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를 읽고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우연히 가게 사장님 책상에 꽂힌 책을 집어든 적이 있다. 유독 손님이 없는 지루한 오후였던지라 젊은 사장님은 책상 앞에 앉아 게임을 시작했고, 나는 그 위에 꽂힌 유일한 책을 빼든 참이었다. 책 제목은 틱낫한 스님의 <화(Anger)>. 20대 초반, 세상 모든 게 마냥 신나고 즐겁던 시절인지라 썩 제목이 와닿진 않았으나,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저 ‘우리 사장님, 평소에 화가 많나 보네’ 싶어 슬며시 웃었을 뿐이다. 하지만 인생의 깨달음이란 무릇 우연찮게 찾아오는 법. 심드렁히 넘겨보던 책 속에서 평생 마음에 박힐 한 줄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화가 난다면 왜 화가 나는지, 무엇이 화나게 하는지 찬찬히 들여다보라”.
화(火)라는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 그 불길에 휩싸이지 말고, 무엇이 내 마음속 불씨를 댕긴 걸까, 나를 이토록 불편하게 만든 분노 스위치는 무엇일까 성찰해 보던 그 말.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사고관의 바깥 벽 한 겹이 ‘탁’ 깨졌다.
그러고 보니 놀랍게도 내 마음속에 화가 일던 순간들은 매번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곤 했다.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에 특히 무례함을 느끼는지, 어떤 사회적 이슈에 유독 분노하는지, 왜 저 사람이 그토록 싫고 미운지, 왜 저런 주장이 언짢고 불쾌한지... 찬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무심코 본능이나 직관으로 치부했던 것들이 설명가능한 이유를 지닌 적도 있고, 온전한 내 생각(입장)이라 여겼던 것들이 그저 타인(혹은 사회)의 생각을 답습한 것일 때도 많았다.
그래서였다. 이 책의 제목이 그토록 유혹적으로 다가온 것은.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라니!
막연히 불편하게 느꼈던 질문들이 왜 불편한지 분석적으로 성찰하거나, 사회적으로 흔히 주고받는 질문이지만 대상에 따라 불편할 수 있는 것들을 민감하게 탐색하리라 기대되었다. 일단 목차를 쭉 훑어봤더니 흥미로운 질문들도 더러 있었다. “혼자의 시대, 굳이 친구가 필요할까?”, “일 안 하고 돈만 받는 사람은 비겁한가?”, “내가 받은 상처를 똑같이 되돌려주는 게 나쁜 일일까?”, “인간다운 죽음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 기계를 학대하면 안 되는가?”. 일상 속에서, 혹은 문학이나 영화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한번씩은 곱씹어봤음직한 주제이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예시답안’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때론 갑작스럽고 성급하게 결론짓기도 하고, 때론 무책임한 열린 결말로 끝나버리기도 하며, 때론 너무 교과서적이라서 고루하고 허탈했다. 아마도 너무나 많은 질문을 한 권에 담아내려다 보니 지면 상의 한계도 있었을 테고,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의 특성상 청소년 독자를 위해 난이도를 다소 평이하게 조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논쟁적인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여 치열하게 사유해 보길 원했던 독자라면 그 깊이가 못내 아쉬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야말로 새로움과 발전의 어머니”라던 저자의 말에는 완벽히 공감할 수밖에 없다. 문화적 동질성, 관계적 동질성이 점차 과잉되는 요즘 시대의 우리는 각자 ‘우물 속 개구리’가 되어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을 마주할 기회가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저자가 던진 질문 중 어느 하나라도 당신의 ‘매끄러운’ 일상 속 작은 ‘요철’이 되었다면, 그래서 잠시 발길에 치여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당연한 상식으로 여겼던 것을 한번쯤 의심해보게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쓸모를 했다.
자, 이제 그 답변에 도달하기 위한 사유는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