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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Dec 01. 2018

언제부터 공간의 주인공은 인간이었나?

나의 삶을 조금은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 - OTD 손창현 대표

시끄럽게 울리는 자명종 시계를 끄고 샤워를 한다. 식빵을 한 입 베어 물고 붐비는 전철을 겨우 빠져나와 도착한 곳은 사무실. 출근 후 퇴근까지 업무에 필요한 곳이 모두 있는 '당연한' 공간.



100년도 안된 사무실이라는 개념

사무실, 오피스의 초기 개념은 공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880년대까지 자본주의 역사의 주인공인 미국에서 조차 사무직 근로자는 전체 노동자의 5% 미만이었다. 당시만 해도 '업무의 효율성'에 대한 인식은 전무했다. 프레드릭 윈슬로는 생산과정을 세분화하고 전문화하면서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공장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획부서를 만들었다. 바야흐로 사무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최초 사무실의 형태는 뻥 뚫린 방에 책상을 나열하는 정도였는데, 이때까지도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 근로자 개개인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1937년, 오픈된 공간에 줄 지어 나열된 책상들


1960년대 Herman Miller는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어떻게 일하고, 정보가 어떻게 공유되며, 오피스의 구조가 업무에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연구했다. 


연구 결과

1. 근로자가 처리해야 할 일의 양과 형태는 변했지만 사무실 환경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 근로자가 처리하고 분석해야 하는 정보의 양은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사무실은 개개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지 않는 형태로 남아 있었다. 

2. 오픈된 공간에서 함께 일할 경우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아 근로자 간의 대화가 줄어들게 된다. 

3. 장시간 한 자세로 오래 일하다 보면 근로자의 몸에 무리가 간다.


근로자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고, 활동하게 하라


그들이 당시 고안한 액션 사무실 (Action Office)에는 다양한 높이의 책상이 있어 근로자가 움직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었고, 관리자와 근로자의 소통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대형 기업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며, 사무실을 구현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 널리 구현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큐비클(Cubible)이라는 극도로 효율적인 배치. 가장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단절된 형태로 일하게 하는 것. (닭장 같지 않은가)

전형적인 큐비클 형태의 사무실


사무실의 1차 혁명이 칸막이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2차 혁명은 칸막이를 없애는 형태로 일어났다. 

큐비클 형태가 꽤 오랫동안 사무실의 전형으로 지속되었지만 미국 실리콘밸리 IT 기업들부터 열린 사무실 형태를 도입하면서 오피스계의 혁명이  시작된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공유 오피스, 패스트파이브


사무실은 단순히 각자의 행정처리를 하는 곳이 아닌, 소통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Cubicle이라는 정형화된 형태의 반작용인 셈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Authentic & Lifestyle라는 기조를 가진 Creative Office라는 플랫폼이 어마어마하게 생겨남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시내 중심가에 사무실을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교외로 빠져나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대표적으로는 해변에 위치한 Snapchat의 사무실이 있다. 단순히 일하는 곳이 아닌,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녹아 있는 형태로 사무실이 진화하는 것이다.


구글의 사무실 (출처 : www.networkworld.com)


구글,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인 IT 회사들은 직원들이 꾸준히 영감과 창의성을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놀이, 운동, 휴식 시설을 사무실 곳곳에 비치했다. 캘리포니아처럼 더운 곳에 위치한 사무실에는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스노보드나 스키를 비치하고, 추운 기후의 사무실에는 해먹과 야자나무로 인테리어를 하여 생각의 영역을 넓힌다. 


이런 현상이 사무실에서만 나타났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


자체 보유한 방 하나 없이, 전 세계 메이저급 호텔 객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수의 숙소를 운영 중인 에어비앤비는 이제 숙박업의 대명사로 불린다. 사람들이 특급 호텔을 선호하는 이유는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표준화된 익숙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본인들이 여행 가는 장소와 무관한, 혹은 동떨어진 삶을 영위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불편함이 재미 요소로 승화되는 순간 사람들은 현지인들의 인생에 동화되었다고 여긴다. 예컨대, 몽골 사막의 게르나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하게 된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슬로건, Belong Anywhere (출처 : 아마존)


리테일의 격변, 블루보틀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2시간 줄을 서야 하는 커피숍이 있다는데. 2019년에야 국내에 최초로 오픈할 '블루보틀' 이야기다. 무엇이 소비자들을 여기로 오게 했나? 블루보틀은 매장 입지를 정할 때 유동 인구나 타겟층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단순히 목이 좋은 곳보다는, 지역주민과의 소통과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가 입지 선정의 주요 요인이다. 또한 바리스타와 고객, 그리고 커피만 오롯이 부각하고 다른 요소는 최대한 덜어내는 인테리어도 인상적이다. 손님과 로스터리의 경계가 허물어져, 고객은 바리스타의 커피 추출 장면을 오롯이 감상하게 된다.  

LA 로스 펠리즈 매장. '매장은 커피를 위한 곳', 출처 : 월간디자인

2017년 9월, 네슬레는 블루보틀의 지분 68%를 4억 2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겨우 매장 50여 개에 불과한 블루보틀 커피의 기업 가치를 7억 달러 수준으로 평가했다. 

(비교하자면 국내에만 천 개 이상의 점포를 가진 스타벅스는 전 세계적으로는 77개국 28,000개 매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시가총액은 670억 달러에 불과하다)


외진 곳에 위치하고, 오래 기다려야 하고, 추출 시간이 길더라도 고객들이 이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커피 매장 한 두 개가 만들어지는 문제가 아닌. 커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대하는 태도의 격변을 의미한다. 


미래의 서점, 츠타야와 아크앤북

전자책 시장의 호황, 그리고 아마존의 독주로 미국에는 서점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도쿄는 오히려 서점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데? '책 판매'라는 기능에 충실했던 효율적인 서점과는 정 반대로 다양한 취향을 발견하는 장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츠타야 서점

대표적으로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 있다. 츠타야는 CD와 DVD 대여하는 서점 체인으로 시작해, 서점의 미래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가게이다. 이곳이 교보문고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츠타야는 그들만의 취향 흐름적 도서 배치로 유명하다. 예컨대 예술 - 패션 - 디자인 - 인테리어 - 건축 - 휴식 - 리빙 - 주방 - 인도어 - 아웃도어 - 자동차 - 시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도서 배치 순서이다. 이런 배치를 위해서는 수많은 데이터와 분석이 필요하며, 실제로 츠타야는 일본 각지 1,500개 매장의 DB를 분석해 배치의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해당 흐름과 연관된 가방, 수첩, 옷 등 다양한 잡화를 함께 판매하는 거대 편집샵의 형태로 운영된다. 또한 지역마다 고객의 니즈를 최대로 반영하여 매장을 디자인하여 최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도 돋보인다. 


아크앤북

일본에 츠타야서점이 있다면, 한국엔 아크앤북이 있다. 2018년 11월 오픈한 따끈따끈한 서점 아크앤북. 아치(Arch)에서 어원을 따와 사람-책을 잇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서점 곳곳이 아치형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출입문으로부터 시작되는 책 터널은 아크앤북의 최고 포토 스팟으로 유명하다.

아크앤북의 책 터널

웅장하고 멋지다는 것 외에, 아크앤북이 추구하는 공간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다른 대형서점들도 라이프스타일과 책을 접목하여 다양한 요소를 즐길 수 있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의식주를 아울러 경계를 허무는 도전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서점의 책을 자기 것처럼 레스토랑에 가져가서 읽고, 누군가의 집을 구경할 수 있다면? 음식을 먹다 책에 흘리기라도 하면 어쩔텐가.


아크앤북에서는 가능하다. 과거 분리되어 있던 서점과 레스토랑의 경계를 허물고, 살림 인플루언서 '띵굴마님'의 집을 컨셉으로 일부 공간을 꾸몄다. 또한 기존의 딱딱한 도서 분류 체계를 탈피하고 일상(DAILY), 주말(WEEKEND), 스타일(STYLE), 영감(INSPIRATION)의 4개 테마로 구성하여 독자들이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발견하도록 장려한다. 또한 일부 섹션에서는 그림을 전시하고, 렌탈하고 판매까지 하여 볼거리를 더했다. 아크앤북의 주요 수익 모델은 책보다는 F&B와 띵굴의 판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아크앤북을 오픈한 회사가 OTD(Over The Dish)이기 때문이다. OTD는 소비자의 취향과 부동산 트렌드에 맞는 공간 기획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인기 맛집을 한 공간에 모은 F&B 편집샵 '셀렉 다이닝'으로도 유명하다. OTD의 손창현 대표는 단순히 '맛집'을 찾는 일차원적인 소비를 뛰어 넘어 휴식, 안정, 새로운 영감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은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 라이프스타일은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사무실이라는 개념 조차 없었던 100년전부터, 모르는 사람 집에서 묵는 개념 자체가 이상했던 10년전, 그리고 이제 새롭게 등장하는 형태의 공간들. 궁금하지 않은가? 10년 후 당신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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