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헤리엇의 <이 세상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을 읽
광고의 주목률을 높이는 ‘3B의 원칙’이 있다. Baby(아기), Beast(동물), Beauty(미녀).
아마도 우리에겐 작고 아름다운 것, 나와 다른 종에 대한 자연스러운 끌림이 있나 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은 웬만해선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다. 크고 작은, 익숙하고도 낯선, 아름다운 동물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니까.
심지어 장르도 하나로 규정하기 아쉽다. 다채로운 캐릭터를 골고루 배치하여 그중 한 명은 반드시 ‘당신의 원픽’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전략형 아이돌 그룹’처럼, 이 책은 분명 당신이 매력적으로 느낄만한 요소를 최소 한 가지는 담고 있을 테니까.
<이 세상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은 1930년대 영국 요크셔 지방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제임스 해리엇이라는 수의사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목가적 분위기 속에서 농장(목장)을 운영하는 다양한 주민들이 서로 지지고 볶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전원일기 연속극 형태를 띠지만, 갓 학위를 취득한 애송이 수의사가 첫 직장에서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가는 성장 드라마, 고통받는 환자들을 성심껏 치료하는 의사와 각 에피소드 출연진의 사연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의학 드리마, 스켈데일 하우스(병원 저택)를 무대로 펼쳐지는 개성 강한 동거인들의 우당탕탕 일상을 보여주는 시트콤, 짝사랑에 전전긍긍하다가 오해와 실수를 딛고 결국 결혼에 성공하는 한 편의 러브 스토리로 변모한다.
시대적 배경이 주는 차이도 제법 흥미롭다. 과학적 치료법보다는 미신에 의존하는 농민들, 한껏 과장된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의심스러운 ‘만능특효약’, 술을 진탕 마시고 비포장 도로를 달려도 개의치 않던 음주운전 문화, 바지 입는 여성에 대한 놀라운 시선, 아내의 미덕이 “훌륭한 일꾼”이었던 그 옛날의 풍경들은 당연하게 여겨온 ‘진보한 현재’의 가치들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백여 년 전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이 책의 재미이다. 어디든 나서서 한 마디씩 거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참견쟁이, 누가 뭐래도 자기만의 확고한 믿음에 사로잡힌 고집불통 ‘나도 전문가’, 남들 앞에선 큰소리치지만 실상 겁이 많은 허풍쟁이, 치료비마저도 흥정해 깎으려 드는 구두쇠, 체구도 작고 과묵해서 주목받지 않지만 알고 보면 가장 진국인 사람 등 온갖 인간 군상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흡인력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과 동물이 맺는 여러 관계들을 통해 경험하는 뭉클한 감동이다. 이미 은퇴한 말을 20년 가까이 돌봐주는 고독한 농장주의 의리, 평생 침대에 누워 거동을 못했던 독신 노인과 그녀의 유일한 벗이 되어준 개의 우정, 고통밖에 남지 않은 말기암 반려견을 위해 결국 안락사를 선택한 노인의 쓸쓸한 배려, 마당 한구석에 키우던 돼지를 잡아야 할 때면 사흘 동안 흐느껴 울던 트럭운전사의 번민, 심지어 시골마을 가축 경진대회 출품자들의 맹렬한 떼쓰기 뒤에도 ‘내 동물’에 대한 긍지와 애정, 인정욕구가 숨어 있다.
흔히들 인생에 대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한다. 하지만 오늘만은 이 말에 반기를 들고 싶다. 가까이 보면 사실 모든 삶은 다채롭고 간간한 한 편의 드라마라고, 누구나 자기 서사 안에서는 온전한 주인공이며, 찬찬히 들여다보면 흥미롭지 않은 삶은 하나도 없다고.
수의사의 일상이 이토록 매력적이리라 누가 감히 상상했겠는가. 비로소 50세가 되어서야 본인의 이야기를 글로 풀기 시작했다는 저자 해리엇. 그가 초대해 준 낯선 세계에 경이로움을 표하며 내 마음에도 막연한 포부를 심어 보는 밤이다. 그래, 언젠가는 ‘나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