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소모임 <글썽글썽>첫날/그 해 여름 키쿠치에서의 추억
여태 남아 있는지 몰랐던, 이미 존재조차 망각해버렸던, 오랫동안 웅크린 채 잠들어 있던 기억. 그런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나 고개를 쳐들고 와락 달려들 때가 있다. 어제 잠가 둔 캐리어를 오늘 막 여행지에 도착해 다시 푼 것처럼, 너무나 생생한 장면들로.
남해 꽃내에서 함께 지내는 살러* 친구들과 며칠 전 글쓰기 소모임 <글썽글썽>을 만들었다. 첫 번째 글감으로 누군가 ‘춤’이라는 단어를 제안했을 때, 그렇게 그가 되살아났다. 20대 초반 인생의 모든 것이 신비롭던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 자유와 낭만을 동경해 온 내게 가장 빛나 보이던 사람, 생이 제시한 숱한 선택의 기로 중 가장 되돌리고픈 순간을 만든 사람, 난 결코 스스로 쳐 둔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리라 깨닫게 한 사람. 어쩌면 이후의 삶은 숱한 타인들에게서 그의 모습을 한 조각씩 발견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여기던 때도 있었다.
허나 이젠 후회도, 미련도, 그리움도, 시간에 마모되어 반들거리는 한 알의 조약돌이 되었다. 손바닥에 올려두고 조심히 쥐었다 펴면 따스한 온기가 남던 몽돌처럼, 작지만 단단한 감촉으로 내게 남은 기억.
내 청춘의 한 장을 가득 채우고 가장 긴 여름이 되어버린, 그 해 키쿠치에서의 날들. 오늘 밤 그곳으로 나를 훌쩍 데려다준 <글썽글썽>** 그대들에게 작은 감사를.
* 살러(Saler): 남해군 지원으로 <6주 살러, 남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가자들을 지칭함
** 글쓰기 소모임 <글썽글썽>에서 공유한 글은 아래 연결된 페이지에 담겨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