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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렇구나 Jul 23. 2020

다 큰 자식과 싸우지 않는 법

내가 바뀌면 다 바뀐다


자려고 누웠는데, 12시쯤 퇴근한 아들이 방문을 밀더니 웬일로 "엄마", 부른다. 

엄마라니. 언제까지나 나는 쭉 '하숙집 아줌마' 하고 싶은데.

평소와 딴판인 목소리와 어딘지 다른 분위기에 아들에게 비상사태라도 발생했나 싶어진다. 불안하다.


노트북 잠금 번호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글을 놓아버린 지 2년. 그러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뭐라도 끼적이게 되었다. 쓸 수 없었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게 된 행운보다 나를 바라보는 아들 녀석 눈빛이 순해진 게 더 반가웠다. 밤마다 안 풀리는 글로 낑낑 대는 늙은 엄마가 안 됐던 모양이었다.


사정이 그렇더라도 ,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다정한 목소리에 겁부터 났다.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자, 몸통은 밖에 두고 까만 머리통만 빠꼼히 들이민 채 아들이 이런다.

"엄마, 나도 인제부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그런 책들 읽을래."


오 마이 갓. 하나님, 부처님, 신령님, 감사합니다. 큰 소리로 진심 할렐루야를 외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래?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어? 오늘 보내준 '신사임당' 유튜브 봤던 거야?" 의뭉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건 좀 보다 말았고…, 그냥 왠지 요새 그런 생각이 자꾸 드네."


아들은 1년 차 월급쟁이다. 5학년까지 다니는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건설사에 들어갔다. 패브릭 백팩과 작업복 차림으로 새벽 5시 반에 출근해 밤 12시쯤 귀가한다. 백화점에 가면 매장 여직원이 영화배우 이민기 닮았다 할 정도의 수려한 용모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아들 외모를 좀 더 높이 쳐주는 여점원은 가수 이승기로까지 쳐준다. 과연 그 두 젊은 연예인의 공통점대로 눈썹이 시커멓고 이목구비가 또렷해서인지 여자깨나 따르는 눈치이다. 잘 생긴 얼굴은 남자 여자 상관없이 스펙이고 무기인 걸까. 천지를 모르고 세상 알기를 우스워하던 녀석은 '경제적 자유'니, '스마트 스토어'니, '재테크 전문 유튜브 신사임당' 따위가 자기랑 무슨 상관이냔 입장이었다.


나에겐 지병이 하나 있는데, 다 큰 자식과 안 싸우고 싶어 하숙집 아줌마 모드로 있다가도 유익한 유튜브나 책을 보면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지는 병이 그것이다. 그래서 어제도 일하는 아들에게 신사임당 동영상 하나를 보낸 거였다. 


유튜브 속 신영준 박사란 분은 생김새만 빼면 아들과 비슷하다. 말 잘하니까 재밌고, 재밌으니까 인기 많고, 술도 잘 마시고. 인맥을 쌓을 욕심에 재벌 2세들과도 많이 어울렸지만, 세상은 철저히 '기브 앤 테이크'더라는 것. 자신이 그들에게 내줄 수 있는 게 있어야, 즉 실력이 있어야 인맥이 생긴다, 그러니 실력부터 쌓으라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담배 피우면서 쌓은 인맥은 담배 다 피울 때쯤 끝나고, 술 마시면서 쌓은 인맥은 술 취할 때쯤 끝난다…. 신영준 박사 비유가 어찌나 날카롭던지, 순간 난 결심했다. 아들 녀석이 언제까지나 천둥벌거숭이처럼 나대지 않고 그 뼈 때리는 진리를 깨닫게 유튜브를 보내줘야겠다고. 한가한 엄마나 많이 보셔, 하면서 삐딱하게 나올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은 자식하고 싸우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 날이 많았다. 싸움꾼도 싸움을 좋아하는 건 아닐 텐데 누군들…. 특히 나 같은 소심한 성격이면 더 괴롭다. 분쟁이 싫으니 상대방 잘못이 분명한데도 사과해 버려야 편하고, 갈등 안 생기게 알아서 기어버리는 쪽을 택하니까.


하지만 자식은…. 자식하곤 싸울 수밖에 없는 순간이 많았다.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으로 아이들을 키울 선구자다운 용기가 없다면, 이른바 제도권 내 좋은 대학이란 델 보내려 한다면.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 싸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산 넘어 산이었다. 엄마와 아들, 엄마와 딸로 지내는 한, 끝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널 위해서야. 날 위하지 말아달라고요, 글쎄. 널 사랑해서라니까. 누가 사랑해 달랬어?


다 뿜어내진 않았지만 맘 속 그득 쌓인 독한 말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싸움으로 평화가 지연되고 있는 거라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애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된다,  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품어 안기엔 아이들이 너무 커버린 걸 받아들이면 된다.


하숙을 줬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식에겐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며 그 시간에 나를 더 돌보기로 했다.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진 방을 모른 척하기 쉽진 않았다. 날마다 세상과 전쟁을 치르고 패잔병처럼 귀가하는 아이에게 쾌적한 방이라도 준비해놓는 게 엄마 도리라고 여태 믿어왔으니까.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하숙집 아줌마야, 하며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치워주면 잔소리가 나올 게 뻔하니 방 안을 안 보는 게 상책이었다. 가끔은, 천신만고 끝에 마련한 내 집이야. 이렇게 더럽힐 거면 당장 내 집에서 나가, 하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천륜을 끊을 준비까진 안 되었기 때문이다.


먹는 것도…, 먹겠다고 하는 것만, 먹겠다고 할 때만 줬다. 왜냐하면, 나는 하숙집 아줌마니까. 이렇게 쿨하게 된 덴 딸애 도움이 컸다.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는지, 세상에서 내가 한 밥이 가장 맛나고 따뜻한 줄 착각하며 집밥 해대기에 바빴던 나에게 던진 딸아이의 돌직구.


"엄마나 집밥 타령이지, 엄마 아들은 밖에서 더 맛있는 거 먹고 다닐 거야." "잔치상처럼 이것저것 많이 차리고, 허리 아파, 다리 아파 하는 것, 싫어. 이러다 나중에 나, 내 자식에게 밥 절대 안 해주는 엄마 될 것 같단 말이야."


잠을 줄여가며,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그렇게 공부하면 자식에게 만족스러운 삶이 보장될 거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금리를 내리고 기업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변화에 둔감한 채, 지금껏 살아온 방식대로 예적금만 하고 살아도 되는 줄 믿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이제라도 내가 재테크 유튜브나 자기 계발서를 열심히 읽게 된 계기이다. 


저녁이 있는 삶? 우리 애들에겐 먼 나라 얘기일 따름이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넘쳐나니, 오너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세상이 와 버렸으니까.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에 냉소적이면 냉소적일수록, 너무도 쉽게 많은 걸 누렸던 세대라는 미안함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나는 하숙집 아줌마에서 엄마 모드로 바뀐다. 


늘 피곤에 찌든 애들 심기 거스를까 봐, 가만 지켜 보고만 있는 나, 과연 엄마 맞나? 애들과 부딪히기 싫다는 이유로 엄마 역할, 어른 노릇 방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몰라서 그렇지, 젊은 애들이 이 영상을 일단 보기만 하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지는 지름길을 찾을 것 같은, 그런 유튜브나 책을 발견할 때 내 의문은 더 맹렬해졌다. 


3초 안에 웃기지 않으면 안 본다는, 잠시라도 웃음을 주는 유튜브 세계로만 도피하고 싶어하는 애들 심정이야 왜 모를까. 회사에 뼈를 갈아넣으면 안 된다며 수군대는 남매가 짠하면 짠할수록 시간 많은 내가 미리 진액 같은 유튜브를 찾아내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라며 근심이 꼬리를 무는 거다.


이런 걱정, 저런 불안으로 숨 쉬기가 힘들 때, 이제 나, 도망칠 곳이 생겼지 참? 싶어진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에 코를 박는다. 또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오타투성이의 초고를 써 내려간다.


녀석이 무슨 맘으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류의 책을 읽겠다 결심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희망을 보았다고 써야겠다. 내 좌우명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도 빠뜨리지 말아야겠다. 역시 아이를 바꾸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게 빨랐다. 


'바뀐 것은 없다. 단지 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내가 달라짐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진다.'by 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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