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자들의 늠름한 기억이 담긴 파독전시관
깔끔하게 넘긴 2:8 가르마, 포마드 기름을 듬뿍 발라 정돈한 머리칼, 두터운 외투를 껴입고 책상 위 시험지에 집중한 모습. 독일마을에 위치한 <파독전시관>에서 본 1966년 ‘파독 광부 신청자 필기시험’ 현장 사진이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문광고, 그리고 거의 100:1의 치열한 경쟁률로 치러진 시험이었다. 말도, 음식도, 문화도 모두 낯선 이국 땅 1,200미터 지하 갱도에서 더운 숨을 내뱉으며 고된 노동을 해야 할 일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률 30%에 달하던 가난한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독일로 떠나려던 이들의 절실한 마음이 사진에 담긴 듯했다.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말끔하게 단장한 얼굴로 시험장에 온 그들의 모습이 왠지 경건해서 감동스러웠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 공항에 막 도착한 이들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긴 비행시간에 많이 지쳤을 텐데, 새로 지은 고운 한복을 입고 환히 웃으며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고향의 엄마가 너무 보고파 울다가도, 다시 그 엄마를 생각하며 힘을 냈다는 그들, 매월 봉급의 80%를 꼬박꼬박 고향으로 송금했다는 그들. 군 복무 중인 동생이 보내온 편지, 고향의 아버님께 부친 엽서, 한국에 두고 온 남자 친구 앞으로 띄운 엽서들에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염려, 그리고 변함없는 안녕을 기원하는 따스함이 여전히 남아있다.
산다는 건, 어쩌면 앞선 이들의 희생을 디딤돌 삼아 끊임없이 전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우리가 지금 달리는 고속도로와 대교가 되고, 그들의 청춘을 모아 이룩한 이 마을에서 다시 내 여름의 추억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전시 관람을 마친 후 나오니 독일마을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 그동안에는 맛있는 독일 맥주와 수제 소시지를 맛볼 수 있는 곳, 남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동네, 전망 좋은 곳에 터 잡은 부자 마을, 다소 상업적이지만 이국적 분위기가 꽤나 매력적인 관광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이젠 팻말에 쓰인 이름표에도 그 뒤에 품은 사연이 궁금해지고, 정성껏 단장한 집 하나하나가 정겹게 느껴진다. 오랜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온 그들에게, 각자의 진짜 고향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닿기를 바랐던 마음들. 그 소망이 담긴 물건항 바다가 오늘따라 더욱 빛나게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