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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Dec 02. 2018

와인은 오감으로 마시는거야

와인 테이스팅 (Wine Tasting)

어릴 적 고향에서 나던 냄새, 해바라기 숲, 허물어져가는 성벽 등...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와인을 묘사하는 오만가지 표현이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와인을 마시며 클레오파트라를 영접하거나 가면 무도회장에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샤토 마고'를 마시고 클레오파트라를 영접한 '신의 물방울' 주인공....
아니 당신은... 클레오파트라?


신의 물방울 주인공은 '이를 데 없이 사치스럽고 아름답기 그지 없는 분위기가 감돌면서도 결코 기품을 잃지 않는' 느낌을 '클레오파트라'로 묘사했다.(뭔 소리야. 직접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느낌따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테이스팅에는 나름의 공식이 있다. 와인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색과 향, 맛 등의 표현법은 14세기가 되어서야 확립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 외에 개인의 느낌과 감상을 나타내는 비공식 표현도 사용되고 있다.  (근래 들었던 가장 신박한 표현은 '조개 무덤'이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  눈 감고 마셔도 맞출 수 있을까?


와인 테이스팅 방법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람의 감각이 외부 정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살펴보자.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위해 외관을 칠한 와인병들

와인 라벨만 보고 그 와인이 어떨지 지레짐작해본 적이 있을까? 왠지 프랑스 와인은 칠레 와인보다 맛있을 것 같다거나, 비쌀 수록 풍부하게 느껴진다든가. 오래된 빈티지의 와인은 어린 것보다 더 깊은 향이 날 것 같다든가. 


(뻔한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제공된 정보는 '기대효과'를 일으켜 인지에 영향을 미친다. 기대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인자에는 크게 '가격, 와인의 색, 양조 지역'이 있다.

 

1. 가격

비싼 가격의 와인이라고 속이고 서빙을 할 경우, 반대의 경우보다 항상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프랑스의 통계학자인 Frédéric Brochet는 중급의 보르도 와인의 두 개의 병에 담았는데, 하나는 저렴한 와인의 라벨이 다른 하나는 비싼 와인의 라벨이 붙은 병이었다. 테스터들은 비싼 병에 담긴 것은 ‘나무향과 복잡성, 그리고 조화로움’ 등으로 와인을 묘사했으나, 저렴한 병에 담긴 것은 ‘여운이 짧고 가볍다’ 라고 표현했다.

2011년에도 Hertfordshire 대학의 Richard Wiseman 교수에 의해 유명한 블라인드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약 400명이 참석한 이 테스트에서, 교수는 대중들이 저렴하고 비싼 와인을 구별해내지 못했다.


2. 와인의 색

2001년 Bordeaux 대학에는 54명의 학부생에게 레드와 화이트 와인 한 잔씩을 시음하게 했다. 참가자들은 레드 와인을 ‘잼 같다, 붉은 과일의 향이 난다’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사실 두 와인은 같은 병의 동일한 것이었고, 유일한 차이는 하나에 붉은 색소를 넣은 것 뿐이었다.


3. 양조 지역

가장 유명한 블라인드 테스팅 중 하나는 1976년 개최된 “파리의 심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프랑스와 미국 지역의 와인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압도하였으며, 이 일화는 2008년 ‘와인 미라클’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약 6년간 텍사스의 A&M 대학은 ‘프랑스’ ‘캘리포니아’ ‘텍사스’ 라고 라벨링 된 와인을 참가자들에게 시음하게 했다. 그리고 항상 프랑스 와인이라고 라벨 된 것이 최고점을 받았으나, 사실 모든 와인은 텍사스의 것이었다. 연구 결과, 사람들이 무엇을 마시는지 인지한 결과에 따라 다른 평점을 준다는 단순한 이론이 증명되었다.




어쨌든.. 그럼 이제 교과서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마셔보자. 


1. 겉보기
2. 아로마/부케
3. 입 속의 느낌/질감
4. 맛/피니쉬

테이스팅 단계

테이스팅에는 기본적으로 5가지 기초 단계가 있다.
색을 보고, 스왈링(잔 흔들기)하고, 냄새를 맡고, 맛보고, 음미하는 것이다. 이는 “FIve S” 단계라고도 불리는데 보고(See) 스왈링하고(Swirl), 냄새 맡고(Sniff), 홀짝이고(Sip), 음미하는(Savor) 것이다. 이 과정에서 테스터는 투명도, 점성도, 복잡성, 풍부함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해야한다.

칠링 중인 화이트 와인


와인이 서빙되는 온도는 향과 맛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적절한 시음 온도일 때 테이스팅 하는 것이 좋다.  온도가 낮을수록 산미와 탄닌감이 강조되는 반면, 향이 덜 느껴질 수 있다. 높은 온도는 산도와 탄닌감이 둔화되지만 동시에 향을 더 잘 살려준다. (** 온도가 높을수록 향이 나는 분자들이 잘 증발되어, 냄새 맡기 쉬워짐)


[표] 포도 품종에 따른 적정 와인 시음 온도




와인 맛볼때 신경써야 할(?) 것


겉보기 : 색, 점도 등

와인의 색 - 오래 숙성되어 갈색으로 변한 와인

와인을 마시기 전에 색을 통해서 와인의 농도, 점성도, 탄닌 정도 등을 유추할 수 있다. 점성도가 높은 와인들은 일반적으로 색이 더 짙고, 또한 당도가 높을수록 점도가 높아진다. 점도가 높으면 와인을 스왈링(잔에 담긴 와인을 가볍게 돌려주는 것) 할 때 와인의 눈물이(와인잔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인) 좀 천천히 빽빽하게 내려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와인의 색을 평가할 때는 흰 색 바탕에 잔을 기울여보는 것이 좋으며, 포도의 품종이나 오크통 숙성 여부 등을 추측해볼 수 있다.




와인의 향

와인의 향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휘발성과 비휘발성 성분이 있다. 발효 과정 및 초기 몇 달간은 이러한 물질 간의 화학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남에 따라 향이 급격하게 변하고, 와인의 숙성됨에 따라 변화는 점차 더디어 진다.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지역에 따라 다른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1) 와인의 일차원적인 향 : 아로마

아로마는 주로 포도 품종에 따라 발현될 수 있는 독특한 향으로, 아로마는 어린 와인에서 더 잘 구분된다. 대표적으로 게뷔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에서는 리치의 향이, 까베르네 쇼비뇽에서는 블랙커런트의 향이 난다. 
휘발성 향의 성분은 주로 포도 껍질과 과즙에 있어, 품종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포도의 화학 성분들은 생식을 위한 진화 과정에서 발전된 것이다. 향으로 곤충들을 유인하여 꽃가루를 전달하거나, 새나 다른 짐승들이 포도 알갱이를 먹고 배설하여 씨를 퍼뜨리도록 하는 것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향은 각각 포도 품종이 생태학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다른 식물들과 어떻게 경합하는지에 따라 진화적으로 발달했다.


2) 와인의 이차원적인 향 : 부케

와인이 숙성됨에 따라 산, 당분, 알코올, 그리고 페놀성분이 반응하여 ‘부케’라고 불리는 새로운 향이 발현된다.  ‘부케’라는 용어는 발효 과정 뿐 아니라 오크에 노출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향까지 지칭한다. 부르고뉴의 경우 와인의 아로마는 세부적으로 1차, 2차, 3차 아로마로 분류된다. 일차 아로마는 포도 품종 특유의 향이며, 2차 아로마는 발효에 기인한 것이다. 삼차 아로마는 병 숙성 혹은 오크 숙성에 따라 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소테른 와인의 경우 꿀향, 피노누아의 경우 트러플 향 등으로 묘사될 수 있다.

1990 빈티지, 리쉬부르. 와인이 오래 숙성될 수록 깊은 부케가 발현된다.


어떤 향들은 산성과 알콜이 와인 내에서 화학 작용하여 생성된 에스테르에 의해 발현된다. 에스테르는 발효 동안 생성될 수 있는데, 이는 효모 혹은 화학 작용에 의한 것이다. 

1) 어떤 종류의 효모가 사용되는지, 그리고 2) 화학 작용 중 온도에 따라서 특정한 에스테르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동일한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로 와인을 만들더라도 다른 향을 가진다. 상대적으로 산성이 강한 낮은 pH의 와인의 경우  병 숙성 기간 동안  수소 이온이 에스테르 형성에 촉매 작용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수소 이온은 에스테르를 다시 산성과 알콜로 분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두 가지 활동의 균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와인은 특정 비율의 알콜, 산성, 에스테르로 평형 상태가 된다. 와인에 부케가 형성되는 것은 이처럼 에스테르의 농도가 변하며, 다양한 종류의 에스테르로 형성되고 쪼개지는 과정에 의한 것이다. 


시향 방법

와인잔은 볼이 넓고, 끝이 점점 좁아지는 튤립 형태이다. 이런 잔은 다양한 와인의 향을 더 극대화 하고, 잔 속에 더 많은 향을 잡아둔다. 따듯한 온도에서 서빙되는 와인은 차가운 온도에서 서빙될 때 보다 더 많은 향을 발현시키는데, 이는 열이 와인의 휘발성 성분을 더 잘 증발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잔을 흔드는 '스왈링'은 일시적으로 와인의 표면적을 넓혀, 더 많은 향 성분이 증발되도록 한다. 하지만 스왈링을 할 경우 특정 미세한 향들은 상대적으로 더 우세한 향에 의해 묻혀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전문 테이스터들은 스왈링을 하기 전 우선 향을 맡아보고, 스왈링 후 다시 맡는다. 와인에 가까이 코를 가까댈수록 더 향을 잘 느낄 수 있으며, 한 번 깊게 들이마시는 것 보다 여러 번 짧게 킁킁거리듯 냄새를 맡는 것이 좋다. 


와인을 살짝 홀짝이면 입 속에서 따뜻하게 데워지고, 이것이 침과 섞이면서 화학 성분들이 증발하게 된다. 이 화학 성분들은 입 속을 지나 비강으로 들어가고, 여기에는 거의 5백만개의 신경 세포가 있다. 일반적인 사람은 천 가지가 넘는 향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현존하는 향 중 일부만 이름을 명명하여 부른다. 이런 현상은 'Tip of the nose phenomenon' 이라고 불리우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향을 맡을 때 일부만을 실제로 인식하게 된다.




입속의 느낌/질감

와인을 마실 때 조직, 맛, 무게감을 느끼는 것 또한 테이스팅의 단계다. 삼키기 전 몇 초간 입에 와인을 머금은 상태로 살짝 입술을 벌려 산소를 들이키면 더 많은 에스테르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와인이 입 속으로 천천히 흘러 들어 가면서 미뢰에서 더 오래 맛을 감지한다. 


맛/피니쉬

혀와 입의 부위에 따라서 맛을 인지하는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가 흔히 알 듯이 혀 끝만이 단 맛을 인지하거나 혀 가장자리에서만 신 맛을 인지하는 것은 아니고 특정 맛을 인지하는 수용기 밀도 차이가 있다.



품종에 따른 묘사

포도 품종에 따라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아로마와 맛이 있다.


레드와인 묘사 방법


화이트와인 묘사 방법


와인 향에 대한 노잼인 이야기

주요한 휘발성 물질들은 와인의 당분과 결합하여 무취의 글리코시드를 형성한다. 와인에 있는 효소 및 산 성분에 의해 가수분해가 일어날 경우 글리코시드에서 다시 휘발성 물질이 분리된다. 와인 테이스팅은 증발된 휘발성 물질들의 향을 맡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후각 수용기의 세포들은 각각 다른 향들을 민감하게 인지하는데, 이 정보는 후 신경구를 통해 뇌로 전달된다. 1980년, 포도 성분에 따른 맛과 향이 어떻게 와인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과학자들은 크로마토그래프 질량 분석계를 통해 다양한 포도 품종의 휘발성 화학물질을 구분해 내었다.  


인간의 혀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등을 미각 수용기로 일차적인 맛들을 인지하지만, 미각 뿐 아니라 후각 또한 우리가 맛을 느끼는데 크게 기인한다. 이처럼 와인을 음미할 때 느껴질 수 있는 과일, 꽃, 허브, 미네랄, 흙, 그리고 나무와 같은 맛들은 후각 신경에 의해서 지각되어 맛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와인을 테이스팅 하는 과정에서, 마시기 전 냄새를 맞는데 이것은 와인의 다양한 특성들을 구분해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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