를 보며 허탈해하는 표정이 재밌어 더 놀리고 싶어 진다. 터미널 근처 <남해 밀냉면>에서 수제 갈비만두와 냉면을 한 그릇 씩 비우고, 첫 목적지인 <가천 다랭이마을>로 향한다. 도보여행 때 지났던 길들을 자동차로 달리니 새록새록한 기억에 더욱 반갑다. 구불거리는 해안선을 따라 달릴 때면, 왼편의 산과 오른편의 바다를 번갈아 둘러보느라 지루할 틈이 없다. 제주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느낌도 나고, 일본 야쿠시마의 차창 밖 풍경들도 떠오른다. 


십오 년 만에 다시 찾은 다랭이마을은 그간의 인기를 증명하듯 꽤나 상업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예전엔 산등성이 한 면이 모두 다랭이 논이었고, 초록색 모가 살랑거리는 논두렁에 누워 하늘과 바다를 번갈아보노라면 참 황홀했는데... 어느새 논이 있던 자리엔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고, 동네 주민 모두가 농가민박이나 가게를 하나씩 운영하다 보니 예전처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덜했다. 그래도 간신히 보존된 구간은 여전히 눈길을 사로잡고, 초록과 파랑이 어우러진 싱그러운 정취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랭이 논은 해안선 근처의 험준한 산비탈을 개간하여 농지로 바꾼 인고의 흔적이다. 가파른 산을 계단식으로 층층이 깎아 돌로 얕은 벽을 세우고 테두리를 만들어 물을 채웠던 논. 농사가 목숨줄이고 내 땅 한 마지기 갖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던 그 시절, 한 뼘이라도 편평한 땅뙈기가 나오면 귀이 여겼단다.


어느 날 농부가 일을 마치고 자기 논을 세어보니 한 개가 모자라 한참 찾았는데, 글쎄 벗어 둔 삿갓 아래에 그 한 개가 숨어있더라는 <삿갓배미 이야기>는 무심코 웃다가도 이내 마음이 시큰해진다. 끈질기고 모진 가난 앞에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그 시절 생의 자취. 


하지만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는, 그 고단하고 서러운 삶의 풍경들이 이색적이고 창의적인 풍경들로 재조명되곤 한다. 서울의 해방촌, 부산의 감천 문화마을, 통영의 동피랑이 관광객의 핫 스폿(Hot spot)이 된 아이러니처럼. 우리가 그 흔적들에 뒤늦게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버텨낸 삶에 대한 무의식적 존경이 아닐까. 끝내 소멸하지 않고 존재해주었음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아닐까.      


가파르고 구비진 산비탈을 논으로 일궈낸 인고의 흔적, 다랭이. 가난에 맞선 억척스런 삶의 풍경들이 시간이 흘러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사진출처=남해군 공식 블로그 '남해랑 썸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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