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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Sep 15. 2021

[어슬렁,남해]35.인생이란 바다에도 구명조끼가 있다면

남해 유스타운 앞바다/ 신나는 해양 엑티비티

미조항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인 '디디'와 '아아'가 꽃내 센터에 방문했다. '찬'의 프로젝트에 초대되어 휴일을 함께 보내기 위함이었다. 서로 동네 친구였다는 그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에 온지는 3년째, 제법 한국말이 유창했다. 질문을 하면 늘 먼저 대답하는 적극적인 '디디'는 한국에서 부친 돈으로 벌써 고향에 집을 짓고 있고 내년엔 여자친구와 결혼할 계획이란다. 덩치가 작은 '아아'는 수줍어서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다. 스물 두셋, 직장 경력 없이 한국에서 첫 사회생활을 바로 시작하게 된 그들의 적응기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말은 안통하고, 음식은 설고, 가족은 멀리 있고...늦깍이 사회인었던 나도 처음 적응할 때 꽤나 힘들었기에 마음이 애잔해졌다. 희망을 품고 낯선 곳으로 향한 용감한 이들에게 반드시 행복이 기다리고 있기를 빌었다.


다 함께 해양 액티비티를 하러 남해 유스타운 앞바다로 향했다. 살러* 첫 주 때는 이곳의 모든 픙경이 낯설었는데, 이젠 우리 동네 놀이터처럼 익숙하다. 물살을 거침없이 가르며 꽥꽥 소리 지르는 것이 제맛인 바나나보트, 노를 지지대 삼아 사뿐히 일어나 파도가 미는 대로 부유하는 패들보트, 먼 바다로 향하는 항해자가 된 듯한 카약. 


오늘 내 최애는 카약이었다. 수평선을 향해 천천히 거슬러 오르다보면 긴 항해를 막 시작하는 마도로스가 되기도 하고, 미지의 땅을 찾아가는 탐험가가 되기도 한다. 가느다란 보트에 몸을 싣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노래를 부르면 달콤하고 안락한 고독감이 가득해진다. 이 순간의 기쁨과 충만함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두 눈을 감고 천천히 마음에 풍경을 새긴다. 힘든 순간 때때로 꺼내어 볼 나만의 명상카드가 오늘 또 한 장 생겼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나 오랫동안 물을 무서워했다. 어릴적 해수욕장에서 물에 빠진 후 공포심이 생겼고, 수십년간 물 속에 고개를 담그지 못할 정도였다. 잠수를 못하니 수영 배울 엄두도 못 내다가,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빠져 죽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동네 문화센터에 등록한 것도 고작 2년 전이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몇 번 못 나가고 센터가 잠정 폐쇄되었지만. 그런데 여기 남해에선 온갖 해양레포츠를 다 즐기고 있다. 바로 구명조끼 덕분이다. 물에 빠져도 안전하다는 믿음은 모든 도전을 격려한다. 바나나보트에서 떨어질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스릴과 질주감을 만끽하고, 패들보트에서 고꾸라지더라도 겁먹지 않고 다시 기어오르고, 망망대해 위 작은 카약에 몸을 의탁한 채 두려움 없이 전진한다. 


우리가 항해하는 인생이란 바다에서도 모두에게 구명조끼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낙오되면 익사한다는 공포 대신, 안전하고 든든한 보호장비가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실패해도 괜찮으니 그까짓거 한 번 도전해보자고, 몇 번 넘어지다보면 결국엔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고, 아직 길이 나지 않았다면 내가 가는 방향이 곧 길이 된다고, 더 당차고 용기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신나서 이것 저것 바삐 갈아 타며 놀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간다.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 저녁밥 먹을 때가 되면 하나 둘씩 귀가하던 어린이들처럼, 이젠 집에 되돌아갈 시간. 마침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몸 위에 보슬비 몇 방울 보태는 것 쯤이야. 선비처럼 의연한 마음, 서두르지 않는 사뿐한 발걸음. 콧노래가 아니 나올 수 없다.


오늘 하루도 잠시 근심 없는 어린아이의 마음, 겁 없는 모험가의 마음이 되어 보았다. 영감(靈感)은 주지 않고 욕망(欲望)만 심어주던 도시 생활. 팍팍한 그곳에서 오랫동안 구겨진 내 마음을, 이곳 남해에서 매일매일 조심스레 펴는 중!

   

내 앞에 놓인 '인생'이라는 바다도 이렇게 담대하고 용감하게 노를 저어 나가고 싶다. ©금


살러(Saler): 남해군 지원으로 <6주 살러, 남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가자들을 지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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