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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Dec 01. 2018

유서 깊은 리슬링의 고향, 독일 모젤

독일 Ep.1 _ 낮술 와인포차와 코헴의 포도밭 서리

편안한 여행이 되셨습니까


기장의 착륙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다. 기내에서 마신 와인으로 몽롱한 기운을 몰아내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다. 졸고 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떠 기지개를 켠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여기서 기차로 3시간을 달려 유명한 와인 산지인 모젤 지역에 도착했다.
                                                

트리어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1.  자전거로 모젤강 따라 달리기 - 코헴(Cochem)의 포도밭 

코헴의 성. 성 아래 경사면에 빽빽히 조성된 포도밭


코헴은 모젤 지역의 소도시이다. 역에서 내리자 마자 펼쳐지는 모젤강의 풍경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 강물에 반짝이는 햇빛, 널리 펼쳐진 포도밭, 오랜 벽돌 건물들은 한 장의 엽서같다. 기차 역 바로 뒤에도 포도밭이 빽빽히 조성되어 있어 뚜벅이 와인 여행자의 천국이다. 모젤은 엄청난 경사로 유명한데,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급경사의 포도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와, 포도밭과 자전거


강변을 따라 걷는 것도 좋지만, 날씨만 좋다면 자전거를 타보길 추천한다. (하루 자전거 대여 비용은 10유로였다) 자전거 도로가 정말 잘 조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차도 많지 않아서 평화롭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좌측의 모젤강과, 우측의 포도밭. 이 어찌 황홀하지 않으리. 마침 9월이라 수확을 기다리는 포도들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중간에 자전거를 멈추고 철조망이 없는 포도밭에 무단침입을 감행하기도 했다. 밭주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포도 몇 알을 따먹고 도망쳤다. 완성된 형태의 와인이 아니라, 원재료인 현지 포도를 맛보는 행운이 얼마나 있을까.  

수확되길 기다리는 리슬링 포도


2. 트리어 시내의 와인 포차 

요기거리를 사러 시장에 왔는데, 특이한 광경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광장 정중앙에 포차처럼 생긴 원형 텐트를 둘러싸고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때는 낮 2시였다. 빵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 근처에서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의자도 없이 서 있었다. 나비가 꽃을 찾듯 그들도 와인 향에 이끌렸을 테다. 그 향이 망막에 맺혀, 나도 모르게 지표를 따라갔다.  

한낮의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


포도 수확철마다 운영되는 ‘와인 포차’는 인근 양조장에서 만든 와인을 판매하는 일종의 직판장이다. 리슬링의 본 고장답게, 판매되는 대부분 와인은 리슬링 품종으로 양조된다. 와인은 한 잔에 2~3유로 수준으로, 한국 프랜차이즈 커피샵 아메리카노보다 저렴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와인잔을 들고, 무료로 제공되는 빵을 우물거리며 담소를 나눴다. 맛있는 음식이나 귀를 간지럽히는 음악, 고급 와인잔은 없었지만, 편안한 대화가 가을 공기를 가득 메운다. 

와인 포차에서 마시는 리슬링 한 잔




3. 120종의 와인을 무제한 시음할 수 있는 Oechsle Wein


당신, 술 좀 마시나?

와인 애호가이자 헤비 알콜 드링커라면 꼭 방문해야할 와인 명소를 소개한다. 트리어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레스토랑 겸 와인바인 ‘Oechsle Wein’는 120종 모젤 와인 테이스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20종을 무제한으로 맛보는데 고작 15유로! (약 2만 원) 연중 무휴며 낮 12시 ~ 저녁 6시 사이에 가면 언제든 시음을 할 수 있다. 무제한 테이스팅 외에도 4종, 6종을 시음하는 프로그램도 있으며 각각 6유로, 7.5유로이다. 웹 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이 가능하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진열된 와인들

 

레스토랑 2층 테이스팅룸에 와인이 생산자 정보와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종류가 너무 많다보니 오히려 선택하기 어려워하자, 소믈리에가 3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 지역의 문화를 고려해야한다 : 평소에 드라이 와인을 선호하더라도, 스위트 와인은 모젤 지역의 매우 중요한 문화이므로 경험해보자. 

- 희귀한 품종을 마셔보라 : 에블링, 리슬링과 이름이 유사한 이 와인은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 것이다. 

- 의외의 양조법으로 만들어진 와인을 시도해보라 : 리슬링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은 다른 지역에서 찾기 힘들다.
 
 그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8종의 와인을 소개해주었다. 

소믈리에가 골라준 8종 모젤 와인

이 중에서 와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3가지를 소개한다. 


- 모젤 블랑 드 누아 (Mosel Blanc de Noir)
 ** 블랑드 누아 : 적포도 품종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모젤 블랑 드 누아

기포가 거친 편이었고, 살짝 효모 누룩 같은 향과 함께 혀를 적당히 눌러주는 무게감. 맛있었다. 예전에 마신 몰리두커 걸 온더 고가 생각났다. 


- 에블링 (Ebling) 

에블링, 이름이 리슬링 친구 같다

모젤 남쪽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에블링은 수확량은 많지만, 리즐링에 비해 품질이 낮다는 선입견 때문에 거의 수출되지 않는다. 리즐링보다 중성적으로,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샤르도네 같다. 여름철에 시원하게 마시기 편한 와인. 무엇보다 가격이 숨 막히게 착하다. 한화로 8천 원 후반대로, 마음 같아서는 박스로 사다 놓고 싶다.

 

- 오쎄루아 (Auxerrois) 

오쎄루아 라는 품종으로 만든 룩셈부르크 와인

다음으로 소믈리에는 특이하게 룩셈부르크 와인을 가지고 왔다. 아니 독일인데 왜 룩셈부르크 와인을... 트리어와 국경을 접한 룩셈부르크 또한 '모젤 지역' 이라고 할 수 있단다. (기차로 50분이면 트리어에서 룩셈부르크 수도까지 갈 수 있다) 피노블랑의 친척 뻘인 오쎄루아로 만들어진 이 와인도 마치 오래된 동네 친구처럼 편한 느낌이다.  


 예약 링크 : www.oechsle-weinhaus.de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의 주인공은 피라미드 아래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꿈을 꾸고 이집트로 떠난다. 기나긴 여정 도중에 지표들이 가야할 곳을 알려주고 마침내 주인공은 보물을 찾는다. 지표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나에겐 와인이 지표이자 길잡이다. 와인 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길 뿐, 어디로 갈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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