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의 충실한 연인, 샤블리 와인(Chablis)
굴껍질에서 자란 프랑스 가장 새콤 시큼한 화이트 와인
바야흐로 굴이 제철인 겨울이다. 초고추장에 우윳빛 굴을 찍어 한 입. 그리고 소주 한 잔 호로록 넘기면 바다가 온통 입안에서 출렁인다.
사실 나는 2년 전까지만해도 굴은 입에도 못 댔다. 뭔가 징그러운 외형에 비릿한 냄새, 흐물거리는 식감이 도무지 정감가지 않았다. 엄마가 김장 때 마다 갓 삶아낸 수육에 싱싱한 굴, 김치를 같이 먹어보라고 성화였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열렬한 굴 애호가가 된 것이 바로 샤블리 와인 덕이다. 왜 샤블리 와인은 굴과 잘 어울릴까?
굴이 샤블리 와인의 양분이기 때문.
샤블리 와인과 석화 (아... 군침 돋는다.)아니, 바다에서 난 굴이 어떻게 땅에서 자라는 포도의 양분이 될 수 있지? 샤블리 지역의 토양은 '키메르지안'이라고 불리는 석회질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토양은 깊은 바다에서 융기하여 형성되었고, 작은 굴 껍질 화석들이 많이 발견된다. 지각변동을 거쳐 해양층이 솟아올라 바다 속 굴 껍질이 화석으로 땅에 묻힌 것이다. 그 굴 껍질들은 토양에 미네랄 성분을 제공하고, 그 미네랄을 포도나무가 흡수하며 자란다. 어떻게 보면 굴과 샤블리 와인은 고향이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매력적인 샤블리 와인, 더 알아보자.
샤블리도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이라구!
샤블리(Chablis) 지역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최북단에 위치한 와인 생산지이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는 이곳은 브루고뉴 와인 생산지역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샴페인 지방에 가깝다. 그만큼 춥다는 이야기. 부르고뉴 최북단인만큼 서늘한 기후 때문에 샤블리 와인은 농익은 과일향보다는 상큼한 레몬처럼 산미가 강한 편이다.
파리에서 샤블리 - 디종까지 (디종은 부르고뉴 포도밭의 중심지)모든 샤블리는 100%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들어지고, 단순한 스타일의 양조기술이 가미 되어 가장 순수한 샤르도네 특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 오크배럴 대신 스테인레스발효조로 와인을 숙성해서 더 깔끔한 편이다. 와이너리의 스타일에 따라 짧은 시간 오크배럴에서 숙성 후 스테인레스발효조에서 숙성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프리미에 크뤼, 그랑크뤼처럼 비싼 애들이 이렇게 한다) . 매우 극소수의 샤블리 양조자들만이 발효와 숙성과정 모두에서 오크통을 사용한다. 그랑크뤼와 프리미에 크뤼는 대부분 오크통에서 발효가 되는데, 이는 해당 품종의 포도들이 오크에 영향을 많이 받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기본 AOC 샤블리나 쁘띠 샤블리의 경우 오크통에서 발효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샤블리의 Laroche 매장
샤블리의 대표 와이너리 Laroche, 오크 숙성 중샤블리의 떼루아(와인 양조 지역 특성)의 킬링 포인트는 굴 껍질스러운 석회 토양과 서늘한 기후로, 높은 산미감이 일품이다. 샤블리 와인은 옅은 연녹색에 청사과와 레몬같은 산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오래 숙성되면 산미도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 샤블리 와인은 샤르도네로 양조된 와인 중 보관 기간이 가장 길다. 이것은 산이 가지고 있는 방부제 기능 때문! 왜 김치도 산 때문에 오래오래 보관 가능하지 않은가.
샤블리 포도밭 지도 뒤편으로 펼쳐진 포도밭 공감은 잘 되지 않지만, 유럽 사람들은 샤블리 와인의 향을 부싯돌, 쇠, 젖은 돌이라고 표현한다. (젖은 돌이 어떤 향이지?) 그랑크뤼 급의 샤블리 와인은 오랜 기간 숙성 후에 꿀향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생산자의 스타일과 빈티지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랑크뤼 샤블리는 약 15년, 프리미에 크뤼는 최소 10년 정도 숙성가능하다. (문제는 와인이 있는 족족 다 마셔버려 보관이 불가하다는 점이다)
구구절절한 양조 얘기보다는, 일단 굴 한점 입안 가득 넣고 샤블리 와인 한 잔 머금어 보라. 산해진미가 입 속에서 춤춘다.
덧. 가격이 더 비싼 그랑크뤼, 프리미에 크뤼는 상대적으로 굴과 덜 어울릴수도..
이유 : 오크통 발효로 산미가 약해지거나, 오래 보관하면 상큼함보다는 꿀향이 풍부해져서 비린 맛을 덜 잡아주기 때문. 항상 비싼 와인과 좋은 음식의 페어링이 정답은 아니다.
평화로운 샤블리 마을의 전경조금 더 자세한 얘기. 지루하다면 스킵하길
샤블리는 약한 대륙성 기후로 여름은 상당히 더운 반면 겨울은 혹독하게 춥고 5월 초까지 서리가 내린다. (1972년은 과한 서리로 인해 샤블리 와인 사상 최악의 빈티지다)
샤블리의 키메르지안 토양. 도토리도 주변에서 자라고 있더라샤블리는 파리 분지(Paris Basin)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고, 가장 오래된 토양은 쥬라기 시대의 것으로 약 1억 8천만년 이전에 형성되었다. 앞서 언급한 키메르지안(Kimmeridge) 토양으로, 모든 샤블리 그랑크뤼 밭과 프리미에 크뤼 밭은 특유의 미네랄 향을 가지고 있다. (※ 쁘띠 샤블리 밭의 경우 상대적으로 어린 Portlandian 토양 기반이다)
샤블리의 샤르도네 포도. (9월 말)추워서 까칠하다고, 샤블리 샤르도네
샤블리 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서리! 5월까지 이어지는 서리 때문에 매년 포도 생산에 큰 영향을 받는다. (1957년의 서리 피해는 특히 극심하여, 오직 132병의 와인만이 생산되었다) 이를 참다 못한 많은 포도 재배자들은 경제적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복작(같은 시기에 한 토지에 두가지 이상의 곡식이나 채소를 심는 농작법) 방식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헤쳐 나갈 수 밖에... 서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1960년대에 훈증용기(Smudge pot)나 살수 시스템(aspersion irrigation) 등 서리 피해를 방지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훈증용기 :단지에 연기를 피우면 연기가 담요 역 할을 하여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살수 시스템 : 서리예보가 있을 때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려 물이 얼음으로 되는 과정에서 코팅(이글루) 효과가 난다. 지속적으로 물을 뿌릴 경우 포도나무 자체에 피해가 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수확 시기에 AOC는 밭의 등급마다 최소 알코올 농도 기준을 명시하는데, 그랑크뤼의 경우 11% 이상, 프리미에 크뤼는 10.5% 이상, 그리고 나머지 지역의 경우 9.5%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랑크뤼 생산량은 에어커 당 3.3톤으로 제한되어 있다. 수확 방법에 대한 공식적인 규정은 없으나 대부분 그랑크뤼의 와인 생산자들은 손으로 포도를 수확하는데, 잘 익은 포도를 섬세하게 선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샤블리 지역 중 약 80%의 밭이 기계로 포도를 수확한다.
샤블리에도 등급이 있다. 샤블리 AOC(원산지 통제 명칭)
샤블리 AOC는 1938년 1월 13일에, 쁘띠 샤블리 AOC는 1944년 1월 5일에 지정되었다. 샤블리 지역의 모든 포도밭은 4개의 등급으로 분류되며, 토양의 성분과 와인밭의 경사에 따라 구별된다.
가장 최상등급은 7개의 그랑크뤼 밭이며, 2등급인 프리미에 크뤼 밭은 약 40개(750헥타르) 이다. 3등급 AOC 샤블리는 약 2,860헥타르로 샤블리 지역에서 가장 넓은 비중을 차지한다. 최하위 등급은 쁘띠 샤블리로 2004년 기준 약 560헥타르다.
앞서 언급하였듯, 토양 성분과 경사가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솔, 대부분의 그랑퀴리와 프리미에 크뤼 밭은 쓰렝(Serein) 강 유역 언덕에 위치한다. 특히 그랑크뤼 밭은 남서향 언덕에 있어 태양 빛을 최대로 받는다. 대부분의 프리미에 크뤼 밭은 남동향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각기 다른 등급의 사랑스러운 샤블리 와인들그랑크뤼 (Grand Cru)
샤블리에는 INAO로부터 인정받은 7개의 그랑크뤼 밭이 있고, 전체 면적은 약 100헥타르이며 연간 전체 샤블리 생산량의 약 3%를 차지한다. 모든 밭이 남서향의 언덕, 해발고도 약 150~20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랑퀴르는 아니지만 레 프뢰즈(Les Preuses)와 보데지르(Vaudésir) 사이에 위치한 라 무톤(La Moutonne) 또한 비공식적으로 BIVB(Bureau Interprofessionnel des Vins de Bourgogne)에 의해 그랑크뤼 급이라고 인정되고 있다. (모노폴이기 때문에 단일 와이너리가 관리한다)
각각의 그랑크뤼는 떼루아에 의한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나는 Les Clos를 가장 좋아한다)
샤블리 그랑크뤼 지도1) 부그로(Bougros) : 가장 북서에 위치, 밭이 고도가 낮은 지역에 위치해 서리의 위험에 잘 노출됨. 풍미는 그랑크뤼 중 가장 부드러운 편 / 원만함, 미네랄, 부드러움
2) 프뢰즈(Les Preuses) : 경사가 원만하여 상대적으로 깊은 표층토를 가지고 있음. 부서진 돌조각이 산재해 배수가 잘 되는 편. 가장 태양 빛을 많이 받아 풀바디 와인이 생산됨. 아로마틱하기 보다는 상큼한 편 / 길고 개성 강하며 장기 숙성 가능
3) 보데지르(Vaudésir) : 계곡 내 오목한 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공기 순환이 적고 더운 여름 열기가 고스란히 전달됨. 부케보다는 우아한 floral 경향을 보임 / 생동감, 꽃향, 스파이시함
4) 그루누이유(Grenouilles) : 쓰헹(Serein) 강 위 급한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부-상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짐. 토양도 깊고 경사면 쪽에서 나온 와인이 상대적으로 미네랄 특성을 가지고 있음 / 꽃향, 과일맛, 기름짐
5) 발뮈르(Valmur) : 그루누이유와 레 클로 사이에 위치한 밭으로 양 계곡 사이에 갇혀 있어 공기 순환이 적고 여름날 열기가 높음. 추운 겨울에는 차가운 공기가 상대적으로 더 오래 머무는 지형임. 보데지르밭과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나 와인 풍미는 보데지르보다 상대적으로 덜 아로마틱함 / 미네랄, 과일맛, 균형
6) 레끌로(Les Clos) : 가장 넓은 밭이며, 수도승에 의해 최초로 샤블리에 포도가 재배된 곳임. 지표 층은 흰 진흙질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래 80cm 정도에 석회질층이 위치하고 있음. / 미네랄, 강함, 숙성력 강함
7) 블랑쇼(Blanchot) : 남동향의 가파른 언덕지형. 공기흐름이 좋고 태양이 빨리 지는 서늘한 지역으로 섬세한 특성을 가짐. 따라서 오크 숙성은 잘 하지 않음 / 가장 섬세하고 향기로움
샤블리그랑크뤼연합(UGCC; The Union des Grand Crus de Chablis)는 2000년 3월 설립되었으며, 그랑크뤼 밭 소작농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그랑크뤼 샤블리의 품질을 개선하는 목적 하에 설립되었으며, 양조자들은 품질 보증을 위해 매년 UGCC에 테이스팅 목적의 와인을 제출 해야 한다. 이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방식으로 진행된다.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 Mont de Milieu약 40개의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 밭이 있는데, 이 중 많은 밭 이름은 와인 라벨에 표시되지 않는다. INAO는 “umbrella names”를 허가하는데, 이는 소규모이며 덜 유명한 밭들이 인근의 유명한 프리미에 크뤼 밭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Umbrella 밭의 예로는 Mont de Milieu, Montée de Tonnerre, Fourchaume, Vaillons, Montmains, Beauroy, Vaudevey, Vaucoupin, Vosgros, Les Fourneaux, Côte de Jouan, Les Beauregards 등이 있다. 보편적으로 프리미에 크뤼 와인은 그랑크뤼 와인에 비해서 약 0.5% 알코올 함량이 적으며 아로마 향과 맛이 약한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